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HISTORY
역사 사건 해설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에 나오는 47개 사건을 한 편씩 풀어 쓴 글이다. 무엇이 문제였고 실제로 어떻게 끝났는지, 누가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는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담았다.
사건은 두 갈래다. 막기는 함락·패전·늑약처럼 실제 결말이 나빴던 일이고, 앞당기기는 외적을 물리친 승리를 그 일을 해낸 인물로 더 일찍 오게 하는 일이다. 모두 널리 알려진 사건이고, 상대는 외적이나 외세다.
고조선·삼국·발해
- 고조선의 멸망 — 안에서 무너진 왕검성기원전 109년 · 고조선 우거왕 대 · 막기기원전 109년 한 무제가 바다와 땅으로 고조선을 쳤다. 왕검성은 1년 가까이 버텼지만 성안이 화친파와 항전파로 갈라졌고, 우거왕이 대신의 손에 죽은 뒤 무너졌다. 발단부터 함락까지, 그리고 그 뒤에 남은 논쟁을 정리했다.
- 살수대첩 — 살수로 가는 길612년 · 고구려 영양왕 23년 · 앞당기기612년 수 양제가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쳤다. 요동성은 버텼고, 을지문덕은 평양으로 곧장 온 별동대 30만 5천을 지치게 끌어들인 뒤 살수에서 무찔렀다. 돌아간 수군은 2,700명이었다. 요하에서 살수까지의 흐름과 을지문덕의 시, 사서가 전하는 것과 전설을 나눠 정리했다.
- 황산벌 전투와 백제의 멸망 — 황산벌과 사비의 열흘660년 · 백제 의자왕 20년 · 막기660년 당군 13만과 신라군 5만이 백제를 쳤다. 탄현과 백강을 막으라는 성충과 흥수의 말은 묻혔고, 계백의 결사대는 황산벌에서 네 번 이기고도 무너졌다. 사비성 함락과 의자왕의 항복까지 열흘의 흐름을 정리했다.
- 고구려의 멸망 — 연개소문의 세 아들666년 · 고구려 보장왕 25년 · 막기연개소문이 죽은 뒤 맏아들 남생과 두 동생 남건·남산이 이간질 속에 갈라섰다. 남생은 당에 항복했고, 그를 길잡이로 삼은 당군에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형제의 분열에서 멸망까지를 정리했다.
고려
- 발해의 멸망 — 해동성국의 보름925년 · 발해 대인선 대 · 막기해동성국이라 불리던 발해가 925년 12월 거란 야율아보기의 친정에 보름 남짓 만에 무너졌다. 부여부 함락에서 대인선의 항복, 동단국 설치와 유민의 고려 망명까지, 사료가 적은 멸망의 흐름을 정리했다.
- 서희의 외교 담판 — 말로 지킨 땅993년 · 고려 성종 12년 · 앞당기기993년 거란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이라 큰소리치며 고려를 쳤다. 조정이 땅을 떼어 주자는 쪽으로 기울 때 서희가 반대했고, 안융진에서 거란군이 막힌 뒤 적진에 들어가 담판으로 군대를 돌려보내고 강동 6주를 얻었다. 담판에서 오간 말과 그 대가까지 정리했다.
- 강조의 정변과 거란 2차 침입 — 강조의 정변과 통주1009년 · 고려 목종 12년 · 막기1009년 강조가 목종을 몰아내고 현종을 세우자, 거란 성종은 이를 구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통주 싸움과 강조의 최후, 개경 함락과 현종의 나주 피란, 양규의 싸움과 거란의 철수까지 연표와 함께 정리했다.
- 귀주대첩 — 귀주 동쪽 들판1018년 · 고려 현종 9년 · 앞당기기1018년 12월 거란 장수 소배압이 10만 군사로 고려를 쳤다. 일흔한 살의 강감찬은 흥화진에서 적을 꺾고, 개경 앞까지 내려왔다 돌아가는 거란군을 1019년 2월 1일 귀주 동쪽 들판에서 크게 무찔렀다. 흥화진에서 귀주까지를 정리했다.
- 강화 천도 — 섬으로 가는 조정1231년 · 고려 고종 18년 · 막기1231년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이듬해 최우는 조정을 강화도로 옮겼다. 반대하던 김세충은 처형되었고, 섬의 조정은 버텼지만 육지 백성은 30년 가까이 산성과 섬으로 숨어야 했다. 저고여 피살부터 처인성 싸움까지 정리했다.
- 몽골의 3차 침입과 황룡사 구층목탑 — 아홉 층 나무탑1235년 · 고려 고종 22년 · 막기1235년 다시 쳐들어온 몽골군은 몇 해 동안 고려 남쪽 깊숙이 휩쓸었고, 1238년 경주에 이르러 황룡사를 불태웠다. 645년에 세운 아홉 층 나무탑과 장륙존상, 큰 종이 이때 사라졌다. 탑의 내력과 3차 침입의 흐름을 정리했다.
- 삼별초 항쟁 — 용장성의 섬사람들1270년 · 고려 원종 11년 · 막기1270년 원종이 개경 환도와 삼별초 해산을 명하자, 배중손은 승화후 온을 왕으로 세우고 진도로 옮겨 용장성을 쌓았다. 1271년 5월 여몽연합군에 진도가 무너지고 남은 무리가 제주에서 1273년까지 버티기까지를 연표와 남은 유적과 함께 정리했다.
- 최무선과 진포 대첩 — 진포의 화포1377년 · 고려 우왕 3년 · 앞당기기14세기 고려의 바닷가는 해마다 왜구에게 털렸다. 최무선은 벽란도에서 염초 만드는 법을 배우고 화통도감을 세워 화포를 만들었고, 1380년 8월 금강 어귀 진포에서 왜선 500여 척을 불태웠다. 화약의 시작에서 황산대첩, 최무선의 화약이 조선에 남긴 것까지 정리했다.
조선
-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의 엇갈린 보고 — 엇갈린 두 보고1590년 · 조선 선조 23년 · 막기1590년 조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통신사를 보냈다. 돌아온 정사 황윤길은 반드시 전쟁이 난다고, 부사 김성일은 그런 낌새를 보지 못했다고 아뢰었다. 사행의 흐름과 두 보고, 그리고 임진왜란 직전 조선의 대비를 정리했다.
- 부산진·동래성 전투 — 동래성의 하루1591년 · 조선 선조 24년 · 막기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포에 닿았다. 이튿날 부산진성이, 15일에는 동래성이 무너졌다.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답한 동래부사 송상현과 성안 사람들의 하루를 정리했다.
- 탄금대 전투 — 조령이냐 들판이냐1592년 · 조선 선조 25년 · 막기1592년 4월, 북상하는 일본군을 막으러 신립이 충주로 내려갔다. 김여물은 험한 조령에서 막자고 했지만 신립은 탄금대 앞 들판에 배수진을 쳤고, 조선 주력군은 하루 만에 무너졌다. 부산 상륙에서 한양 함락까지 스무 날과, 신립의 판단을 두고 갈리는 평가를 정리했다.
- 한산도 대첩 — 한산 앞바다의 학 날개1592년 · 조선 선조 25년 · 앞당기기1592년 7월 8일, 이순신·이억기·원균의 연합 함대가 견내량의 일본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 학익진으로 감쌌다. 73척 가운데 59척을 깨뜨린 싸움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옥포에서 안골포까지 정리했다.
- 행주대첩 — 행주 언덕의 목책1592년 · 조선 선조 25년 · 앞당기기1593년 2월 12일, 권율이 이끈 조선군이 한강 가 행주산성에서 우키타 히데이에의 일본군 3만여 명을 막아 냈다. 이치와 독산성에서 행주까지, 목책과 화차, 승병과 한강의 화살 배가 맞물린 싸움을 정리했다.
- 2차 진주성 전투 — 촉석루 아래 남강1593년 · 조선 선조 26년 · 막기1593년 6월 일본군 수만이 지난해의 패배를 갚으려 진주성을 다시 쳤다. 명군은 화의를 이유로 움직이지 않았고, 김천일·최경회·황진 등이 들어간 성은 아흐레를 버티다 큰비에 무너졌다. 1차 전투와의 차이, 날짜별 공방, 엇갈리는 숫자와 논개 이야기가 전해진 길을 정리했다.
- 칠천량 해전 — 열두 척이 남기까지1597년 · 조선 선조 30년 · 막기1597년 7월, 거제 칠천도 앞바다에 머물던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의 밤 기습에 무너졌다. 이순신의 파직과 원균의 출전, 권율의 독촉, 그리고 열두 척이 빠져나와 명량으로 이어지기까지를 정리했다.
- 노량해전 — 관음포의 새벽1598년 · 조선 선조 31년 · 막기1598년 11월, 철수하려는 일본군을 이순신과 명 수군도독 진린의 연합 수군이 노량 바다에서 막았다. 7년 전쟁의 마지막 큰 싸움과 관음포에서 맞은 이순신의 죽음, 그 장면을 전하는 기록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눠 정리했다.
- 정묘호란 — 의주성의 무기고1626년 · 조선 인조 4년 · 막기1627년 1월 후금군 3만여 명이 압록강을 건넜다. 성안에 숨어든 한윤이 무기고에 불을 지르며 의주가 하루 만에 무너졌고, 안주와 평양을 거쳐 조선은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심하 전투와 이괄의 난에서 시작된 배경부터 정리했다.
- 병자호란 — 봉화와 강화도1636년 · 조선 인조 14년 · 막기1636년 12월 청군이 산성을 우회해 곧장 한양으로 내달렸다. 인조는 남한산성에 갇히고, 왕실이 피한 강화도가 1637년 1월 22일 함락되자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척화와 주화의 논쟁, 늦게 닿은 급보, 강화도의 함락까지 정리했다.
- 병인양요와 외규장각 의궤 — 강을 거슬러 온 배1866년 · 조선 고종 3년 · 막기1866년 한 해에 병인박해, 제너럴셔먼호 사건,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침공이 몰아쳤다. 정족산성에서 양헌수가 프랑스군을 물리쳤지만, 물러나던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를 가져갔다. 그 흐름과 2011년의 귀환까지 정리했다.
- 신미양요 — 광성보의 수자기1871년 · 조선 고종 8년 · 막기1871년 미국 아시아함대가 군함 5척으로 강화 해협에 들어와 조선과 싸웠다. 손돌목 포격, 초지진과 덕진진 점령, 광성보에서 전사한 어재연과 빼앗긴 수자기, 그리고 척화비까지의 흐름을 음력·양력 날짜와 함께 정리하고, 지금 강화에 남은 자리를 소개했다.
개항기·대한제국
- 강화도 조약 — 연무당의 협상1876년 · 조선 고종 13년 · 막기1876년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군함을 앞세워 강화도에서 조일수호조규를 맺었다. 연무당 회담과 조약의 내용, 그리고 무관세와 쌀 무제한 수출을 정한 7월의 부록과 무역규칙이 왜 더 큰 손해였는지 정리했다.
- 동학농민운동과 우금치 전투 — 우금치 고개1894년 · 조선 고종 31년 · 막기1894년 고부 봉기에서 전주성 입성, 전주화약과 집강소,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2차 봉기, 그리고 공주 우금치에서의 패배와 전봉준의 체포까지. 외국 군대가 들어오는 과정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의 한 해를 정리하고, 이름이 여러 개인 까닭과 오늘의 기억을 덧붙였다.
- 을미사변 — 건청궁의 새벽1895년 · 조선 고종 32년 · 막기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움직인 일본 수비대와 낭인 무리가 경복궁에 들어와 왕비 민씨를 시해했다. 삼국간섭에서 거사 계획, 광화문의 새벽, 목격자의 증언과 히로시마 재판, 아관파천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정리했다.
- 아관파천 — 영추문의 가마1896년 · 조선 건양 원년 · 막기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가 궁녀의 가마를 타고 경복궁 영추문을 빠져나가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겼다. 을미사변에서 춘생문 사건, 김홍집의 죽음, 1년의 공사관 체류와 넘어간 이권, 경운궁 환궁까지 정리했다.
- 을사늑약 — 중명전의 밤1905년 · 대한제국 광무 9년 · 막기1905년 11월 17일, 일본군이 경운궁을 둘러싼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가 대신들에게 하나씩 찬반을 물었다. 이튿날 새벽 외부대신 직인이 찍혀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잃었다. 열강의 묵인에서 중명전의 밤, 시일야방성대곡과 통감부까지 정리했다.
- 칙령 제41호와 시마네현 고시 — 석도를 아는 사람1905년 · 대한제국 광무 9년 · 막기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제41호로 석도(독도)를 울도군 관할로 정했다. 1905년 일본 시마네현은 대한제국에 알리지 않은 채 독도를 편입한다고 고시했고, 대한제국은 이듬해 울도군수 심흥택의 보고로 그 사실을 알았다. 칙령에서 지령 제3호까지 정리했다.
- 헤이그 특사 — 헤이그로 간 세 사람1907년 · 대한제국 광무 11년 · 막기1907년 고종은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려고 이상설·이준·이위종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보냈다. 시베리아 철도로 간 세 사람은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고, 이준은 헤이그에서 숨졌다. 여정과 이위종의 연설, 고종의 퇴위까지 정리했다.
- 국채보상운동 — 담배를 끊은 사람들1907년 · 대한제국 광무 11년 · 막기1907년 대구 광문사의 서상돈과 김광제가 담배를 끊어 일본에 진 나랏빚 1,300만 원을 갚자고 제안했다. 부인들은 가락지를, 학생과 노동자는 품삯을 냈다. 그러나 통감부의 횡령 혐의 공작으로 운동은 믿음을 잃었다. 시작과 확산, 무너진 과정을 정리했다.
- 대한제국 군대 해산 — 훈련원으로 가는 아침1907년 · 대한제국 융희 원년 · 막기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된 뒤 일본은 정미7조약의 비밀 각서로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했다. 8월 1일 아침 맨손으로 훈련원에 모이라는 명령, 대대장 박승환의 죽음, 남대문과 서소문의 싸움, 그리고 의병으로 이어진 흐름을 정리했다.
- 경술국치 — 흥복헌의 어전회의1910년 · 대한제국 융희 4년 · 막기1910년 8월 22일 창덕궁 흥복헌의 마지막 어전회의 뒤, 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데라우치가 병합조약에 조인했다. 일본은 일주일 동안 이를 숨긴 뒤 8월 29일 공포했다. 1909년 일본 각의의 결정부터 공포까지를 정리했다.
- 안중근의 옥중 투쟁과 동양평화론 — 뤼순 옥중의 원고1910년 · 대한제국 융희 4년 · 막기하얼빈 의거 뒤 뤼순으로 넘겨진 안중근은 사형 선고를 받고도 『동양평화론』을 마칠 시간을 청했다. 약속과 달리 1910년 3월 26일 형이 집행되어 원고는 앞부분에서 멈췄고, 유해는 지금도 찾지 못했다. 뤼순의 다섯 달을 정리했다.
일제강점기
- 105인 사건 — 105인 사건1911년 · 일제강점기, 무단통치기 · 막기1911년 조선총독부는 군자금을 모으던 안명근의 체포를 데라우치 총독 암살 모의로 부풀려 신민회와 서북 지방 인사 600여 명을 잡아들였다. 고문으로 받아 낸 자백, 1심 105명 유죄, 항소심 99명 무죄까지 조작 사건의 전말을 정리했다.
- 아우내 만세운동과 유관순 — 아우내 장날1919년 · 일제강점기 · 막기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유관순과 마을 사람 3천여 명이 독립 만세를 불렀다. 헌병의 발포로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한 19명이 목숨을 잃었고, 유관순은 서대문감옥에서 옥중 만세를 이끌다 순국했다. 준비부터 재판과 순국까지 정리했다.
- 경신참변 — 청산리 뒤의 마을들1920년 · 일제강점기 · 막기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독립군이 이긴 뒤, 일본군은 간도의 한인 마을들을 독립군 근거지로 몰아 불태웠다. 그해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경신참변을, 두 승리와 이어진 흐름 속에서 정리했다.
- 봉오동 전투 — 봉오동 골짜기의 매복1920년 · 일제강점기 · 앞당기기1920년 6월 7일, 홍범도와 최진동이 이끈 대한북로독군부가 만주 왕청현 봉오동 골짜기로 일본군을 끌어들여 세 방향에서 협공했다. 세 부대의 연합, 강양동 초소 공격과 삼둔자 싸움, 골짜기의 매복까지 날짜별로 정리했다.
- 청산리 대첩 — 백운평으로 가는 길1920년 · 일제강점기 · 앞당기기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새벽까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부대가 화룡현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10여 차례 싸워 이겼다. 사관연성소와 체코 군단의 무기, 훈춘 사건, 백운평에서 어랑촌까지의 엿새를 정리했다.
-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 관동대지진의 밤1923년 · 일제강점기 · 막기1923년 9월 1일 일본 수도권을 덮친 대지진 뒤,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거짓 소문이 퍼졌다. 내무성 전문이 소문을 공식화했고, 군경과 자경단의 손에 많은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다. 소문이 퍼진 과정과 지킨 사람, 추산으로만 남은 숫자와 지금의 추모를 정리했다.
- 6·10 만세운동 — 6·10 만세운동1926년 · 일제강점기 · 막기1926년 순종의 인산일인 6월 10일, 학생들이 장례 행렬 곳곳에서 격문을 뿌리고 만세를 불렀다. 권오설과 천도교 청년들이 준비한 격문은 6월 초 경찰에 발각되었지만, 따로 준비한 학생들이 그날을 지켰다. 준비와 발각, 당일의 행렬, 3·1운동과의 차이와 그 뒤를 정리했다.
- 윤봉길 의거와 그날 오후 — 훙커우 그날 오후1932년 · 일제강점기 · 막기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킨 날 오후, 프랑스 조계에서 검거가 벌어져 도산 안창호가 붙잡혔다. 한인애국단의 결성과 이봉창 의거, 김구의 은신과 임시정부의 이동까지 그날 앞뒤를 정리했다.
- 일장기 말소 사건 — 일장기 말소 사건1936년 · 일제강점기 · 막기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우승하자, 『동아일보』가 시상식 사진 속 그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 실었다. 기자들은 40여 일 신문을 받았고 『동아일보』는 정간,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었다. 8월 13일과 25일 두 번의 사진, 손기정이 가린 나무의 정체, 그 뒤의 손기정까지 정리했다.
- 고려인 강제이주 — 서쪽으로 가는 기차1937년 · 일제강점기, 소련 연해주 · 막기1937년 소련은 일본 첩자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극동의 고려인 17만여 명을 화물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옮겼다. 연해주 고려인 사회, 8월 21일의 결정과 며칠 전의 통고, 한 달 넘는 기차 길과 우슈토베의 첫 겨울, 새 땅에서 다시 일군 삶과 명예 회복까지 정리했다.
- 조선어학회 사건 — 큰사전 원고1942년 · 일제강점기, 전시체제기 · 막기1942년 일본 경찰은 『조선말 큰사전』을 엮던 조선어학회 학자 33명을 독립운동 혐의로 붙잡았다. 이윤재와 한징이 옥에서 숨졌고, 압수된 원고 2만 6천여 장은 광복 뒤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말모이에서 큰사전까지, 사전 편찬과 사건의 흐름을 연표로 정리했다.
- 한국광복군과 독수리 작전 — 독수리 작전1944년 · 일제강점기, 전시체제기 · 막기1940년 충칭에서 세워진 한국광복군은 1945년 미국 OSS와 손잡고 한반도에 몰래 들어갈 요원을 기르는 독수리 작전을 준비했다. 8월 4일 첫 기 38명이 훈련을 마쳤지만 침투 직전 일본이 항복했다. 광복군의 창설에서 작전의 좌절까지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