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국채보상운동
1907년 · 개항기·대한제국 · 막기
국채보상운동 — 담배를 끊은 사람들
한눈에 보기
- 언제
- 1907년 · 대한제국 광무 11년
- 어디서
- 대구 광문사와 한성 대한매일신보사
- 무슨 일
- 1907년 대구에서 시작해 온 국민이 담배를 끊고 가락지를 내놓아 일본에 진 나랏빚을 갚자고 돈을 모았다(국채보상운동).
- 무엇이 문제였나
- 갚을 빚은 1,300만 원이었다. 일본 통감부가 성금 횡령 누명을 씌우자 사람들이 믿음을 잃고 운동은 흩어져, 모은 돈의 행방도 흐려졌다.
- 이야기 속 목표
- 전국에서 모은 나랏빚 갚기 성금이 일본의 횡령 누명 공작에 무너지지 않게 한다
배경: 1,300만 원의 나랏빚
1904년 1차 한일협약으로 대한제국 정부에는 일본이 추천한 재정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가 들어왔다. 그는 1905년 1월부터 1906년 3월 사이 화폐 정리 자금 등의 명목으로 네 차례, 모두 1,150만 원의 차관을 들여왔다. 나라 빚은 1,300만 원에 이르렀다. 대한제국 한 해 예산과 맞먹는 큰돈이었다. 메가타가 벌인 화폐정리사업으로 옛 돈을 새 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많은 상인이 돈줄이 막혀 어려움을 겪었다.
빌린 돈의 상당 부분은 대한제국 사람들을 위해서라기보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다스리는 틀을 만드는 데 쓰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빚이 클수록 일본의 간섭도 깊어졌다. 나라가 진 빚을 국민이 스스로 갚아 일본의 손에서 벗어나자는 생각이 여기서 나왔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907년 초, 대구 광문사
1907년 1월 29일 무렵, 대구의 출판사 광문사의 특별회에서 부사장 서상돈이 의연금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백과사전은 이 일을 2월 중순으로 적는다. 서상돈과 사장 김광제는 국민 2천만 명이 석 달 동안 담배를 끊고 그 돈을 모으면 나랏빚을 갚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취지서는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 석 달을 모으면 빚을 갚을 만한 돈이 된다고 셈했다. 2월 21일,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만들던 『대한매일신보』에 ‘국채 1,300만 원 보상 취지서’가 실렸다.
전개 — 1907년, 전국으로 번진 성금
2월 22일 서울에서 국채보상기성회가 만들어졌다. 『황성신문』, 『제국신문』, 『만세보』 같은 신문들도 앞다투어 운동을 알리고 성금을 낸 사람의 이름을 실었다. 4월에는 대한매일신보사 안에 성금을 한데 모으는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가 생겼고, 6월부터 8월 사이 성금이 가장 많이 모였다. 전국에 20여 개 단체가 생겼다.
결말 — 1908년, 횡령이라는 누명
통감부는 이 운동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특히 영국인이라 통감부가 마음대로 손댈 수 없던 베델과 『대한매일신보』가 표적이 되었다. 1908년 통감부의 요청으로 영국 영사재판이 열려 베델은 금고 3주형을 받았다. 7월, 통감부는 양기탁과 베델이 성금 3만 원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내세워 양기탁을 구속했다.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의 소장 윤웅렬이 성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면서 운동 안의 갈등도 커졌다. 9월 무렵 양기탁은 무죄로 풀려났지만, 운동은 이미 믿음과 힘을 잃었다. 1909년 5월 베델이 세상을 떠났고, 1910년 나라를 빼앗긴 뒤 남은 성금의 행방은 흐려졌다.
연표로 보는 국채보상운동
- 1904년 메가타 다네타로가 재정 고문으로 들어온다.
- 1905년 1월~1906년 3월 네 차례에 걸쳐 1,150만 원의 차관이 들어온다.
- 1907년 1월 29일 무렵 대구 광문사에서 서상돈이 의연금 모금을 제안한다.
- 1907년 2월 21일 『대한매일신보』에 취지서가 실린다.
- 1907년 2월 22일 서울에서 국채보상기성회가 만들어진다.
- 1907년 4월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가 생긴다.
- 1907년 6~8월 성금이 가장 많이 모인다.
- 1908년 7월 통감부가 횡령 혐의를 내세워 양기탁을 구속한다.
- 1908년 9월 무렵 양기탁이 무죄로 풀려난다.
- 1909년 5월 베델이 세상을 떠난다.
누가 성금을 냈나
이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참여한 사람들의 폭이다. 고관과 부자뿐 아니라 상인과 노동자, 기생과 백정까지 성금을 냈다는 기록이 신문의 성금 명단에 남아 있다. 학생과 노동자는 적은 돈이나마 용돈과 품삯을 떼어 냈다. 남자들이 담배를 끊었다면, 여성들은 가락지와 비녀를 내놓았다. 대구 남일동의 부인들은 패물폐지부인회를 꾸렸고, 서울과 지방 곳곳에서 부인회가 만들어졌다. 집 안에 머물던 여성들이 나랏일에 이름을 걸고 나선 것은 그때로서는 새로운 일이었다.
나라 밖에서도 성금이 왔다. 일본에 있던 유학생들과 하와이와 연해주의 동포들이 돈을 모아 보냈다. 처음 대구에서 시작한 운동이 몇 달 만에 나라 안팎으로 번진 데에는 신문의 힘이 컸다. 성금을 낸 사람의 이름과 액수를 날마다 지면에 실어, 누구나 자기 이름이 함께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요 인물
- 서상돈
- 대구 광문사 부사장. 담배를 끊어 나랏빚을 갚자고 처음 제안했다.
- 김광제
- 광문사 사장. 서상돈과 함께 운동을 일으켰다.
- 양기탁
- 『대한매일신보』 총무.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났다.
- 베델
- 『대한매일신보』를 펴낸 영국인. 영국인이라 통감부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한국 이름은 배설이다.
- 윤웅렬
-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 소장.
- 메가타 다네타로
- 일본이 앉힌 재정 고문. 차관을 들여오고 화폐정리사업을 벌였다.
왜 무너졌나
국채보상운동이 무너진 까닭은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었다. 성금은 여러 단체와 신문사에 흩어져 모였고, 누가 돈을 맡고 어떻게 쓰고 공개하는지에 대한 약속이 처음부터 단단하지 않았다. 통감부는 바로 그 틈을 노렸다. 성금을 맡은 사람에게 횡령 혐의를 씌우자, 성금을 낸 사람들 사이에 의심이 퍼졌고 단체들끼리도 다투었다. 무죄 판결이 나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래서 통감부의 횡령 혐의는 조작 의혹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오늘날 남아 있는 것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다. 취지서와 성금 영수증, 신문 기사, 단체의 문서 등이 그 안에 들어 있다. 국민이 스스로 나라의 빚을 갚으려 한 기록이 세계가 함께 지킬 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대구에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기념관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뒤 많은 사람이 집 안의 금을 내놓은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아흔 해 남짓 전의 이 운동을 다시 떠올렸다.
더 알아 둘 점
이 무렵에는 새 화폐 단위 ‘원’과 옛 단위 ‘환’이 섞여 쓰여, 취지서는 ‘1,300만 환’으로도 적힌다. 횡령 혐의액도 3만 원으로 적는 자료와 30만 원으로 적는 자료가 있다. 모두 얼마가 모였는지는 믿을 만한 집계가 없어 이 글에서는 적지 않았다. 베델에 대한 영사재판이 열린 달도 자료에 따라 5월 또는 6월로 적힌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광문사의 견습 인쇄공, 남일동 부인회의 젊은 며느리, 대한매일신보사 회계실의 사환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대한제국 광무 11년, 대구 광문사와 한성 대한매일신보사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정미년, 대한제국의 나라 빚은 1,300만 원에 이른다. 일본이 보낸 재정 고문 메가타가 들여온 차관(외국에서 빌린 돈)이다. 그가 돈을 새로 바꾼 화폐정리사업으로 상인들의 돈줄은 막혔다.
대구의 출판사 광문사에서 서상돈과 김광제가 담배를 끊어 그 돈으로 나라 빚을 갚자고 제안한다. 2월 21일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이 만드는 『대한매일신보』에 취지서(뜻을 밝힌 글)가 실리자, 부인들은 가락지를 빼고 학생과 노동자는 품삯을 낸다.
그러나 1908년 7월, 통감부(일본이 세운 통치 기관)는 양기탁과 베델이 성금을 빼돌렸다며 양기탁을 붙잡는다. 무죄가 나지만 운동은 이미 믿음을 잃었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907년 1월 29일 무렵, 대구 광문사
광문사 특별회에서 서상돈이 일어나 나라 빚을 백성이 갚자고 말한다. 김광제가 먼저 담배를 끊겠다고 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이름(평판·여론), 사람(인맥),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 대구 장터에서 담배 끊기 서약서를 직접 받아 낸다 이름
장터 사람들이 너도나도 운동에 나선다. - 부인회·학생회·상인회 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사람
여러 모임이 성금 장부를 서로 보여 준다. - 객주들과 수수료 없이 성금을 실어 나를 길을 마련한다 재물
성금이 한 푼도 줄지 않고 서울에 닿는다.
넷째 장 · 전개 — 1907년 2월 22일, 서울 국채보상기성회
취지서가 실린 이튿날 서울에 기성회가 생겼다. 대구 남일동 부인들이 패물을 내놓았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린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재물(물자),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 대한천일은행 실무자에게 복식부기를 배운다 정보
돈이 어디서 샜는지 장부로 바로 보인다. - 지역별 성금을 한 금고로 옮길 운송 순서를 짠다 재물
성금마다 영수증이 남아 숫자가 맞는다. - 베델의 영국인 신분으로 성금 보관을 지킬 길을 찾는다 힘
일본 쪽이 성금 금고에 함부로 손 못 댄다.
다섯째 장 · 전개 — 1907년 4월, 총합소가 생긴 무렵
대한매일신보사 안에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성금을 한데 모으는 곳)가 섰다. 하와이와 연해주 동포의 성금까지 들어오고, 경무청(경찰 관청)은 지도부를 눈여겨본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정보(지식),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 단체 대표들로 성금 감사위원회를 만든다 사람
장부마다 여러 사람 도장이 찍혀 의심이 없다. - 조선인 순사보를 통해 경무청의 감시 방식을 듣는다 정보
경찰이 어디를 노리는지 미리 안다. - 신문에 성금 낸 이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싣자고 한다 이름
낸 사람이 직접 확인하니 믿음이 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907년 8월, 대한매일신보사 안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
성금이 가장 많이 모인 여름이다. 돈을 누가 맡고 어떻게 알릴지 정하는 회의가 열린다. 여기서 정한 방식이 이듬해 공작의 표적이 된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 매달 입금액과 보관처를 두 신문에 감사 서명과 함께 싣는다 정보
횡령 소문이 돌아도 신문 숫자로 바로 반박된다. - 성금 일부를 학교 기금과 조선인 은행 지분으로 돌린다 재물
성금이 학교로 남아 나라를 잃어도 쓰인다. - 두 쪽이 함께 서명해야 돈이 나가게 규약을 맺는다 사람
양쪽이 함께 묶여 내분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1908년 7월 통감부가 횡령 혐의를 내세워 양기탁을 붙잡았다. 양기탁은 무죄로 풀려났지만 운동은 내분 속에 힘을 잃었고, 남은 성금의 행방은 흐려졌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 재정 고문
- 일본이 대한제국 정부의 돈 관리에 앉힌 관리
- 차관
- 다른 나라나 기관에서 빌려 온 돈
- 화폐정리사업
- 대한제국의 옛 돈을 일본이 정한 새 돈으로 바꾼 일
- 의연금
- 좋은 뜻으로 내는 돈
- 영사재판
- 외국인을 그 나라 영사가 재판하는 제도
- 취지서
- 뜻을 밝힌 글
- 통감부
- 일본이 세운 통치 기관
- 패물폐지부인회
- 가락지를 모으는 부인 모임
-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
- 성금을 한데 모으는 곳
- 경무청
- 경찰 관청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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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담배를 끊은 사람들.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