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아관파천

1896년 · 개항기·대한제국 · 막기

아관파천 — 영추문의 가마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1896년 · 조선 건양 원년
어디서
경복궁과 정동 러시아공사관
무슨 일
1896년 2월 고종이 일본의 위협을 피해 궁녀의 가마를 타고 몰래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겨 갔다(아관파천).
무엇이 문제였나
임금이 일 년 동안 남의 나라 공사관에 머무는 사이 광산·삼림·철도 이권이 여러 나라로 넘어갔다. 그날 총리대신 김홍집은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야기 속 목표
임금이 궁을 떠난 날 총리대신 김홍집이 살아남고, 임금이 남의 나라 공사관에 일 년이나 머물지 않게 만든다

배경: 을미사변 뒤의 궁궐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조선 조정에 깊이 손을 뻗었다. 그러나 1895년 봄, 러시아와 프랑스, 독일이 나서 일본이 청에게서 얻은 랴오둥반도를 돌려주게 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이른바 삼국 간섭이다. 조선 왕실은 러시아에 기대 일본을 견제하려 했고, 왕비가 그 중심에 있다고 여겨졌다.

1895년 10월 8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움직인 무리가 경복궁에 들어와 왕비를 시해했다. 그 뒤 고종은 궁궐 안에서도 늘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궁 안팎은 친일 내각과 일본의 영향 아래 있었다. 11월 28일에는 고종을 궁 밖으로 모셔 내려던 춘생문 사건이 실패로 끝났다. 12월 30일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이 내려지자, 왕비의 죽음에 분노하던 사람들이 전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896년 1월, 러시아에 손을 내밀다

러시아와 가까운 이범진과 이완용, 이윤용 등은 고종 곁의 엄 상궁을 통해 임금을 설득했다. 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1896년 1월 9일 무렵, 이들은 러시아에 비밀리에 지원을 청했다.

전개 — 2월 10일, 러시아 수병이 들어오다

2월 10일, 러시아는 공사관을 지킨다는 이유로 인천에 있던 군함의 수병들을 서울에 들여보냈다. 그 수는 135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120명 안팎으로 적은 자료도 있다. 의병을 막느라 서울의 친위대 일부가 지방으로 내려가 있던 때였다. 궁 밖으로 나갈 준비가 갖추어졌다.

결말 — 2월 11일 새벽, 영추문

2월 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궁녀가 타는 가마에 몸을 싣고 경복궁 서쪽 문인 영추문을 빠져나가 정동의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겼다. 공사관에 자리 잡은 고종은 곧 김홍집 내각의 대신들을 체포하라고 명했다. 그날 총리대신 김홍집과 농상공부대신 정병하는 거리에서 군중에게 목숨을 잃었다. 며칠 뒤에는 탁지부대신을 지낸 어윤중도 피신하던 길에 목숨을 잃었다. 유길준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박정양을 중심으로 새 내각이 섰지만, 임금은 그 뒤로 1년 동안 공사관에 머물렀다. 고종이 경운궁, 지금의 덕수궁으로 돌아온 것은 1897년 2월 20일이었다.

공사관의 1년 동안 넘어간 것들

임금이 남의 나라 공사관에서 나랏일을 보는 동안, 여러 나라가 조선에서 이권을 얻어 갔다. 러시아는 함경도 경원과 종성의 광산을 캘 권리와 압록강 유역과 울릉도의 나무를 벨 권리를 얻었다. 미국인은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철도를 놓을 권리를 얻었고, 프랑스는 서울과 의주를 잇는 경의철도의 부설권을 얻었다. 평안도 운산 금광의 채굴권도 미국인에게 넘어갔다. 러시아는 군사 교관을 보내 궁궐을 지키는 군대의 훈련을 맡았고, 환궁 뒤에는 재정 고문까지 보내 조선의 돈과 군대에 손을 뻗었다.

한쪽으로 기운 영향력은 다른 나라들의 몫 요구를 불렀다. 이렇게 하나의 이권이 넘어가면 다른 나라도 같은 것을 요구하는 일이 이어졌고, 조선의 자원과 교통망이 하나씩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무렵의 일을 두고 열강의 이권 침탈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그래서다.

연표로 보는 열여섯 달

주요 인물

고종
조선의 대군주. 신변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겨 1년을 머물렀다.
엄 상궁
고종 곁의 상궁. 공사관으로 옮기자는 뜻을 임금에게 전했다. 뒤에 순헌황귀비가 된다.
이범진
러시아와 가까운 관료. 파천을 앞장서 꾸몄다.
이완용과 이윤용
파천에 함께한 관료들. 이완용은 이 무렵 친러 쪽에 섰다가 뒤에 친일로 돌아선다.
베베르와 스페이예르
당시 러시아 공사들.
김홍집
총리대신. 갑오개혁을 이끌었으나 파천 당일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뒤에 일어난 일

공사관 시절은 뜻밖에 새로운 움직임이 싹튼 때이기도 했다. 1896년 4월 7일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펴냈고, 7월에는 독립협회가 만들어졌다. 독립협회는 청의 사신을 맞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는 일을 벌였고, 임금이 하루빨리 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남의 나라 공사관에 머무는 임금은 자주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비쳤다.

1897년 2월 고종은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으로 돌아왔다. 경운궁은 러시아공사관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공사관과 가까운 곳이었다. 그해 10월 12일 고종은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황제에 올랐으며,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 공사관에서 돌아온 뒤 다시 자주의 모양을 갖추려는 시도였다.

더 알아 둘 점

아관파천은 왕이 자기 나라 궁궐을 떠나 남의 나라 공사관에서 나랏일을 본 사건이다. 일본의 압박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대가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졌고 여러 나라가 이권을 나눠 가졌다. 한편으로는 일본이 왕비를 시해하고 내각을 쥔 상황에서 임금이 고를 수 있는 길이 얼마나 좁았는지도 함께 보아야 한다는 평가가 있다.

김홍집은 피하라는 권유를 받고도 자신은 조선의 총리대신이라며 거리로 나갔다는 말이 전하지만, 정확한 말은 전언이다. 그를 정적으로 여긴 사람이 많았던 당시 사정을 단순한 선악으로 가르기는 어렵다. ‘아관’은 러시아공사관을 가리킨다. 공사관 건물은 한국전쟁 때 크게 부서져, 지금 서울 정동에는 탑 부분만 남아 사적으로 보존되어 있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영추문을 지키는 수문군, 김홍집 댁의 겸인(집안일 보는 사람), 정동 공사관 거리의 통역 사환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조선 건양 원년, 경복궁과 정동 러시아공사관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지난해 시월 일본인들이 궁에 들어와 왕비를 시해한 뒤(을미사변), 고종은 경복궁에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임금을 궁 밖으로 모셔 내려던 춘생문 일은 실패했고,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이 내리자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범진 등 러시아와 가까운 대신들은 임금 곁의 엄 상궁을 통해 러시아공사관(러시아 외교관이 머무는 관청)으로 옮기자고 아뢴다. 이월 열흘, 공사관을 지킨다며 러시아 수병(해군 병사) 백삼십여 명이 서울에 들어온다.

이월 열하루 새벽, 궁녀의 가마 두 채가 경복궁 서쪽 문인 영추문을 빠져나간다. 그날 총리대신 김홍집은 거리에서 목숨을 잃고, 임금은 일 년을 남의 공사관에서 보낸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896년 1월, 정동 거리

정동에는 미국·영국·러시아 공사관이 담을 맞대고 있다. 공사관마다 드나드는 조선 대신들이 늘었고, 광산을 캐고 숲을 벨 권리(이권)를 달라는 외국 상인들의 발길도 잦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재물(물자),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1896년 2월 초, 경운궁 옛 전각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은 공사관들과 담을 맞댄 옛 궁이다. 오래 비어 있던 전각들은 지붕이 새고 마루가 내려앉았지만, 이곳이라면 임금이 남의 담이 아닌 자기 궁에 머물 수 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재물(물자), 사람(인맥),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1896년 2월 10일 밤

러시아 수병들이 총을 메고 정동으로 들어왔다. 궁 안에서는 내일 새벽 가마 두 채가 나간다는 말이 아주 조용히 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정보(지식),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896년 2월 11일 아침, 광화문 앞과 정동

임금은 러시아공사관에 들었고, 대신들을 잡아들이라는 영이 떨어졌다. 광화문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김홍집은 궁으로 향하려 한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일 년을 머물렀다. 총리대신 김홍집과 농상공부대신 정병하는 그날 거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 일 년 동안 광산·삼림·철도 같은 이권이 여러 나라로 넘어갔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아관
러시아공사관을 부르던 말. 아(俄)는 러시아
파천
임금이 도성이나 궁궐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함
이권
광산을 캐거나 철도를 놓는 것처럼 이익을 얻는 권리
환궁
임금이 궁으로 돌아옴
내각
나라의 행정을 맡은 대신들의 모임
러시아공사관
러시아 외교관이 머무는 관청
수병
해군 병사
겸인
집안일 보는 사람
경운궁
지금의 덕수궁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1896년, 영추문의 가마.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