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을미사변
1895년 · 개항기·대한제국 · 막기
을미사변 — 건청궁의 새벽
한눈에 보기
- 언제
- 1895년 · 조선 고종 32년
- 어디서
- 경복궁 건청궁과 정동
- 무슨 일
-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공사 미우라가 움직인 일본 수비대와 낭인 무리가 경복궁에 들어와 왕비 민씨를 죽였다(을미사변).
- 무엇이 문제였나
- 한 나라의 왕비가 제 궁궐에서 외국 공사가 보낸 무리에게 목숨을 잃었다. 궁을 지키던 홍계훈과 병사들도 그 새벽 함께 죽었다.
- 이야기 속 목표
- 그 새벽이 오기 전에 왕비(중전)를 피신시키고 궁궐 경비를 바로 세운다
배경: 삼국간섭과 기울어진 궁궐
1895년 4월,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에게서 랴오둥반도를 얻었다. 그러나 곧 러시아·독일·프랑스 세 나라가 압박해 일본은 이 땅을 돌려주어야 했다. 이것이 삼국간섭이다. 일본의 힘이 꺾이는 것을 본 고종과 왕비 민씨는 러시아 쪽으로 다가가며 친일 내각을 견제했다. 7월에는 박영효가 왕비를 해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청일전쟁 동안 조선 조정은 갑오개혁을 밀어붙이던 내각과 왕실 사이에서 줄곧 흔들렸다. 개혁의 상당 부분은 일본 공사관의 입김 아래 이루어졌고, 왕실은 그 틈에서 권한을 되찾으려 했다. 삼국간섭은 왕실에게 바깥의 다른 힘을 끌어들일 기회로 보였고, 일본 쪽에서는 조선에서 쌓은 영향력을 통째로 잃을 수 있다는 위기로 읽혔다.
9월 1일, 새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부임했다. 군인 출신인 그는 외교 경험이 거의 없었고, 겉으로는 공사관에서 불경만 읽는 사람처럼 지냈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0월 초, 거사 계획
10월 3일 무렵, 미우라는 공사관 서기관 스기무라 후카시, 궁내부 고문 오카모토 류노스케 등과 계획을 세웠다. 흥선대원군을 끌어들여 앞세우고, 일본 교관이 훈련시킨 조선 부대인 훈련대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일이 끝난 뒤에는 조선 군대 안에서 벌어진 다툼으로 보이게 하려 했다.
전개 — 10월 7일, 앞당겨진 날
10월 7일, 군부대신 안경수가 훈련대를 해산하기로 했다는 방침을 미우라에게 알렸다. 해산 결정이 언제 내려졌는지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적는다. 미우라는 거사를 하루 앞당겼다. 그날 밤 낭인들이 공덕리 아소정에 있던 대원군을 데리고 나섰고, 훈련대 일부가 모였다. 이상한 움직임은 몇 시간 동안 이어졌지만, 그 소식은 궁에 제때 닿지 않았다.
결말 — 10월 8일 새벽, 경복궁
10월 8일 새벽 5시 무렵, 일본 수비대와 낭인 무리가 광화문으로 밀고 들어와 경복궁 안으로 들어왔다. 광화문 일대를 막던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과 시위대 병사들이 전사했다. 미국인 교관 다이가 지휘하던 시위대도 무너졌다. 침입자들은 고종과 왕비가 머물던 경복궁 북쪽의 건청궁까지 들어왔고, 궁내부대신 이경직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왕비가 시해되었다.
미우라는 이 일을 조선 군대 안의 충돌로 꾸미려 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러시아인 건축가 사바틴과 미국인 교관 다이가 본 것을 증언하면서 일본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각국 공사가 항의했고, 일본 정부는 미우라를 비롯한 관련자 48명을 일본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이듬해 1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재판에서 이들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 풀려났다.
연표로 보는 반년
- 1895년 4월 17일
- 시모노세키 조약. 청이 랴오둥반도와 타이완 등을 일본에 넘기기로 한다.
- 4월 23일
-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간섭. 일본은 랴오둥반도를 돌려주기로 한다.
- 7월
-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한다. 왕실이 러시아와 가까워진다.
- 9월 1일
- 미우라 고로가 일본 공사로 부임한다.
- 10월 7일
- 훈련대 해산 방침이 미우라에게 전해지고, 거사가 하루 앞당겨진다.
- 10월 8일 새벽
- 경복궁 침입. 홍계훈과 이경직이 목숨을 잃고, 왕비가 시해된다.
- 10월 10일
- 왕비를 폐서인한다는 조칙이 나온다. 고종은 서명을 거부했다고 전한다.
- 11월 28일
- 고종을 궁 밖으로 모시려던 춘생문 사건이 실패한다.
- 12월 30일
- 단발령. 을미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난다.
- 1896년 1월
- 히로시마 재판에서 관련자들이 모두 풀려난다.
- 2월 11일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아관파천이다.
주요 인물
- 왕비 민씨
- 고종의 왕비. 러시아와 가까워지며 일본을 견제하다 시해되었다. 1897년 명성황후로 추존되었다.
- 고종
- 조선의 왕. 사변 뒤 왕비를 폐서인하라는 조칙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고 전한다.
- 미우라 고로
- 일본 공사. 사변을 계획하고 지휘했다.
- 홍계훈
- 훈련대 연대장. 광화문 일대를 막다 전사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왕비가 궁을 빠져나가 피신하도록 도운 사람으로 전한다.
- 이경직
- 궁내부대신. 건청궁에서 목숨을 잃었다.
- 사바틴과 다이
- 현장을 본 러시아인 건축가와 미국인 교관. 이들의 증언으로 진상이 드러났다.
목격자와 기록
을미사변이 덮이지 않은 것은 그날 새벽 궁 안에 외국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바틴은 경복궁의 건축 일을 맡아 궁에 드나들던 사람이었고, 다이는 시위대를 가르치던 교관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이 본 일본인 무리와 군인의 움직임을 각국 공사관에 진술했고, 그 진술이 서울에 있던 외교관들 사이에 퍼졌다. 미국과 러시아 공사가 강하게 항의하자, ‘조선 군대의 내분’이라는 설명은 버티기 어려워졌다.
일본 정부가 관련자를 소환하고 재판에 넘긴 것도 이런 국제 여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로시마 재판은 이들의 책임을 묻지 않은 채 끝났다. 사건의 세부, 특히 누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당시 관계자들이 남긴 보고와 회고, 공사관 문서가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연구자들은 지금도 여러 기록을 맞대어 가며 경위를 따진다.
그 뒤에 일어난 일
사변 직후 들어선 내각은 개혁을 서둘렀다. 그해 12월 30일 단발령이 내려지자, 국모가 시해된 데 대한 분노와 상투를 자르라는 명령에 대한 반발이 겹쳐 전국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유인석, 이소응 같은 유학자들이 의병을 이끌었다.
궁 안에 사실상 갇힌 처지가 된 고종은 1896년 2월 11일 새벽 궁녀의 가마를 타고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관파천이다. 친일 내각은 무너졌지만, 이후 1년 가까이 왕이 외국 공사관에 머무는 동안 여러 나라가 광산과 철도 같은 이권을 앞다투어 가져갔다. 1897년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했고, 왕비는 명성황후로 추존되어 그해 국장이 치러졌다.
자주 헷갈리는 점
‘명성황후’는 1897년에 올린 칭호다. 사건 당시에는 왕비였고, 궁 안에서는 중전이라 불렀다. 날짜는 양력 10월 8일, 음력으로는 8월 20일이다. 조선이 양력을 공식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896년 1월 1일부터라, 당시 조선 쪽 기록에는 음력 날짜가 적혀 있다.
가담자가 모두 일본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우범선과 이두황 같은 훈련대의 조선인 대대장이 일본 측에 가담한 사실도 기록에 남아 있다. 반대로 일본 정부가 뒤에 미우라를 소환했다는 점에서, 이 일을 일본 사람 전체의 일로 뭉뚱그리기보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을미사변은 한 나라의 왕비가 자기 궁궐에서 외국 공사가 보낸 무리에게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이 일은 조선이 스스로를 지킬 군사력과 외교력을 얼마나 잃고 있었는지를 드러냈고, 아관파천과 대한제국 선포로 이어지는 흐름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곤녕합의 젊은 나인, 시위대의 젊은 하사, 러시아 공사관의 조선인 통역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조선 고종 32년, 경복궁 건청궁과 정동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을미년 봄, 러시아 등 세 나라의 압박(삼국간섭)으로 일본이 청에게서 얻은 랴오둥반도를 내놓는다. 고종과 왕비 민씨(중전)는 러시아 쪽으로 기울며 친일 내각을 견제한다.
9월, 새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부임한다. 그는 공사관에서 불경만 읽는 사람처럼 지낸다. 그러나 10월 7일, 군부대신 안경수가 훈련대(일본 교관이 키운 조선 부대)를 해산한다는 방침을 미우라에게 알린다.
이튿날 새벽, 일본 수비대와 낭인(일본의 떠돌이 무사)들이 경복궁에 들어와 왕과 왕비가 머무는 건청궁까지 이른다. 그 새벽 궁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중전도 그 가운데 있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895년 7월, 박영효가 일본으로 떠난 뒤
개화파 대신 박영효가 왕비를 해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궁 안 사람들은 그 말을 쉬쉬하면서도 밤마다 문단속을 더 단단히 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정보(지식),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 임오년 피신을 도운 홍계훈 쪽 사람들과 연을 맺는다 사람
궁을 몰래 빠져나가는 길을 알게 된다. - 진고개 여관을 드나드는 낭인들을 행상에게 살피게 한다 정보
낭인 무리가 몇이나 모였는지 날마다 안다. - 궁 밖에 피신할 집과 가마, 옷가지를 마련해 둔다 재물
궁 밖에 왕비를 숨길 집과 옷이 생긴다.
넷째 장 · 전개 — 1895년 9월 1일, 미우라 공사가 부임한 날
새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부임했다. 그는 공사관에 틀어박혀 불경을 읽는다고 한다. 정동의 외국인들은 오히려 그 조용함을 이상하게 여긴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힘(무력·조직),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 군부 서리를 통해 훈련대 장교들의 동태를 듣는다 정보
일본과 손잡은 장교들의 이름을 미리 안다. - 시위대 하사관들과 밤중 비상 소집 신호를 정해 둔다 힘
한밤에도 병사들을 바로 불러 모을 수 있다. - 정동 외국인들 사이에서 믿을 만한 통역으로 이름을 얻는다 이름
내 경고를 외국 공사관이 믿어 준다.
다섯째 장 · 전개 — 1895년 10월 7일 낮, 훈련대 해산 방침이 전해진 뒤
군부대신 안경수가 훈련대 해산 방침을 일본 공사관에 알렸다는 말이 돈다. 훈련대 막사 주변에 오가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힘(무력·조직),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 상궁들과 곤녕합에서 신무문까지 가는 길을 걸어 본다 사람
어둠 속에서도 빠져나갈 길이 몸에 익는다. - 광화문 초소 병사들에게 오늘 밤 잠들지 말라 당부한다 힘
그 밤 정문 병사들이 깨어 있게 된다. - 신무문 밖 민가에 가마와 가마꾼을 미리 대어 둔다 재물
궁을 나서자마자 왕비를 태워 갈 수 있다.
여섯째 장 · 그날 — 1895년 10월 7일 밤(음력 8월 19일), 경복궁 건청궁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이 머무는 공덕리 별장 쪽으로 낯선 사람들이 몰려갔다는 전갈이 왔다. 훈련대 일부가 어둠 속에 모인다. 새벽까지 몇 시간이 남았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 러시아 공사관을 거쳐 고종께 경고를 올린다 정보
왕이 미리 알아 습격 전에 왕비 처소를 옮긴다. - 시위대를 건청궁으로 모으고 외국인 증인을 들인다 힘
보는 눈이 많아져 침입하려던 무리가 물러간다. - 중전마마를 궁녀 차림으로 모셔 궁 밖으로 피신시킨다 사람
왕비가 궁 밖으로 피해 목숨을 건진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10월 8일 새벽 일본 수비대와 낭인들이 경복궁에 들어와 건청궁에서 중전을 시해했다. 광화문을 막던 홍계훈과 시위대 병사들, 궁내부대신 이경직도 그 새벽 목숨을 잃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 삼국간섭
- 러시아·독일·프랑스가 일본에 랴오둥반도를 청에 돌려주라고 압박한 일
- 시위대
- 궁궐을 지키는 조선 군대
- 훈련대
- 일본 교관이 훈련시킨 조선의 신식 부대
- 폐서인
- 왕비 같은 신분을 빼앗아 평민으로 만듦
- 추존
- 죽은 뒤 칭호를 높여 올림
- 낭인
- 관직이나 정해진 소속 없이 활동하던 일본의 민간인 무리
- 곤녕합
- 건청궁 안 왕비의 처소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1895년, 건청궁의 새벽.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