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칙령 제41호와 시마네현 고시
1905년 · 개항기·대한제국 · 막기
칙령 제41호와 시마네현 고시 — 석도를 아는 사람
한눈에 보기
- 언제
- 1905년 · 대한제국 광무 9년
- 어디서
- 울릉도 도동과 한성 외부
- 무슨 일
- 1905년 2월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를 주인 없는 섬이라며 제 현에 넣는다고 알렸다(시마네현 고시). 대한제국엔 알리지 않았다.
- 무엇이 문제였나
- 대한제국은 1900년 칙령으로 독도(석도)를 이미 울도군 땅으로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듬해에야 알게 되어, 외교권을 잃은 뒤라 항의조차 못 했다.
- 이야기 속 목표
- 일본이 독도를 제 땅으로 고시한 일을 그해 안에 알아내, 외교권을 잃기 전에 공식 항의를 남긴다
배경: 울릉도와 석도
울릉도 동남쪽 바다에는 바위섬 독도가 있다. 조선은 오랫동안 울릉도에 사람이 들어가 사는 것을 막고 관리를 보내 살피게 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다 1880년대 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섬에 드나들며 나무를 베어 간다는 보고가 잇따르자, 1882년 검찰사 이규원을 보내 섬을 조사하게 하고 이듬해부터 사람들을 옮겨 살게 했다. 울릉도를 비워 두던 정책에서 직접 개척하고 다스리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은 칙령 제41호를 내려 울릉도를 울도로 고치고, 섬을 다스리던 도감을 군수로 올렸다. 그 제2조는 울도군이 맡는 곳을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로 정했다. 칙령은 이틀 뒤 나라의 공식 소식지인 관보에 실렸다. 한국 정부는 이 석도가 독도라고 본다. 돌을 뜻하는 독이라는 지역 말을 한자로 옮긴 이름이 석도라는 설명이다.
그로부터 몇 해 뒤 러일전쟁이 터졌다. 1904년 9월, 일본 오키섬의 어업가 나카이 요자부로가 이 섬을 일본 땅으로 넣고 자기에게 빌려 달라고 일본 정부에 청원했다. 이 섬에는 강치, 곧 바다사자가 많았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의 결정
1905년 1월 28일, 일본 각의는 이 섬을 주인 없는 섬으로 보고 일본 영토로 넣기로 결정했다. 대한제국이 다섯 해 전 칙령으로 이 섬을 울도군 관할로 정해 두었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전개 —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2월 22일, 시마네현은 고시 제40호를 내어 섬에 다케시마라는 이름을 붙이고 오키섬의 관청이 맡는다고 알렸다. 이 고시는 중앙 정부의 관보가 아니라 현의 고시로 나왔고, 대한제국에는 아무런 통보도 협의도 없었다. 그해 5월 동해에서 러시아 함대와 일본 함대가 맞붙었고, 일본은 그해 여름 독도에 망루를 세웠다고 전한다.
결말 — 1905년 11월부터 1906년 5월까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잃었다. 다른 나라에 공식으로 항의할 길이 막힌 것이다. 이듬해 1906년 3월 28일, 오키섬의 도사 일행 등 시마네현의 조사단이 울릉도에 와서 울도군수 심흥택에게 독도가 일본 땅이 되었다고 말했다. 심흥택은 바로 다음 날 “본군 소속 독도”라는 말로 시작하는 보고서를 강원도 관찰사와 내부에 올렸다.
강원도 관찰사 서리 이명래의 보고를 받은 의정부 참정대신 박제순은 5월 20일 지령 제3호를 내렸다. 독도를 일본 땅이라 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니, 섬의 형편과 일본인들의 행동을 다시 조사해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5월에는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도 이 일을 보도했다. 그러나 외교권이 없는 대한제국은 일본에 공식으로 항의할 수 없었다.
연표로 보는 여섯 해
- 1882년 검찰사 이규원이 울릉도를 조사한다. 이듬해부터 백성을 옮겨 살게 한다.
-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41호. 울도군을 두고 관할을 울릉전도, 죽도, 석도로 정한다.
-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일어난다. 9월 나카이 요자부로가 편입과 대여를 청원한다.
- 1905년 1월 28일 일본 각의가 편입을 결정한다.
-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가 나온다. 대한제국에는 알리지 않는다.
-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잃는다.
- 1906년 3월 28~29일 시마네현 조사단이 울릉도에 오고, 심흥택이 보고서를 올린다.
- 1906년 5월 20일 의정부가 지령 제3호를 내린다.
사료와 기록
이 사건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드는 문서는 네 가지다. 대한제국 관보에 실린 칙령 제41호, 일본 각의의 편입 결정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울도군수 심흥택의 보고를 담은 강원도 관찰사 서리 이명래의 보고서, 그리고 의정부 참정대신의 지령 제3호다. 심흥택이 쓴 문장은 이명래의 보고서 안에 옮겨 적혀 전한다. 이 문서들 덕분에 대한제국이 편입 소식을 듣자마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쪽은 여기에 더해 일본 메이지 정부의 최고 기관이던 태정관이 1877년 울릉도와 또 하나의 섬은 일본과 관계가 없다고 지시한 문서도 근거로 든다. 이 섬들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를 두고 두 나라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문서를 읽을 때는 누가 어떤 맥락에서 썼는지를 함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강치가 사라진 섬
나카이 요자부로가 이 섬을 탐낸 까닭은 강치였다. 강치는 가죽과 기름을 얻을 수 있어 값이 나갔다. 편입 뒤 독도에서는 일본 어업자들이 강치를 대규모로 잡았고, 그 수는 빠르게 줄었다. 한때 섬을 뒤덮을 만큼 많던 강치는 20세기 중반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은 독도 바다에서 사라진 것으로 본다. 독도 이야기는 영토의 이야기이면서, 한 섬의 생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요 인물
- 고종
- 대한제국 황제. 1900년 칙령 제41호를 내렸다.
- 심흥택
- 울도군수. 1906년 시마네현 조사단에게서 편입 사실을 듣고 곧바로 보고했다.
- 이명래
- 강원도 관찰사 서리이자 춘천군수. 심흥택의 보고를 의정부에 올렸다.
- 박제순
- 의정부 참정대신. 지령 제3호로 일본 영토라는 말이 근거 없다고 했다. 그는 앞서 을사늑약에 서명한 외부대신이기도 했다.
- 나카이 요자부로
- 오키섬의 어업가. 독도 편입과 대여를 일본 정부에 청원했다.
더 알아 둘 점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국제법으로도 한국 고유의 영토이며, 1905년 시마네현 고시는 국권을 빼앗아 가던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 행위로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칙령 제41호는 일본의 편입보다 다섯 해 앞서 대한제국이 이 섬을 자기 행정 구역에 넣었다는 증거로 쓰인다. 일본 정부는 이와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다케시마라는 이름은 이 글에서 고시의 내용을 설명할 때만 썼다.
이 사건의 핵심은 시간이다. 일본의 결정은 전쟁 중에, 상대국에 알리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그리고 대한제국이 그 사실을 안 때는 이미 항의할 권리를 빼앗긴 뒤였다. 시마네현 고시와 을사늑약 사이의 아홉 달 동안 이 일이 한성에 닿았다면 공식 질의와 항의를 남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는 이 아홉 달을 무대로 삼았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울도군청의 젊은 서기, 독도 뱃길을 아는 울릉도 어부, 황성신문의 견습 기자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대한제국 광무 9년, 울릉도 도동과 한성 외부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은 칙령(황제의 명령) 제41호로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올리고 그 관할을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로 정했다. 석도는 울릉도 동남쪽 바다의 바위섬, 독도다.
러일전쟁이 한창인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 회의는 이 섬을 주인 없는 섬이라 보고 편입을 정한다. 2월 22일 시마네현은 고시(관청이 널리 알리는 글) 제40호로 섬에 새 이름을 붙여, 현의 오키섬 관청이 맡는다고 알린다. 대한제국에는 아무 통보도 없다.
그해 11월 17일 을사조약으로 다른 나라에 항의할 권리인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간다. 울릉도 군수 심흥택이 그 일을 안 것은 이듬해 3월 28일, 울릉도에 온 시마네현 관리들의 입을 통해서였다. 항의할 길은 이미 막혀 있었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905년 봄, 울릉도 도동 포구
올봄 들어 석도 쪽으로 가는 일본 어선이 부쩍 늘었다. 강치(바다사자)를 잡는다는 배들은 돌아올 때마다 "이제 저 섬은 우리 현 땅"이라는 말을 흘린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힘(무력·조직), 사람(인맥)의 기반을 다진다.
- 포구에 드나드는 일본 어선을 장부에 적는다 정보
일본 어선이 섬을 노린다는 숫자 증거가 생긴다. - 포구 어부들과 석도 뱃길을 다시 익힌다 힘
언제든 독도에 직접 가 볼 수 있게 된다. - 오키에서 온 늙은 어부와 술잔을 나눈다 사람
일본이 섬을 편입했다는 단서를 먼저 듣는다.
넷째 장 · 전개 — 1905년 여름, 부산을 오가는 상선
부산에서 들어온 상선에 일본 지방 신문 몇 장이 섞여 있었다. 한 귀퉁이에 오키 앞바다 섬 이야기가 실렸다는 말이 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이름(평판·여론),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 신문을 구해 고시 기사를 한 자씩 옮겨 적는다 정보
고시 날짜와 섬 위치, 확실한 증거를 쥔다. - 한성 신문사에 이 일을 알리는 투고를 보낸다 이름
서울 신문사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인다. - 한성까지 갈 노자와 뱃삯을 마련한다 재물
증거를 들고 서울까지 갈 수 있다.
다섯째 장 · 전개 — 1905년 가을, 한성
한성은 일본 공사관을 오가는 수레로 어수선하다. 외부(外部, 외교를 맡은 관청)가 일본에 공문을 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나만 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정보(지식),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 외부 교섭국 주사와 안면을 튼다 사람
외교 관청 윗선에 말이 닿을 길이 생긴다. - 칙령 제41호가 실린 관보 사본을 구한다 정보
"석도는 우리 땅"이라는 공식 증거를 쥔다. - 신문사 편집인에게 기사를 실어 달라 청한다 이름
증거만 갖추면 신문에 실을 수 있다.
여섯째 장 · 그날 — 1905년 10월, 한성 외부 청사
을사조약까지 한 달 남짓 남았다. 내 손에는 칙령 제41호 사본과 일본 신문 기사, 울릉도 포구 장부가 있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 칙령 사본과 장부를 묶어 외부에 올린다 정보
대한제국의 공식 항의 공문이 기록으로 남는다. - 외부 주사를 통해 대신에게 직접 아뢴다 사람
대신이 일본 공사에게 항의문을 보낸다. - 신문에 울도군 석도 기사를 싣는다 이름
온 나라가 알고 정부가 공문으로 따진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대한제국은 이듬해 3월 울도군수 심흥택의 보고로 편입 소식을 들었다. 의정부는 5월 지령 제3호로 근거 없는 말이라 했지만, 외교권을 잃은 뒤라 일본에 공식 항의하지 못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 울도군
- 1900년 울릉도를 군으로 올려 붙인 이름
- 칙령
- 황제가 내린 명령으로 법의 효력을 가짐
- 각의
- 일본 내각의 회의
- 도사
- 시마네현 오키섬을 맡은 관청의 우두머리
- 지령
- 윗 관청이 아랫 관청에 내리는 지시
- 조회
- 나라끼리 사실을 묻는 공식 문서
- 고시
- 관청이 널리 알리는 글
- 관보
- 정부의 공식 소식지
- 외부
- 外部, 외교를 맡은 관청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 외교부 독도 · 외교부, 칙령 제41호·시마네현 고시·심흥택 보고·지령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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