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강화도 조약

1876년 · 개항기·대한제국 · 막기

강화도 조약 — 연무당의 협상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1876년 · 조선 고종 13년
어디서
강화도 연무당과 동래 왜관
무슨 일
1876년 일본이 군함을 앞세워 강화도에서 조선과 조약을 맺었다(강화도 조약). 조선이 처음으로 나라 문을 연 근대 조약이다.
무엇이 문제였나
뒤따른 규칙으로 일본 물건엔 세금(관세)이 없고 쌀은 얼마든 실어 갈 수 있었다. 7년 동안 나라 곳간은 비고 쌀값은 올랐다.
이야기 속 목표
조선의 첫 근대 조약에 "수입품에 세금을 매긴다", "흉년엔 쌀 수출을 막는다"는 조항을 넣는다

배경: 운요호의 포성

그 전 10년 동안 조선은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함대를 물리친 뒤, 서울과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나라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같은 무렵 일본에서는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정한론은 그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조선에 나라 문을 열게 하겠다는 생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875년 8월 21일(양력 9월 20일),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초지진 앞에 다가와 교전이 벌어졌고, 운요호는 이어 영종진을 공격했다. 마실 물을 구하러 왔다는 것이 일본의 설명이었지만, 허락 없이 남의 나라 요새 앞 물길로 들어온 것 자체가 도발이었다. 일본은 이 일을 구실로 조선에 나라 문을 열라고 요구했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876년 1월 말, 강화도 앞바다의 함대

1876년 1월 말(양력 2월 초), 일본 전권대신 구로다 기요타카와 부전권 이노우에 가오루가 이끄는 함대가 강화도 앞바다에 닿았다. 군함과 병력을 앞세운 무력 시위였다. 미국이 20여 년 전 일본에 함대를 보내 문을 열게 한 방식을 그대로 따른 셈이다.

전개 — 연무당 회담과 조정의 논쟁

1월 17일(양력 2월 11일)부터 강화의 군사 훈련장 연무당에서 회담이 열렸다. 조선에서는 접견대관 신헌과 부관 윤자승이 나왔다. 일본은 최혜국 조항이 들어간 13개 조의 초안을 내밀었고, 조선은 일부 조항을 빼고 고쳤다. 조정에서는 박규수와 역관 오경석이 개항은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최익현은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엎드려 일본과 서양은 한 몸이라며 반대 상소를 올렸다. 고종은 수교를 결정했다.

2월 3일(양력 2월 27일), 조일수호조규 12관이 맺어졌다. 흔히 강화도 조약 또는 병자수호조약이라 부른다.

결말 — 1876년 7월, 부록과 무역규칙

4월에는 1차 수신사 김기수가 일본에 다녀왔다. 7월 6일 무렵(양력 8월 24일), 조선의 조인희와 일본의 미야모토 고이치가 조약의 부록과 무역규칙을 맺었다. 이때 맺은 규칙과 함께 주고받은 문서에서, 일본 상품에는 당분간 관세를 물리지 않고, 조선의 쌀과 곡식을 실어 가는 것을 막지 않으며,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를 쓸 수 있다고 정했다. 조약의 불평등함이 실제 손해로 굳어진 것은 바로 이때였다.

관세와 흉년에 곡식 수출을 막는 방곡 조항은 1883년 조일통상장정에서야 들어갔다. 그 사이 7년 동안 무관세 무역이 이어졌다.

열두 조항 가운데 눈여겨볼 것

첫째 관은 조선을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 자주국이라 적었다. 겉으로는 조선을 높이는 말 같지만, 실제로는 조선과 청 사이의 오랜 관계를 끊어 청이 끼어들 여지를 줄이려는 뜻이 담겨 있었다.

항구를 여는 조항은 부산 말고도 경기·충청·전라·경상·함경 다섯 도의 바닷가에서 항구 두 곳을 더 골라 열게 했다. 이 두 곳이 뒤에 원산과 인천이 된다. 일본이 조선의 바닷가를 마음대로 측량해 지도를 만들 수 있게 한 조항은, 배가 드나들 물길을 일본이 먼저 손에 넣는다는 뜻이었다.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죄를 지으면 일본 영사가 재판하도록 한 영사재판권은 조선의 법이 자기 땅의 외국인에게 미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있어야 할 것은 빠졌다. 들고 나는 물건에 세금을 매기는 관세 조항이 없었고, 항구와 측량과 재판에 관한 조항은 대부분 일본 쪽이 누릴 권리만 정했다. 조약이 ‘수호’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실은 한쪽으로 기운 약속이었던 까닭이다.

주요 인물

신헌
조선의 접견대관. 연무당에서 일본 대표와 협상했다. 이 협상의 경과를 『심행일기』로 남겼다.
구로다 기요타카
일본의 전권대신.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에 왔다.
박규수
개항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관료. 10년 전에는 평안감사로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지휘했다.
오경석
역관. 청을 오가며 바깥 사정을 알아 개항론을 폈다.
최익현
도끼를 들고 반대 상소를 올린 유학자. 이 일로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조인희
7월 부록과 무역규칙 협상을 맡은 조선 대표.

그 뒤에 일어난 일

조약을 맺은 조선은 바깥을 직접 보러 사람을 보냈다. 1876년 1차 수신사 김기수는 일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일동기유』로 남겼다. 1880년 2차 수신사 김홍집은 청의 외교관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을 들고 돌아왔는데, 러시아를 막으려면 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이어져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조정과 유생 사회에 큰 논쟁을 일으켰다.

부산에 이어 1880년 원산, 1883년 인천이 열렸다. 개항장에는 일본 상인이 머무는 거류지가 생겼고, 이들은 무명이나 잡화를 들여오고 쌀과 콩, 금을 사 갔다. 곡식이 빠져나가자 쌀값이 올랐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도시의 하층민과 군인들에게 돌아갔다. 1882년 구식 군인들이 들고일어난 임오군란의 밑바탕에도 이런 사정이 깔려 있었다.

1882년 조선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는 관세 조항이 들어갔고, 이를 본보기로 이듬해 일본과도 조일통상장정을 맺어 관세와 방곡 조항을 넣었다. 그러나 1889년 함경도에서 방곡령을 내렸다가 일본이 항의해 배상금을 물게 된 일처럼, 한번 기운 저울은 쉽게 바로 서지 않았다.

자주 헷갈리는 점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맺은 첫 근대 조약이다. 조선 대표들이 국제법을 몰라 당했다고 조롱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보다는 서양식 조약과 관세 제도를 먼저 겪은 일본과 그렇지 못한 조선 사이의 정보 차이로 보는 것이 맞다. 일본 역시 몇십 년 전 서양과 맺은 조약에서 관세를 스스로 정할 권리를 잃었고, 그것을 되찾으려 애쓰던 처지였다.

날짜도 헷갈리기 쉽다. 조약문의 날짜는 2월 2일로 적혀 있고, 체결은 조선력 2월 3일, 양력으로는 2월 27일이다. 그리고 이 조약에서 눈여겨볼 점은 큰 조약보다 그 뒤의 작은 규칙이 더 오래 손해를 남겼다는 것이다. 세금 없이 들어온 물건과 막힘없이 실려 나간 쌀은 쌀값을 올리고 나라 곳간을 비웠다. 강화도 조약의 이름은 기억해도 7월의 무역규칙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오경석 밑의 젊은 왜학 역관, 강화부의 어린 통인, 동래 왜관 객주의 장부꾼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조선 고종 13년, 강화도 연무당과 동래 왜관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지난해 8월,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초지진(바닷가 요새) 앞에서 포를 쏘고 영종진을 쳤다. 일본은 그 일을 구실로 문을 열라고 요구한다.

병자년 정월 말, 일본 대표 구로다 기요타카의 함대가 강화도 앞바다에 닿는다. 조선 대표 신헌이 연무당(강화의 군사 훈련장)에서 그와 마주 앉고, 2월 3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열두 조가 맺어진다. 관세(들어오는 물건에 매기는 세금)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7월, 뒤따른 부록과 무역규칙에서 일본 상품엔 세금을 안 매기고 쌀은 얼마든 실어 가도 된다고 정해진다. 그 뒤 일곱 해 동안 개항장(외국 배에 연 항구)의 쌀은 세금 없이 바다를 건넌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876년 정월, 오경석의 집

운요호 소식 뒤로 오경석은 청에서 사 온 책들을 꺼내 펼쳤다. 개화파 대신 박규수는 문을 열 수밖에 없다 하고, 문을 닫자는 선비 최익현은 도끼를 들고 대궐 앞에 엎드릴 채비를 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재물(물자),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1876년 1월 17일(양력 2월 11일), 강화도 연무당

회담이 열렸다. 일본은 열세 조의 초안을 내밀고, 바다에는 군함이 떠 있다. 신헌 대관은 조항을 하나씩 짚으며 시간을 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사람(인맥),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1876년 4월, 수신사 김기수가 떠나던 무렵

조약은 맺어졌지만 무역의 세부 규칙은 아직 비어 있다. 수신사(일본에 보낸 외교 사절) 김기수가 일본으로 떠나고, 7월에 부록과 무역규칙을 정하기로 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재물(물자), 사람(인맥),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876년 7월 초, 한양의 무역규칙 협상장

조선 협상 대표 조인희와 일본 대표 미야모토 고이치가 마주 앉았다. 오늘 정해지는 몇 줄이 개항장의 쌀값과 나라 곳간을 좌우한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7월 부록과 무역규칙에서 일본 상품 무관세와 양곡 무제한 수출, 일본 화폐 통용이 허용되었다. 관세와 방곡 조항은 1883년 조일통상장정에서야 들어갔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접견대관
외국 사절을 맞아 협상하는 조선의 대표
영사재판권
외국인이 저지른 죄를 그 나라 영사가 재판하는 권리
최혜국 조항
다른 나라에 준 혜택을 똑같이 달라는 조항
방곡령
흉년에 곡식이 나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명령
종주권
다른 나라를 거느린다고 내세우는 권리
수신사
개항 뒤 일본에 보낸 조선의 사절
초지진
바닷가 요새
연무당
강화의 군사 훈련장
조일수호조규
강화도 조약
관세
들어오는 물건에 매기는 세금
개항장
외국 배에 연 항구
왜관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1876년, 연무당의 협상.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