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고조선의 멸망

기원전 109년 · 고조선·삼국·발해 · 막기

고조선의 멸망 — 안에서 무너진 왕검성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기원전 109년 · 고조선 우거왕 대
어디서
왕검성과 패수
무슨 일
기원전 109년, 중국 한나라 무제가 바다와 땅 두 길로 고조선을 쳐들어왔다. 고조선은 도읍 왕검성에서 1년 가까이 버텼다(고조선 멸망).
무엇이 문제였나
끝내 성문을 연 것은 한나라 군대가 아니라 왕을 죽인 성안 대신들이었다. 고조선은 망했고, 한은 그 땅에 자기 나라 고을(군현)을 두었다.
이야기 속 목표
왕검성 안의 배신을 막아, 고조선이 망하지 않고 전쟁을 끝내게 만든다

배경: 길목을 쥔 나라

기원전 2세기 말의 고조선은 위만의 손자 우거왕이 다스리던 나라다. 역사책에서는 위만이 왕이 된 뒤의 고조선을 따로 위만조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무렵 고조선은 한반도 남쪽의 진국과 진번 같은 세력이 중국의 한나라와 직접 거래하지 못하게 길을 막았다. 철과 소금, 곡식이 오가는 길목을 한가운데에서 쥐고 그 이익을 얻은 것이다.

한나라 쪽에서 보면 이것은 눈엣가시였다. 한의 사신 섭하가 와서 교섭했지만 이야기는 틀어졌다. 섭하는 돌아가는 길에 자기를 배웅하러 나온 조선의 비왕, 곧 왕을 돕는 높은 신하를 죽였다. 한나라는 그런 섭하를 요동동부도위라는 국경 지방의 군사 책임자로 앉혔고, 조선은 군사를 보내 그를 습격해 죽였다. 이 일이 전쟁의 빌미가 되었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기원전 109년 가을, 수륙 양면 침공

기원전 109년, 한 무제는 바다와 땅 두 길로 군대를 보냈다. 바다로는 누선장군 양복이 수군을 이끌고, 땅으로는 좌장군 순체가 육군을 이끌었다. 그러나 첫 싸움은 한나라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양복의 수군은 왕검성 앞에서 패해 흩어졌고, 순체의 군대도 패수 일대에서 오래 고전했다.

전개 — 깨진 협상과 갈라진 성안

한 무제는 사신 위산을 보내 협상을 시도했다. 우거왕은 태자를 보내 사죄하겠다고 했고, 태자는 실제로 길을 나섰다. 문제는 태자를 따르는 무장한 호위 병력이었다. 이들이 패수를 건너는 문제를 두고 양쪽이 서로를 믿지 못했고, 태자는 결국 되돌아갔다. 협상은 깨졌고, 한 무제는 일을 그르친 위산을 처형했다.

한나라 진영도 편하지 않았다. 화친 쪽에 기운 양복과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순체가 서로 부딪쳤다. 한 무제는 공손수를 보내 둘 사이를 조정하게 했고, 결국 양복이 붙잡혔다. 그러는 사이 왕검성 안에서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기』 조선열전에 따르면 상 노인, 상 한음, 니계상 삼, 장군 왕겹 같은 이들이 싸움을 그만두자는 쪽으로 기울었고, 일부는 성을 빠져나가 한에 항복했다. 성은 1년 가까이 버티고 있었지만, 버티는 힘은 안에서부터 줄어들고 있었다.

결말 — 기원전 108년 여름, 성문은 안에서 열렸다

기원전 108년 여름, 주화파인 니계상 삼이 사람을 보내 우거왕을 죽였다. 왕이 죽은 뒤에도 대신 성기는 끝까지 성을 지키며 싸웠다. 그러나 우거왕의 아들 장(장항으로 읽기도 한다)과 상 노인의 아들 최가 백성을 부추겨 성기마저 죽였고, 왕검성은 함락되었다. 한나라는 그 땅에 자기 나라의 고을인 군현을 두었다. 한나라 군대가 성벽을 넘어 이긴 것이 아니라, 성안이 둘로 갈라져 스스로 문을 연 셈이다. 왕을 죽인 니계상 삼은 뒤에 한나라에서 제후 자리를 받았다.

주요 인물

우거왕
위만의 손자로 고조선의 마지막 왕. 남쪽 나라들과 한의 직접 교역을 막아 중계 이익을 쥐었고, 한의 침공에 1년 가까이 맞섰다.
성기
고조선의 대신. 왕이 죽은 뒤에도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성을 지켰다.
니계상 삼
성안의 주화파. 사람을 보내 우거왕을 죽였고, 뒤에 한에서 제후가 되었다.
양복과 순체
한나라의 수군 장수와 육군 장수. 첫 싸움에서 고전했고, 전략을 두고 서로 다퉜다.
섭하와 위산
한나라의 사신. 섭하의 비왕 살해가 전쟁의 빌미가 되었고, 위산의 협상은 패수에서 깨졌다.

이 전쟁을 전하는 기록

고조선의 마지막 두 해를 자세히 적은 것은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이다. 사마천은 이 전쟁과 같은 시대를 산 사람이라, 조선열전은 가장 이른 기록이자 거의 유일한 줄거리 기록이다. 뒤에 나온 『한서』의 조선전은 대체로 『사기』의 내용을 옮겨 적었다. 고려 때 일연이 쓴 『삼국유사』는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담은 ‘고조선’ 조와 함께 ‘위만조선’ 조를 따로 두었는데, 위만조선 부분은 중국 사서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그래서 이 전쟁은 거의 전부 한나라 쪽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조선열전은 한나라 장수들이 서로 다투다 벌을 받은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적었고, 전쟁이 끝난 뒤 두 군대가 모두 욕을 보았고 장수 가운데 제후에 오른 이가 없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좌장군 순체는 처형되었고 양복은 평민이 되었다. 오히려 제후 자리를 받은 것은 한에 항복한 조선의 신하들이었다. 반대로 고조선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행동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다. 성기가 끝까지 싸운 까닭, 니계상 삼이 왕을 해친 속사정은 기록이 말해 주지 않는다.

그 뒤 — 한의 군현과 그 끝

왕검성이 무너진 기원전 108년, 한나라는 옛 고조선 땅과 그 둘레에 낙랑, 진번, 임둔 세 군을 두었고, 이듬해 현도군을 더했다. 흔히 한사군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군현들은 오래 같은 모습으로 남지 못했다. 기원전 82년 진번과 임둔이 없어지거나 다른 군에 합쳐졌고, 현도군은 토착 세력의 저항에 밀려 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장 오래 남은 낙랑군은 중국 왕조와 한반도, 일본 열도를 잇는 교역의 창구가 되어 여러 문물이 이곳을 거쳐 퍼졌다. 그러나 둘레의 고구려가 커지면서 낙랑의 힘도 줄었고, 313년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군을 몰아내면서 400년 넘게 이어진 한 군현의 시대가 끝났다. 고조선이 사라진 자리에서 부여와 고구려, 옥저와 동예, 한반도 남쪽의 삼한이 저마다 자라났다.

자주 헷갈리는 점

‘고조선’이라는 이름은 당시 사람들이 쓴 것이 아니다. 이 나라 사람들도, 『사기』도 그냥 ‘조선’이라 불렀다. 『삼국유사』가 뒤의 위만조선, 그리고 훨씬 뒤의 조선 왕조와 구분하려고 옛 조선이라는 뜻으로 ‘고조선’이라 적은 것이 지금까지 쓰인다. 위만조선도 고조선의 한 시기로 본다. 위만은 연나라 쪽에서 무리를 이끌고 넘어온 사람인데, 상투를 틀고 이 땅의 옷을 입고 왔다는 『사기』의 기록 때문에 그의 출신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왕검성과 패수가 지금의 어디인지, 한나라가 둔 군현이 어디까지 걸쳐 있었는지도 학계에서 의견이 갈리는 문제다. 평양 일대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이 글에서는 위치를 단정하지 않고 사료에 적힌 이름 그대로 쓴다. 등장인물 이름과 순서는 대체로 『사기』를 따르고, 백과사전 본문에는 니계상 삼과 성기 정도만 이름이 나온다.

고조선의 멸망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한나라의 군사력보다 성안의 분열이다. 첫 싸움에서 이기고 1년 가까이 버틴 나라가, 싸울지 화해할지를 두고 갈라진 끝에 왕을 잃었다. 태자를 보내는 협상이 호위 병력 문제 하나로 깨진 장면도 그렇다. 서로를 믿지 못한 작은 틈이 나라의 운명을 갈랐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왕검성 성문을 지키는 막내 수졸, 니계상 댁에서 술을 따르는 하인, 진국 상인과 거래하는 철기 공방 도제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고조선 우거왕 대, 왕검성과 패수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우거왕은 남쪽 진국(한강 남쪽의 나라들)의 사신과 상인이 한에 직접 닿지 못하게 길을 막았다. 철과 소금이 오가는 길목을 쥔 것은 왕검성이었다.

한나라 사신 섭하는 교섭이 틀어지자, 돌아가는 길에 배웅 나온 조선의 비왕(왕을 돕는 높은 신하)을 죽였다. 한이 그를 국경 지방의 장수로 앉히자 조선은 군사를 보내 그를 쳤다. 그리고 기원전 109년 가을, 한의 수군과 육군이 바다와 땅으로 몰려온다.

왕검성은 한 해 가까이 버틸 것이다. 그러나 끝내 성을 여는 것은 한의 군대가 아니라 성안의 손이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기원전 109년 가을, 한군이 패수에 이르기 전

한의 수군 장수 양복은 바다로, 육군 장수 순체는 요동에서 땅으로 온다고 한다. 성안 사람들은 아직 첫 싸움쯤은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힘(무력·조직),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기원전 109년 겨울, 첫 싸움에서 이긴 뒤

양복의 수군은 왕검성 앞에서 흩어졌고, 순체의 군대도 패수를 넘지 못했다. 한의 사신 위산이 화친을 말하러 오고, 우거왕은 태자를 보내 사죄하겠다고 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정보(지식),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기원전 108년 봄, 태자가 패수에서 돌아온 뒤

태자는 패수까지 갔다가 그대로 돌아왔다. 무장한 호위를 두고 서로를 믿지 못한 탓이다. 성이 에워싸이자 노인, 한음, 니계상 삼 같은 재상들이 화친(싸움을 멈추고 화해함)을 말하며 모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끝까지 싸우자는 쪽은 대신 성기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재물(물자),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기원전 108년 여름, 니계상 삼의 집

화친파(화해하자는 대신들)가 마지막으로 모인 밤이다. 왕을 없애고 성문을 열자는 말이 술잔 사이를 오간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니계상 삼이 보낸 사람의 손에 우거왕이 목숨을 잃었다. 대신 성기가 끝까지 버텼으나 그마저 성안 사람들 손에 쓰러졌고, 왕검성이 함락되어 한은 그 땅에 군현을 두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위만조선
위만이 왕이 된 뒤의 고조선. 우거왕은 위만의 손자다
요동동부도위
한나라가 요동 동쪽에 둔 군사 책임자
누선장군
배를 거느린 한나라 수군 장수
주화파
전쟁을 멈추고 화해하자는 쪽
진국
한강 남쪽의 나라들
비왕
왕을 돕는 높은 신하
패수
한군이 건너와야 하는 강
화친
싸움을 멈추고 화해함
화친파
화해하자는 대신들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기원전 109년, 안에서 무너진 왕검성.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