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고구려의 멸망

666년 · 고조선·삼국·발해 · 막기

고구려의 멸망 — 연개소문의 세 아들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666년 · 고구려 보장왕 25년
어디서
평양성과 국내성
무슨 일
665년 무렵 고구려의 실권자 연개소문이 죽자, 맏아들 남생과 두 동생 남건·남산이 서로를 의심해 갈라섰다. 쫓겨난 남생은 당나라에 항복했다.
무엇이 문제였나
형제가 갈라선 틈을 당나라가 파고들었다. 남생을 앞세운 당군에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어, 7백 년 넘게 이어진 고구려가 망했다(고구려 멸망).
이야기 속 목표
연개소문의 세 아들이 서로 의심하지 않게 해, 고구려가 안에서 갈라지지 않게 만든다

배경: 수와 당을 막아 낸 나라

고구려는 7세기에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군을 여러 차례 막아 낸 나라다. 612년 살수대첩과 645년 안시성 싸움이 대표적이다. 이 무렵 고구려의 실권을 쥔 사람은 대막리지 연개소문이었다. 그는 왕을 세우고 나랏일을 직접 이끌며 당과 맞섰다. 연개소문에 대해서는 나라를 지킨 장수라는 평가와 권력을 휘두른 실력자라는 평가가 함께 있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세상을 떠나자 문제가 생겼다. 그가 죽은 해는 기록마다 다르다. 665년으로 보기도 하고 666년으로 보기도 하며, 『일본서기』는 664년이라고 적었다. 확실한 것은 그 뒤 고구려의 권력이 그의 세 아들에게 넘어갔다는 점이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맏아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잇다

맏아들 연남생이 아버지의 자리인 대막리지를 이었고, 동생 남건과 남산이 평양에서 나랏일을 나눠 맡았다. 666년 정월에는 보장왕의 태자 복남이 당 고종의 태산 봉선 제사에 참석했다. 오랜 전쟁 끝에 당과 숨을 고르려는 몸짓으로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전개 — 666년, 이간질이 형제를 갈라놓다

남생이 지방을 돌아보러 평양을 비운 사이, 형제 사이에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남생의 측근들에게는 동생들이 형의 귀환을 막으려 한다는 말이, 동생들에게는 형이 너희를 없애려 한다는 말이 들어갔다. 누가 이 말을 퍼뜨렸는지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의심이 커지자 남생은 평양에 사람을 보내 형편을 살피게 했는데, 남건이 그 사람을 붙잡았다. 남건은 왕명을 내세워 형을 불러들였고, 남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평양을 동생들에게 내준 남생은 옛 도읍 국내성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아들 헌성을 당나라에 보내 도움을 청하며 항복했다. 당은 군대를 보내 남생을 맞아들였고, 국내성 일대의 성과 백성이 남생을 따라 당 쪽으로 넘어갔다. 같은 해 12월에는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가 12성, 763호, 3,543명을 거느리고 신라로 넘어갔다. 고구려는 한 해 사이에 안에서부터 크게 쪼개졌다.

결말 — 668년 9월, 평양성 함락

당은 고구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생을 길잡이로 삼아 대군을 보냈다. 667년 9월, 이적의 군대가 요동의 요충지 신성을 무너뜨렸고, 설인귀는 남소, 목저, 창암 등의 성을 빼앗은 뒤 남생의 군대와 합쳤다. 668년에는 신라군과 당군이 평양성을 에워싸고 한 달 넘게 포위했다. 보장왕은 남산을 보내 백기를 들고 항복했지만 남건은 끝까지 싸웠다. 남건이 군사를 맡긴 승려 신성이 당의 총사령 이적과 몰래 통했고, 닷새 뒤 성문을 열었다. 668년 9월, 평양성은 함락되었고 보장왕과 남건 등은 당으로 끌려갔다. 7백 년 넘게 이어진 고구려가 이렇게 문을 닫았다.

주요 인물

연개소문
고구려의 대막리지. 당과 맞서며 나라의 실권을 쥐었고, 그의 죽음이 분열의 시작이 되었다.
연남생
연개소문의 맏아들. 대막리지를 이었으나 동생들과 갈라선 뒤 국내성으로 물러나 당에 항복했다.
연남건·연남산
연개소문의 두 아들. 평양을 장악했고, 남산은 마지막에 항복했으며 남건은 끝까지 버텼다.
연정토
연개소문의 동생. 666년 12성을 들고 신라로 넘어갔다.
이적과 설인귀
당의 장수. 이적은 평양 공격의 총사령이었고, 설인귀는 요동의 성들을 빼앗으며 남생의 군대와 합류했다.
신성
남건이 군사를 맡긴 승려. 당군과 내통해 평양성 문을 열었다.

그 뒤에 일어난 일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옛 고구려 땅을 직접 다스리려 했다. 그러나 고구려 사람들은 곧 다시 일어났다. 670년 무렵 검모잠이 군사를 모으고 왕족 안승을 왕으로 받들었고, 신라는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인정하며 이들을 도왔다. 신라는 뒤에 안승을 보덕국 왕으로 삼아 금마저, 지금의 익산 일대에 머물게 했다.

고구려가 무너진 뒤 한반도에서 당을 몰아내는 싸움은 신라의 몫이 되었다. 신라는 670년부터 당과 맞섰고, 675년 매소성과 676년 기벌포의 싸움을 거쳐 당군을 대동강 북쪽으로 밀어냈다. 안동도호부도 평양에서 요동으로 물러났다. 당으로 끌려간 보장왕은 뒤에 요동으로 보내졌다가 말갈과 손잡고 나라를 되살리려 했다는 의심을 받아 먼 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30년쯤 뒤인 698년, 고구려 장수 출신 대조영이 옛 고구려 땅의 동쪽에서 발해를 세웠다.

사료와 기록

고구려의 마지막 몇 해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조에 가장 촘촘하게 적혀 있고, 신라본기 문무왕 조에 신라 쪽 움직임이 더해진다. 중국의 『구당서』와 『신당서』는 당의 원정을 당의 눈으로 적었고, 『일본서기』도 고구려의 내분을 짧게 전한다. 연개소문이 죽은 해가 기록마다 다른 것도 이처럼 여러 나라의 기록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 중국 낙양 근처에서 남생과 그 아들 헌성, 그리고 남산의 묘지명이 나왔다. 묘지명은 무덤에 함께 묻는 돌에 그 사람의 일생을 새긴 글이다. 당에서 높은 벼슬을 지낸 그들의 삶을 적은 만큼 자기 쪽에 유리하게 쓴 대목이 있지만, 사서가 말하지 않는 집안의 내력과 관직을 알려 주는 귀한 자료다.

자주 헷갈리는 점

중국 쪽 기록과 묘지명에는 연남생이 아니라 천남생이라고 적혀 있다. 당 고조의 이름에 들어간 글자 ‘연’을 피하려고 뜻이 비슷한 ‘천’으로 바꿔 적은 것이다. 같은 사람이니 헷갈릴 필요는 없다. 또 고구려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려’라고도 불렀다. 뒤의 왕건이 세운 고려가 그 이름을 이어받은 것인데, 두 나라를 구분하려고 지금은 앞의 나라를 고구려라 부른다.

고구려의 멸망은 바깥의 적보다 안의 분열이 더 큰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자주 이야기된다. 백만이 넘는다고 기록된 수의 대군과 거듭된 당의 원정도 넘지 못한 나라가, 형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 지 두 해 만에 무너졌다. 형제를 갈라놓은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기록에 없다. 남생이 보낸 사람이 붙잡힌 순간, 오해는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남생을 나라를 판 사람으로만 보는 시각도 있지만, 사료가 전하는 것은 의심과 오해가 쌓여 가는 과정이다. 연개소문에 대해서도 나라를 지킨 장수로 보는 눈과 권력을 독차지한 실력자로 보는 눈이 함께 있다.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보다 그 시대의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차례로 보는 편이 낫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남생의 순시 행렬을 따르는 전령, 남건 저택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 평양성 보통문 근처 절의 젊은 승려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고구려 보장왕 25년, 평양성과 국내성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고구려의 실권을 쥔 대막리지(최고 벼슬) 연개소문이 세상을 떠났다. 맏아들 남생이 그 자리를 잇고, 동생 남건과 남산이 평양에서 나랏일을 나눠 맡았다.

666년 정월, 보장왕의 태자 복남이 당 황제의 태산 제사(황제가 하늘에 올리는 큰 제사)에 참석했다. 바깥으로는 숨을 고르는 듯 보였지만, 안에서는 형제 사이로 말이 오가기 시작한다.

형이 너희를 없애려 한다, 동생들이 형을 막으려 한다. 그 말들이 형제를 갈라놓고 맏형은 당으로 간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666년 정월, 태자가 태산으로 떠난 무렵

태자가 당으로 떠나고, 맏형 남생은 국내성(고구려의 옛 도읍) 같은 여러 성을 둘러보러 평양을 나선다. 남건과 남산은 평양에 남는다. 형제 사이에 말을 옮길 사람이 생기기 좋은 때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정보(지식),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666년, 남생이 순시를 도는 동안

누군가 남건과 남산에게 형이 너희를 없애려 한다고 속삭이고, 남생에게는 동생들이 형을 성에 들이지 않으려 한다고 속삭인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이름(평판·여론), 사람(인맥)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666년, 남생이 평양에 사람을 보내기 직전

남생은 동생들의 속내를 알아보려 평양에 몰래 사람을 보내려 한다. 평양에서는 남건이 왕명을 빌려 형을 불러들일 채비를 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이름(평판·여론), 힘(무력·조직),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666년, 평양성 남건의 집 앞

남생이 보낸 사람이 남건의 군사에게 붙잡혔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형제 사이의 오해가 굳어진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남생은 국내성으로 물러나 아들 헌성을 당에 보내 항복했고,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도 열두 성을 들고 신라로 넘어갔다. 668년 9월, 한 달여 포위된 평양성은 안에서 성문이 열리며 함락되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막리지
고구려의 최고 관직. 대막리지는 그 위의 자리
신성
요동의 요충지에 있던 고구려의 큰 성
봉선
황제가 태산에서 하늘과 땅에 올리는 제사
내응
적과 몰래 짜고 안에서 돕는 일
대막리지
최고 벼슬
제사
황제가 하늘에 올리는 큰 제사
국내성
고구려의 옛 도읍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666년, 연개소문의 세 아들.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