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살수대첩

612년 · 고조선·삼국·발해 · 앞당기기

살수대첩 — 살수로 가는 길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612년 · 고구려 영양왕 23년
어디서
압록강에서 살수까지
무슨 일
612년, 수나라 양제가 백만이 넘는 군사로 고구려를 쳤다. 을지문덕은 적을 지치게 끌어들인 뒤 살수에서 크게 무찔렀다(살수대첩).
왜 앞당기나
승리 전까지 수나라 별동대 30만은 평양 30리 앞까지 내려왔고, 그 길의 고을들이 짓밟혔다. 빨리 이길수록 짓밟히는 고을이 줄어든다.
이야기 속 목표
수나라 군대가 평양 가까이 오기 전에 돌려보내, 살수의 승리를 앞당긴다

배경: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6세기 말,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중국을 수나라가 통일했다. 수나라는 주변 나라들에게 신하로서 예를 갖추라고 요구했고, 동북쪽의 강국 고구려는 그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 598년 고구려 영양왕이 요서 지역을 먼저 치자, 수나라 문제가 군대를 보냈지만 장마와 전염병, 바다의 풍랑에 시달려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이것이 수나라의 1차 침입이다. 그 뒤를 이은 양제는 아버지보다 훨씬 큰 원정을 준비했다. 운하를 파고 군량을 모으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612년 정월, 백만이 넘는 대군

612년 정월, 양제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나섰다. 『수서』는 싸우는 군사의 수를 113만 3,800명이라고 적었고, 군량을 나르는 사람은 그 두 배였다고 했다. 수군은 고구려 서쪽의 큰 강 요하를 건너 요동성을 에워쌌다. 그러나 요동성은 봄이 다 가도록 무너지지 않았다. 바닷길로 온 내호아의 수군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 외성까지 들어왔다가, 성안에 숨어 있던 고구려군에게 크게 지고 물러났다.

전개 — 612년 여름, 평양으로 곧장 온 별동대

요동에서 발이 묶이자 양제는 장수 우중문과 우문술 등에게 별동대 30만 5천을 주어 압록강을 건너 평양을 곧장 치게 했다. 병사마다 100일 치 군량과 무기를 짊어지게 했는데, 너무 무거워 몰래 땅에 묻는 사람이 많았다. 고구려의 대신 을지문덕은 거짓으로 항복을 청하며 수나라 진영에 들어가 그들의 형편을 살폈다. 군량이 모자라 군사들이 굶주리고 있었다. 수나라 장수들은 그를 붙잡아 두려다 놓아 보냈고, 뒤늦게 후회했다고 전한다.

돌아온 을지문덕은 싸울 때마다 지는 척 물러나며 수군을 더 깊이 끌어들였다. 하루에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물러났다고 전한다. 수군은 살수를 건너 평양성 30리 앞까지 내려왔다. 지칠 대로 지친 뒤였고, 평양성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결말 — 612년 가을 7월, 살수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시 한 수를 보냈다.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고 기묘한 셈은 땅의 이치를 꿰뚫었으니, 싸움에 이긴 공이 이미 높거든 만족할 줄 알고 그치라는 뜻의 오언시다. 그리고 군사를 돌리면 왕을 모시고 행재소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굶주린 수군은 결국 군사를 돌렸다. 7월, 수군이 살수를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뒤를 쳤다. 수나라 장수 신세웅이 이 싸움에서 죽었고, 수군은 무너져 하루 밤낮에 450리를 달아났다. 30만 5천 가운데 요동으로 살아 돌아간 사람은 2,700명이었다. 양제는 그해 원정을 거두고 물러갔다.

그날까지 잃은 것

살수의 승리는 가을 7월에 왔다. 그 전까지 요동성을 비롯한 요동의 여러 성은 봄부터 여름까지 포위되어 있었고, 압록강에서 평양 30리 앞까지 수군이 지나간 고을과 들판은 짓밟혔다. 평양 외성에서는 내호아의 수군이 약탈을 했다. 을지문덕은 이미 압록강 서쪽 진영에서 수군의 굶주림을 알았다. 그 굶주림을 더 빨리 무겁게 만들었다면 살수의 날도 앞당겨졌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앞당기기’로 쓰인 까닭이다.

고구려는 어떻게 버텼나

수나라 군대는 숫자로는 고구려를 크게 앞섰다. 그러나 고구려에는 오래 다듬어 온 싸우는 방식이 있었다. 고구려의 땅에는 산과 강을 끼고 쌓은 성이 촘촘히 이어져 있었고, 적이 오면 사람과 곡식을 성 안으로 거두어들여 버텼다. 성 밖 들판에는 적이 먹을 것을 남기지 않았다. 성 하나하나를 떨어뜨리려면 시간이 걸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먼 길을 온 쪽의 군량이 먼저 바닥났다.

수나라의 약점도 거기에 있었다. 백만이 넘는 군대를 먹이려면 수많은 사람이 곡식을 실어 날라야 했다. 요동에서 발이 묶이자 양제는 군량을 등에 진 별동대를 평양으로 곧장 보냈지만, 그것은 보급선 없이 적지 깊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을지문덕은 바로 그 틈을 보았다. 싸워서 이기기보다 적이 스스로 지치게 만든 것, 그것이 살수대첩의 핵심이다.

사서는 무엇을 남겼나

살수대첩을 전하는 기록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중국 쪽 역사책인 『수서』로, 양제의 원정과 장수들의 행적을 적으면서 병력 수와 돌아간 군사의 수를 남겼다. 다른 하나는 고려 때 김부식이 엮은 『삼국사기』로, 고구려본기 영양왕 조와 을지문덕 열전에 이 싸움을 적었다. 『삼국사기』의 상당 부분은 중국 사서를 옮겨 온 것이어서 두 기록의 줄거리는 많이 겹친다.

을지문덕의 오언시도 『삼국사기』 을지문덕 열전에 실려 전한다. 우리 역사에서 지은이가 분명한 아주 이른 시기의 한시로 꼽힌다. 열전은 을지문덕을 두고 침착하고 굳세며 지혜와 꾀가 있고 글을 지을 줄 알았다고 적었다. 다만 그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언제 죽었는지, 살수 뒤에 무엇을 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을지문덕은 거의 612년 한 해의 모습이다.

그 뒤에 일어난 일

주요 인물

을지문덕
고구려의 대신. 거짓 항복으로 적진을 살피고, 수군을 끌어들여 살수에서 무찔렀다.
영양왕
고구려의 왕. 수나라의 두 차례 침입을 막아 냈다.
고건무
영양왕의 동생. 평양 외성에서 내호아의 수군을 물리쳤다고 본다. 뒤의 영류왕이다.
수 양제
수나라의 황제.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쳤다.
우중문과 우문술
별동대를 이끈 수나라 장수. 을지문덕의 시를 받았다.
내호아
바닷길로 온 수나라 수군의 장수.

자주 헷갈리는 점

살수는 지금의 청천강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 압록강으로 보는 등 다른 견해도 있다. 살수에 둑을 쌓았다가 물을 터뜨렸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이는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전설이다. 사서가 전하는 것은 적을 굶주리고 지치게 한 뒤 강을 건너는 순간을 노렸다는 사실이다. 113만, 30만 5천, 2,700 같은 숫자는 모두 사서에 적힌 수치이고, 실제 병력이 그만큼이었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갈린다. 살수 싸움의 날짜도 사서에는 ‘가을 7월’까지만 나온다.

살수대첩은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승리로 꼽힌다. 서울 도심의 을지로가 을지문덕의 이름을 땄을 만큼, 그는 지금도 지혜로 큰 적을 이긴 장수로 기억된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앞당기기’ 이야기다. 나는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 본인으로 깨어난다. 침착하고 굳세며 꾀가 많고 글을 지을 줄 안다고들 한다. 이번에는 수군이 어디서 굶주릴지도 안다. 그날이 언제 오는지 알고 있으니, 준비와 사람과 정보로 그날을 더 일찍 오게 하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고구려 영양왕 23년, 압록강에서 살수까지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612년 정월, 수나라 양제가 백만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로 나섰다. 요하(고구려 서쪽의 큰 강)를 건넌 수군은 요동성을 에워쌌지만, 성은 봄이 다 가도록 무너지지 않는다.

여름이 되자 양제는 장수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별동대(따로 떼어 낸 부대) 삼십만 오천을 주어 압록강을 건너 평양을 곧장 치게 한다. 영양왕은 이 길을 을지문덕에게 맡겼다.

칠월, 수군은 평양성 삼십 리(약 12km) 밖까지 내려왔다가 돌아서 살수(지금의 청천강으로 보는 강)를 건너다 무너진다. 그사이 압록강 남쪽 고을들이 짓밟힌다. 그날이 언제 오는지 나는 안다. 더 일찍 올 수도 있다.

셋째 장 · 발단 — 612년 봄, 평양

요동성이 버티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압록강 남쪽 고을들은 아직 들판에 보리를 키우고 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사람(인맥),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612년 6월, 압록강 서쪽 수 진영

별동대 삼십만 오천이 압록강 서쪽에 모였다. 나는 항복하겠다며 적진으로 들어간다. 사서에 적힌 그대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힘(무력·조직),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612년 7월 초, 압록강과 살수 사이

수군이 압록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온다. 굶주린 군사는 빨리 끝을 보고 싶어 한다. 나는 싸우며 물러나는 길을 고른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사람(인맥),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612년 7월 초, 살수 남쪽

수군이 살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왔다. 평양까지는 아직 멀다. 우중문에게 보낼 시 한 수가 내 품에 있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612년 7월, 수군은 평양성 삼십 리 밖까지 내려왔다가 돌아서 살수를 건너다 무너졌다. 별동대 삼십만 오천 가운데 살아 돌아간 이는 이천칠백이었고, 그때까지 압록강 남쪽 고을들이 짓밟혔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사람의 삶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별동대
본대에서 따로 떼어 낸 부대
오언시
한 줄이 다섯 글자인 한시
행재소
임금이 궁을 떠나 머무는 곳
리
거리 단위. 30리는 약 12킬로미터
열전
한 사람의 생애를 적은 역사책의 한 갈래
요하
고구려 서쪽의 큰 강
살수
지금의 청천강으로 보는 강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612년, 살수로 가는 길.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