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노량해전

1598년 · 조선 · 막기

노량해전 — 관음포의 새벽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1598년 · 조선 선조 31년
어디서
고금도와 노량 바다
무슨 일
1598년 11월 일본군이 철수하려 하자,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명나라 수군이 노량 바다에서 막아 싸웠다(노량해전).
무엇이 문제였나
이 싸움으로 칠 년 전쟁(임진왜란)이 끝났지만, 달아나는 적을 쫓던 이순신이 총탄에 맞아 숨졌다.
이야기 속 목표
이순신이 노량 바다에서 살아서 돌아오게 만든다

배경: 명량 이후의 바다

1597년 9월 명량에서 이긴 이순신은 보화도를 거쳐 1598년 2월 고금도로 진을 옮겼다. 그는 군사들에게 둔전을 일구게 하고 물고기와 소금을 팔아 군량을 모으며, 칠천량에서 무너진 수군을 다시 일으켰다. 7월에는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이 수군을 이끌고 합류했다. 조선과 명의 연합 수군이 남해에 자리를 잡았다.

그해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조선 땅에 남은 일본군은 바다를 건너 돌아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598년 9월과 10월, 왜교성

순천에는 일본군이 쌓은 왜교성이 있었고, 그 안에 고니시 유키나가가 있었다. 바다는 조명 연합 수군이 막고 있었다. 9월과 10월, 명나라 육군 제독 유정의 군대와 연합 수군이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왜교성을 공격했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전개 — 11월 중순, 열린 한 척의 길

고니시는 진린에게 뇌물을 보내며 물러갈 길을 열어 달라고 호소했다. 진린은 연락선 한 척이 지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고니시는 이 배를 사천에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 등에게 보내 구원을 청했다. 이를 안 이순신은 진린을 꾸짖고 진형을 다시 갖추었다. 11월 18일 밤, 노량의 좁은 물길로 왜선 500여 척이 몰려들었다. 이순신은 조명 연합 수군을 이끌고 나서며, 이 원수를 없앨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늘에 빌었다.

결말 — 11월 19일 새벽과 아침

19일 새벽까지 이어진 격전에서 많은 왜선이 불타거나 부서지고 붙잡혔다. 남은 배들은 관음포 쪽으로 달아났다. 앞이 막힌 포구로 몰린 왜선들은 돌아서서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날 오전, 관음포로 달아나는 왜선을 쫓던 이순신이 총탄에 맞았다. 그는 싸움이 급하니 자기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숨을 거두었다. 쉰네 살이었다. 이 싸움에서 명나라 장수 등자룡, 가리포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도 전사했다.

고니시는 그 틈에 남해도 남쪽으로 빠져나가 부산에서 일본으로 물러났다. 이로써 1592년부터 이어진 7년 전쟁이 끝났다.

노량이라는 바다

노량은 남해도와 지금의 경남 하동 사이에 놓인 좁은 물길이다. 사천과 남해 쪽에 있던 일본군이 순천 왜교성의 고니시를 구하러 서쪽으로 가려면 이 물목을 지나야 했다. 조명 연합 수군은 바로 이곳을 길목으로 삼았다. 좁은 물길에서는 큰 함대가 한꺼번에 퍼져 싸울 수 없고, 먼저 자리를 잡은 쪽이 유리했다.

관음포는 노량을 빠져나온 남해도 북쪽 바닷가에 있는 포구다. 노량에서 밀린 왜선들은 이 포구를 바다로 이어지는 길로 여기고 들어갔다가, 앞이 막힌 곳임을 알고 돌아서 싸웠다고 본다. 물러설 곳이 없어진 쪽이 가장 필사적으로 싸운다는 것은 싸움의 오랜 이치다. 이순신이 총탄에 맞은 것은 바로 이 마지막 싸움에서였다. 고니시가 갇혀 있던 왜교성은 지금 순천왜성이라는 이름으로 그 터가 남아 있고, 노량 물길 위로는 남해와 하동을 잇는 다리가 놓여 있다.

숫자로 보는 그날 밤

노량의 숫자는 자료마다 다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모여든 왜선을 500여 척, 그 가운데 불타거나 부서진 배를 200여 척, 붙잡힌 배를 100여 척으로 적는다. 조명 연합 수군의 규모는 200여 척으로 보는 서술이 많지만, 조선 수군과 명 수군을 어떻게 세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싸움이 밤에서 새벽, 아침까지 좁은 물길에서 이어졌기 때문에 정확한 피해를 셈하기는 어렵다. 이 글에서 쓴 숫자는 어디까지나 기록에 적힌 수치다.

그 장면을 전하는 기록들

이순신 스스로 남긴 『난중일기』는 노량 바로 전날인 11월 17일 무렵에서 끝난다. 그러니 그의 마지막 모습은 다른 사람들의 기록으로만 전한다. 조카 이분이 쓴 『행록』은 출전 전의 기도와,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마지막 말을 적었다. 『선조실록』에도 그의 전사 소식과 조정의 애도가 실렸다. 진린은 이순신을 두고 하늘과 땅을 다스릴 재주와 나라를 바로 세운 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높였다고 전한다.

이순신의 마지막 장면에는 확인된 기록과 전승이 섞여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숨진 뒤 아들이 울려 하자 곁에 있던 이문욱(손문욱)이 울음을 멈추게 하고 시신을 가린 채 북을 치며 싸움을 재촉했다고 전한다. 조카 이완이나 군관 송희립이 대신 북채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이 더 필요하다. 그가 갑옷을 벗고 싸웠다는 이야기 역시 근거가 된 기록의 가치를 두고 논란이 있다. 일부러 죽음을 택했다거나 살아서 숨었다는 이야기는 학계의 통설이 아니다.

주요 인물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1545년 한양에서 태어났다. 고금도에서 수군을 다시 일으키고 노량에서 연합 수군을 이끌다 전사했다.
진린
명나라 수군도독. 고니시의 연락선을 통과시켰으나 노량에서는 함께 싸웠다.
유정
명나라 육군 제독. 왜교성 공격을 함께 했다.
등자룡, 이영남, 방덕룡
노량에서 전사한 명과 조선의 장수들. 등자룡은 일흔이 넘은 노장이었다고 전한다.
고니시 유키나가
왜교성에 갇혀 있던 일본 장수. 노량 싸움 틈에 빠져나갔다.
시마즈 요시히로
고니시를 구하러 사천에서 온 일본 장수.

그 뒤에 일어난 일

노량해전은 전쟁을 끝낸 싸움이자 이순신을 잃은 싸움이다. 남해 관음포에는 그의 유해가 처음 뭍에 오른 곳을 기리는 이충무공 유적이 있고, 노량 바다를 마주한 남해 충렬사도 그를 기린다. 아산에는 그의 사당인 현충사와 묘소가 있다. 『난중일기』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201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올랐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대장선에서 활을 쏘는 젊은 사부, 고금도 통제영의 방패 만드는 목수, 진린의 진영을 오가는 역관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조선 선조 31년, 고금도와 노량 바다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무술년 팔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조선 땅의 왜군은 바다를 건너 돌아갈 길을 찾는다. 순천 왜교성(일본군이 쌓은 성)의 일본 장수 고니시는 조선과 명나라 수군에 막혀 갇혔다.

삼도수군통제사(조선 수군 총사령관) 이순신은 고금도에 진을 치고, 명나라 수군 장수 진린과 함께 바다를 막는다. 고니시는 진린에게 길을 열어 달라 청하고, 사천의 일본 장수 시마즈에게 구원을 부른다.

십일월 열여드레 밤, 왜선 수백 척이 노량으로 몰려온다. 이순신은 이 원수를 없앨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늘에 빈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598년 7월, 진린의 수군이 고금도에 온 뒤

명의 수군이 고금도에 닿았다. 진린은 거칠고 공을 탐한다는 말이 돌지만, 이순신은 그를 정성껏 맞는다. 둔전(군사들이 짓는 논밭)과 소금 굽는 연기가 섬을 덮는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재물(물자), 사람(인맥)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1598년 9월~10월, 왜교성 앞바다

명나라 육군 장수 유정과 바다와 땅에서 함께 왜교성을 쳤지만 손발이 맞지 않았다. 물때를 놓친 명나라 배들이 갯벌에 걸리고, 싸움은 소득 없이 끝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사람(인맥),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1598년 11월 중순, 고니시의 배 한 척이 빠져나간 뒤

진린이 고니시의 연락선 한 척을 내보냈다. 이순신은 그것이 사천의 구원군을 부르러 간 배임을 알고 진린을 꾸짖는다. 남해와 사천 쪽 바다가 술렁인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정보(지식),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598년 11월 19일 새벽, 노량과 관음포

밤새 싸운 끝에 왜선들이 불타고 남은 배들이 관음포로 몰린다. 이순신의 배가 그 뒤를 쫓아 포구 어귀로 들어간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11월 19일 아침, 관음포로 달아나는 왜선을 쫓던 이순신이 총탄에 맞아 숨졌다.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겼고, 이 싸움으로 칠 년 전쟁이 끝났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수군도독
명나라 수군의 총지휘관
둔전
군사들이 직접 농사짓는 논밭
어염
물고기와 소금. 수군이 팔아 군량을 마련했다
독전
싸움을 독려함
행록
한 사람의 행적을 가까운 이가 적은 글
시호
죽은 뒤 나라에서 공을 기려 내린 이름
왜교성
일본군이 쌓은 성
삼도수군통제사
조선 수군 총사령관
장대
지휘하는 높은 대
판옥선
조선의 큰 전투선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1598년, 관음포의 새벽.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