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병인양요와 외규장각 의궤

1866년 · 조선 · 막기

병인양요와 외규장각 의궤 — 강을 거슬러 온 배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1866년 · 조선 고종 3년
어디서
평양 대동강과 강화도
무슨 일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천주교 신부 처형을 구실로 강화도에 쳐들어왔다(병인양요). 조선군이 정족산성에서 이겼지만 프랑스군은 물러가며 약탈했다.
무엇이 문제였나
프랑스군은 왕실 도서관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 297책 등을 실어 갔다. 이 책들은 2011년에야 빌려주는 형식으로 돌아왔다.
이야기 속 목표
물러가는 프랑스군에게 외규장각의 왕실 기록책(의궤)을 빼앗기지 않는다

배경: 문을 닫은 나라와 몰려온 배들

1860년대 조선은 열 살 남짓에 왕위에 오른 고종을 대신해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나라를 이끌고 있었다. 이 무렵 서양 배들이 조선 바다에 자주 나타났다. 이웃 청나라가 1860년 영국과 프랑스 군대에 수도 베이징을 내준 소식도 이미 조선에 전해져 있었다. 1865년 말부터 러시아가 통상을 요구하자, 천주교 신자 남종삼 등은 프랑스와 손잡아 러시아를 막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벌였다. 이것이 병인박해다.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 신부 9명과 신자 수천 명이 처형되었다. 음력 5월 무렵, 살아남은 리델 신부가 조선을 빠져나가 중국 톈진에 있던 프랑스 함대의 로즈 제독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이것이 프랑스 원정의 빌미가 되었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866년 7월, 대동강의 제너럴셔먼호

7월 중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했다. 평양의 관리들은 나라 법으로 통상할 수 없다고 알리고 식량을 내주었다. 그러나 7월 22일부터 27일 사이, 배는 평양의 중군 이현익을 붙잡아 가두고 쌀 1천 석과 금·은·인삼을 요구했다. 배에서 총을 쏘고 약탈하는 일이 벌어지자 군사와 백성이 맞섰다. 배가 모래톱에 걸리자 평안감사 박규수의 지휘 아래 불붙인 배를 띄워 셔먼호를 불태웠고, 선원은 모두 죽었다. 셔먼호에는 영국인 선교사 토머스도 타고 있었다.

전개 — 1866년 9월,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점령

8월, 프랑스 함대가 한 차례 정찰을 와서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까지 들어왔다가 돌아갔다. 9월 초에는 로즈 제독의 함대 7척이 강화도 갑곶에 상륙해 강화부를 점령했다. 조선은 한성근을 문수산성에 보내 막게 했지만, 9월 18일과 19일 문수산성 싸움에서 조선군은 물러났다.

결말 — 1866년 10월, 정족산성과 외규장각

10월 1일 밤,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군이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좁은 바다 염하를 몰래 건너 정족산성에 들어갔다. 강화 주민 이만규가 길을 안내했다고 전한다. 정족산성에는 실록을 보관하던 사고가 있었다. 10월 3일, 프랑스군 올리비에 대령의 160명이 정족산성을 공격했지만 조선군은 이를 물리쳤다. 정족산성 싸움에서는 호랑이를 잡던 사냥꾼인 포수들이 큰 몫을 했다.

패한 프랑스군은 10월 중순 강화도에서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그들은 왕실 도서관인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 297책 등을 가져갔다. 대원군은 이 승리를 근거로 서양과 통상하지 않는 정책을 더 굳혔다.

음력과 양력으로 다시 보기

이 글의 날짜는 모두 당시 조선이 쓰던 음력이다. 양력으로 옮기면 한 달 남짓 뒤로 밀린다.

서양 쪽 기록은 양력을 쓰기 때문에, 같은 일이 자료에 따라 다른 달에 적혀 있으면 이 차이를 먼저 의심해 볼 만하다.

오늘날 남아 있는 곳

정족산성은 삼랑성이라고도 부른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붙은 이름이다. 성안에는 오래된 절 전등사가 있고, 조선 후기에는 실록을 지키는 정족산사고가 그 곁에 있었다. 양헌수의 군사가 머문 곳도 이 절 일대였다. 성 동문 가까이에는 이날의 승리를 기리는 양헌수 승전비가 서 있다. 강화도 곳곳에는 갑곶과 문수산성처럼 1866년의 싸움터가 지금도 이어져 있어, 섬 하나가 한 해의 전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셈이다. 5년 뒤 신미양요 때의 싸움터인 광성보와 초지진도 같은 섬의 바닷가에 있다.

외규장각과 의궤의 긴 여정

외규장각은 정조가 1782년 강화도에 세운 왕실 도서관이다. 서울 창덕궁 안의 규장각과 짝을 이루어, 중요한 책과 왕실 기록을 안전한 섬에 따로 보관하려는 것이었다. 그 안의 의궤는 왕실의 혼례와 장례, 궁궐 공사 같은 큰 행사를 누가 어떻게 준비했는지 글과 그림으로 꼼꼼히 남긴 책이다. 특히 임금이 보도록 따로 고급 종이와 비단 표지로 만든 어람용 의궤가 많았다.

프랑스로 건너간 의궤는 오랫동안 잊혔다. 1970년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이 책들을 찾아내 세상에 알렸고, 그 뒤 반환 운동이 이어졌다. 1993년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하며 한 책을 먼저 돌려주었고, 2010년 두 나라 정상의 합의를 거쳐 2011년 나머지 책들이 네 차례에 나뉘어 돌아오면서 297책이 모두 고국에 모였다. 다만 완전히 돌려받은 것이 아니라 5년마다 갱신하는 대여 형식이다. 지금 이 의궤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강화도 고려궁지 안에는 외규장각 건물이 복원되어 있다.

주요 인물

흥선대원군
고종의 아버지로 나라를 이끌었다. 병인박해를 벌였고,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했다.
박규수
평안감사.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지휘했다. 뒤에 개항을 주장하게 된다.
이현익
평양의 중군. 셔먼호에 붙잡혀 갇혔다. 한자 이름 표기는 자료마다 다르다.
로즈
프랑스 극동 함대의 제독. 강화도를 점령했다.
리델
병인박해를 피해 탈출한 프랑스 신부. 톈진의 프랑스 함대에 소식을 알렸다.
양헌수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조선의 장수.
한성근
문수산성을 지켰으나 물러났다.

더 알아 둘 점

셔먼호 사건은 일방적인 피해나 가해로만 볼 수 없다. 조선은 배를 불태웠지만, 그 전에 배 쪽의 억류와 발포, 약탈이 있었다. 병인박해 역시 수많은 신자가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비극이었다는 점에서, 바깥의 침략을 막은 이야기와 함께 기억해야 한다. 셔먼호 사건은 5년 뒤인 1871년 미국 함대가 강화도로 온 신미양요의 빌미가 되었고, 그해 대원군은 서양과 화친하지 말라는 뜻을 새긴 척화비를 전국에 세웠다.

대원군은 셔먼호의 잔해를 본떠 증기선을 만들게 했지만 실패했다. 서양의 힘을 막아 내면서도 그 기술을 들여오려는 시도가 이 무렵 이미 있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문을 닫는 쪽을 택한 조선은 10년 뒤인 1876년 일본과 조약을 맺으며 결국 문을 열게 된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평양 감영의 젊은 역관, 외규장각의 수직 군사, 전등사의 행자승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조선 고종 3년, 평양 대동강과 강화도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병인년 정월, 흥선대원군은 프랑스 선교사를 통해 러시아를 막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천주교를 엄히 금한다.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 신부 아홉 명과 많은 신자가 목숨을 잃는다.

탈출한 리델 신부가 중국 톈진에 있던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즈를 찾아간다. 그 사이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오고, 평안감사(평안도를 다스리는 관리) 박규수의 지휘 아래 불타 가라앉는다.

9월, 로즈 함대가 강화도에 상륙한다. 10월 3일 정족산성(강화도 남쪽의 산성)에서 조선 장수 양헌수가 이기지만, 물러가는 프랑스군은 외규장각(강화도에 둔 왕실 도서관)을 불태우고 의궤(나라 행사를 그림과 글로 남긴 책)를 실어 간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866년 봄, 강화도

한양의 박해 소문이 강화 나루까지 들린다. 도망친 서양 신부가 군함을 데려올 거라는 말을 아무도 웃어넘기지 못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사람(인맥),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1866년 7월 하순, 대동강 소식이 닿은 날

평양에서 서양 배 한 척이 불탔다는 소식이 왔다. 평양의 군 장교 이현익을 붙잡고 쌀과 금은을 요구하던 제너럴셔먼호였다. 강화 사람들은 다음은 여기라고 수군거린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힘(무력·조직),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1866년 9월 18일 무렵, 문수산성

프랑스군이 강화 읍내를 점령하고, 강 건너 문수산성에서 조선군을 물리쳤다. 조선군 진영에서는 양헌수가 밤에 바다를 건널 길을 찾는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사람(인맥),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866년 10월 3일 밤, 정족산성

양헌수가 이끈 사냥꾼 출신 포수들이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프랑스군은 철수를 서두르고, 강화 외규장각에는 의궤와 어책(왕실 문서책)이 아직 그대로 꽂혀 있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10월 3일 정족산성에서 양헌수가 이겼지만, 물러가던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 297책 등을 실어 갔다. 의궤는 2011년에야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병인박해
1866년 흥선대원군이 벌인 천주교 탄압
양요
서양 오랑캐가 일으킨 소란이라는 뜻으로, 당시 조선 쪽에서 붙인 이름
장계
지방 관리가 임금에게 올리는 보고서
화공
불을 질러 공격함
사고
실록 같은 나라 역사책을 보관하던 창고
의궤
왕실과 나라의 큰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적은 책
평안감사
평안도를 다스리는 관리
정족산성
강화도 남쪽의 산성
외규장각
강화도에 둔 왕실 도서관
역관
나라의 통역관
어책
왕실 문서책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1866년, 강을 거슬러 온 배.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