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정묘호란

1626년 · 조선 · 막기

정묘호란 — 의주성의 무기고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1626년 · 조선 인조 4년
어디서
의주와 압록강
무슨 일
1627년 1월 후금(뒷날의 청나라) 군대 3만여 명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쳤다(정묘호란). 첫 관문인 의주성이 하루 만에 무너졌다.
무엇이 문제였나
성안에 숨어든 배신자가 무기고에 불을 지르고 문을 열었다. 평양까지 잇따라 무너졌고 조선은 후금과 형제 맹약을 맺어야 했다.
이야기 속 목표
의주성이 안에서 열리지 않게 지켜, 후금군이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늦춘다

배경: 명과 후금 사이의 조선

17세기 초 만주에서는 누르하치가 여진을 묶어 후금을 세웠다. 명나라는 후금을 치려 했고, 조선에 군사를 요청했다.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군사를 맡겨 보냈다. 1619년 심하 전투에서 명군이 크게 지자, 강홍립은 후금에 항복했고 그 뒤로 후금에 머물렀다. 광해군이 형세를 보아 움직이라는 뜻을 미리 내렸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런 밀지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논쟁이 이어진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물러나고 인조가 왕이 되었다. 새 조정은 명을 가까이하고 후금을 멀리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1624년에는 이괄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 난에 가담했던 한명련의 아들 한윤 등 남은 무리가 후금으로 넘어갔다. 압록강 어귀의 섬 가도에는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머물며 후금을 자극했다. 1626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홍타이지가 후금의 칸이 되었다. 이 무렵 후금은 명과의 교역이 막혀 곡식과 물자가 모자랐는데, 조선을 눌러 뒤를 안정시키고 물자를 얻으려 했다는 해석도 있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627년 1월, 출병

1627년 1월 8일, 홍타이지는 출병을 명했다. 패륵 아민이 3만여 군사를 이끌고 1월 13일 압록강을 건넜다. 조선 사정을 잘 아는 한윤이 길잡이가 되었고, 강홍립도 함께 왔다.

전개 — 1월 14일 새벽, 의주성

1월 14일 새벽 후금군이 의주성을 에워쌌다. 이때 한윤은 이미 변장하고 성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가 무기고에 불을 지르자 성안이 혼란에 빠졌고, 그 틈에 성안에서 내응한 사람이 성문을 열었다. 의주부윤 이완은 붙잡혀 죽었고, 압록강 가의 첫 관문 의주가 하루 만에 무너졌다.

결말 — 안주, 평양, 그리고 강화도의 맹약

후금군은 곽산과 정주 능한산성을 차례로 떨어뜨렸다. 1월 21일 청천강을 건넌 후금군에 안주성이 무너졌고, 성을 지키던 남이흥과 김준은 화약더미에 몸을 던져 죽었다. 평안감사 윤훤은 평양을 버리고 물러났고, 전쟁 뒤 이 일로 책임을 물어 처형되었다. 인조는 강화도로, 소현세자는 전주로 피했다.

평산까지 내려온 아민은 화의를 청했다. 후금도 오래 머물 형편이 아니었다. 명과 맞선 채 군대를 멀리 남쪽에 묶어 둘 수 없었고, 가도의 모문룡과 곳곳의 의병이 뒤를 위협했다. 3월 3일, 조선과 후금은 강화도에서 형제의 나라가 되기로 맹약을 맺었다. 그 사이 정봉수는 용골산성에서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버텼다. 서북 지방의 많은 백성이 끌려가거나 집을 잃었다.

형제의 맹약에 담긴 것

강화도의 맹약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조선과 후금은 형과 아우의 나라가 된다. 맹약을 맺으면 후금군은 곧바로 물러나고, 다시 압록강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조선은 후금과 화친하되 명나라와 적이 되지는 않는다. 형은 후금, 아우는 조선이었다.

조선 조정으로서는 명과의 관계를 끊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명을 섬기는 것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던 인조 조정은 이 조항 덕분에 화의를 받아들일 명분을 얻었다. 그러나 맹약에는 해마다 후금에 물품을 보내는 일과 국경에서 시장을 여는 일이 뒤따랐고, 후금은 그 뒤 요구를 점점 키워 갔다.

주요 인물

인조
조선의 왕. 강화도로 피란했고,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이완
의주부윤. 성이 무너질 때 붙잡혀 죽었다.
한윤
이괄의 난에 가담한 한명련의 아들. 후금의 길잡이가 되어 의주 무기고에 불을 질렀다.
강홍립
심하 전투 뒤 후금에 머물던 조선 장수. 후금군과 함께 왔다.
아민
후금군을 이끈 패륵.
남이흥과 김준
안주성을 지키다 성이 무너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봉수
용골산성에서 의병으로 버틴 인물.

무너진 성과 버틴 성

정묘호란의 싸움은 대부분 짧았다. 의주는 하루 만에, 안주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성을 지킬 병사와 무기가 모자랐고, 이괄의 난 뒤 조정이 북쪽 장수들을 의심해 군사를 마음껏 맡기지 못한 사정도 있었다. 반란이 서북의 군대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반대로 버틴 곳도 있었다. 정봉수는 평안도 용천의 용골산성에 모여든 백성과 군사를 이끌고 후금군의 공격을 거듭 막아 냈고, 붙잡혀 가던 사람들 일부를 되찾았다고 전한다. 관군이 무너진 자리를 지역 사람들이 메운 것이다. 후금군과 함께 왔던 강홍립은 맹약 뒤 조선에 남았으나 벼슬을 빼앗겼고, 그해 세상을 떠났다.

병자호란까지 9년

1627년 3월
강화도에서 형제의 맹약을 맺는다. 후금군이 물러난다.
1628년 무렵
압록강 가의 중강과 두만강 가의 회령에서 후금과 교역하는 시장이 열린다.
1629년
가도의 모문룡이 명의 장수 원숭환에게 처형된다.
1630년대 초
후금이 보내는 물품의 양을 늘리라고 거듭 요구하고, 조선 조정 안에서는 맹약을 끊자는 목소리가 커진다.
1636년 봄
홍타이지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황제를 칭하며, 조선에 신하의 예를 요구한다. 인조 조정이 이를 거부한다.
1636년 12월
청군이 압록강을 건넌다. 병자호란이다.

자주 헷갈리는 점

정묘호란 때 쳐들어온 나라는 청이 아니라 후금이다. 청이라는 이름은 1636년에 생겼다. 그래서 정묘년에 맺은 것은 형과 아우의 관계였고, 병자년에 강요된 것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였다. 두 전쟁은 이름이 비슷하지만 맺은 관계의 무게가 다르다. 또 이 글의 날짜는 모두 실록이 쓴 음력 날짜다. 양력으로 바꾸면 한 달쯤 뒤로 밀린다.

더 알아 둘 점

정묘호란은 9년 뒤의 병자호란에 가려 덜 알려졌지만, 그 출발점이다. 이때 맺은 형제의 맹약은 후금이 청으로 이름을 바꾸고 황제를 칭한 뒤 군신 관계로 바꾸자는 요구로 이어졌고, 조선이 이를 거부하면서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의주성에 숨어든 한윤의 방화는 『인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서술이지만, 내응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같은 세부는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한다. 성 하나가 무너진 데에는 바깥의 군대만큼 안의 허술함, 곧 숨어든 길잡이와 지켜지지 않은 무기고와 성문이 큰 몫을 했다. 나라 안의 반란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이 나라 밖 군대의 길잡이가 되어 돌아왔다는 점도 이 전쟁의 아픈 대목이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압록강 나루의 늙은 사공, 의주 무기고를 지키는 군졸, 의주 장시를 오가는 인삼 상인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조선 인조 4년, 의주와 압록강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광해군 때 명나라를 도우러 요동에 나갔던 조선 장수 강홍립은 싸움에 진 뒤 후금에 남았다. 조선에서 반란(이괄의 난)이 꺾이자, 반란에 가담한 집안의 한윤은 후금으로 넘어가 조선의 사정을 일러바친다.

병인년 홍타이지가 후금의 칸(임금)이 된다. 압록강 어귀의 섬 가도에는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머물며 후금을 자극하고, 압록강 너머에서는 군사가 모인다는 소문이 돈다.

정묘년 정월 열나흘 새벽, 의주성 무기고에서 불길이 오르고 누군가 성문을 연다. 그 뒤로 정주·안주·평양이 차례로 무너진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626년 가을, 의주 장시

의주 장시(장이 서는 거리)에는 강 건너에서 온 털가죽과 인삼이 오간다. 장사꾼들은 요즘 후금 쪽에서 말과 마초(말 먹이)를 모조리 사들인다고 수군거린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재물(물자), 정보(지식), 사람(인맥)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1626년 겨울, 압록강이 얼던 무렵

압록강이 얼기 시작했다. 얼음이 두꺼워지면 군사가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성안 무기고의 화약은 처마 밑에 쌓여 있고, 파수는 밤마다 졸고 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정보(지식),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1627년 정월 초, 의주성 안

정월 열사흘, 후금군이 강을 건넜다는 말이 성에 닿는다. 성안 주막에는 며칠 전부터 말씨가 이상한 사내들이 머물고, 성문 군졸 몇은 밀린 급료를 두고 투덜댄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재물(물자), 사람(인맥)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627년 1월 14일 새벽, 의주성

포위가 시작되었다. 성 밖에는 후금군의 횃불이 줄지어 있고, 성안 어둠 속에서 누군가 무기고 쪽으로 걸어간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한윤이 무기고에 불을 지르고 성안에서 문이 열려 의주가 하루 만에 무너졌고, 부윤 이완은 붙잡혀 죽었다. 정주·안주·평양이 잇따라 떨어졌고, 3월 3일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패륵
후금의 왕족 장수에게 붙던 칭호
부윤
큰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
심하 전투
1619년 명과 조선이 후금과 싸워 진 싸움
가도
압록강 어귀의 섬
후금
뒷날의 청나라
장시
장이 서는 거리
마초
말 먹이
의주부윤
의주 고을 수령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1626년, 의주성의 무기고.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