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칠천량 해전
1597년 · 조선 · 막기
칠천량 해전 — 열두 척이 남기까지
한눈에 보기
- 언제
- 1597년 · 조선 선조 30년
- 어디서
- 한산도와 칠천량
- 무슨 일
- 1597년 7월, 거제 칠천도 앞바다(칠천량)에 머물던 조선 수군을 일본 수군이 밤에 기습했다(칠천량 해전, 정유재란).
- 무엇이 문제였나
- 이순신이 키운 조선 수군 대부분이 하룻밤에 무너지고 장수들이 전사했다. 빠져나온 배는 12척뿐이었다.
- 이야기 속 목표
- 칠천량에서 밤에 기습을 받아도 조선 수군이 무너지지 않게 만든다
배경: 다시 시작된 전쟁
임진왜란은 몇 해 동안 명나라와 일본 사이의 강화 교섭으로 멈춰 있었다. 그러나 교섭은 깨졌고, 1597년 일본은 다시 군대를 보냈다. 이것이 정유재란이다. 첫 전쟁 때 일본군이 바다로 군량과 군사를 실어 나르지 못해 애를 먹은 것은 조선 수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이번에는 무엇보다 조선 수군을 꺾는 데 힘을 쏟았다. 바다에서 일본군을 막아 온 이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었다. 그런데 그해 초, 조선 조정은 그 이순신을 바다에서 끌어냈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597년 1월과 2월, 통제사가 바뀌다
1597년 1월, 일본 쪽 이중첩자 요시라가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바다를 건너는 때를 알려 왔다. 조정은 바다에서 가토를 치라고 했지만 이순신은 이 정보를 믿지 않고 출전을 미뤘다. 이 일과 출전 지연 등이 문제가 되어 2월 26일 이순신은 벼슬을 잃고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그 자리에 원균이 앉았다. 4월 초 옥에서 풀려난 이순신은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다니는 백의종군 길에 올랐고, 그 길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전개 — 1597년 6월과 7월, 독촉받은 출전
새 통제사 원균도 부산 앞바다로 나가는 것을 꺼렸다. 그는 육군이 먼저 일본군의 거점을 쳐 주어야 수군이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6월 안골포와 가덕도 쪽으로 출전했지만 보성군수 안홍국이 전사했다. 7월, 도원수 권율은 원균을 불러 곤장을 치며 출전을 재촉했다. 7월 7일부터 14일까지 조선 수군은 부산 앞바다로 나갔지만 풍랑과 식수난에 시달렸고, 가덕도에서 물을 길으러 상륙한 군사 400여 명을 잃었다. 지친 함대는 영등포를 거쳐 거제 칠천도 앞의 좁은 바다, 칠천량에 닻을 내렸다. 척후와 경계는 허술했다.
결말 — 7월 15일 밤에서 16일 새벽까지
7월 15일 밤, 일본 수군은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칠천량의 조선 수군을 에워싸고 기습했다. 16일 새벽까지 이어진 싸움에서 조선 수군 대부분이 무너졌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가 전사했고, 원균도 춘원포에 내려 육지로 빠져나가다 죽었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이끈 12척만 빠져나와 한산도로 물러났다. 한산도의 통제영은 적이 쓰지 못하도록 비워졌다.
7월 22일과 23일 무렵, 조정은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삼았다. 9월 16일, 이순신은 남은 배들로 명량에서 일본 수군과 싸웠다.
연표로 보는 반년
- 1597년 1월 요시라가 가토 기요마사의 도해 시점을 알려 온다. 이순신이 출전을 미룬다.
- 2월 26일 이순신이 압송되고 원균이 통제사가 된다.
- 4월 초 이순신이 옥에서 풀려나 백의종군 길에 오른다.
- 6월 원균이 안골포와 가덕도 쪽으로 나섰다가 안홍국을 잃는다.
- 7월 7~14일 부산 앞바다로 출전했다가 풍랑과 식수난에 시달린다.
- 7월 15~16일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 대부분이 무너진다.
- 7월 22~23일 무렵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 9월 16일 명량 해전.
『난중일기』에 남은 칠천량
이순신은 이 무렵 권율의 진영 가까이에서 백의종군하고 있었다. 그의 『난중일기』 정유년 7월 18일 자에는, 새벽에 찾아온 사람들에게서 16일 새벽 수군이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하고 원균과 이억기, 최호 등 여러 장수가 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을 참지 못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는 곧 권율과 의논한 뒤 직접 바닷가로 내려가 남은 형편을 살피겠다며 길을 나섰다.
그 뒤 몇 주 동안의 일기에는 흩어진 군사와 배를 찾아 남해안을 돌던 날들이 이어진다. 싸움터에서 살아 나온 사람의 보고는 『선조실록』에도 실려 조정이 패전을 알게 된 과정을 전한다. 다만 지휘관 대부분이 그날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해, 싸움의 세부를 전하는 기록은 많지 않다.
왜 무너졌나
칠천량의 패배에는 여러 까닭이 겹쳐 있다. 하나는 무리한 출전이었다. 조정과 도원수는 부산 앞바다로 나가 일본군의 바닷길을 끊으라고 거듭 몰아세웠다. 그러나 부산 앞바다는 일본군의 거점이 빽빽한 곳이었고, 조선 수군이 쉬고 물을 얻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또 하나는 지친 함대였다. 며칠 동안 풍랑 속을 오가며 군사들이 지쳤고, 정박한 곳은 좁은 바다여서 빠져나갈 길이 좁았다. 마지막으로 밤의 경계가 허술했다. 일본 수군은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다가와 조선 함대를 에워쌌다.
이순신이 오랫동안 피해 온 것이 바로 이런 싸움이었다. 그는 적이 유리한 곳으로 끌려 나가지 않고, 물살과 지형이 내 편인 곳으로 적을 끌어내 싸웠다. 칠천량은 그 원칙이 무너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준 싸움이었다.
그 뒤에 일어난 일
바다를 손에 넣은 일본군은 남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며 육지에서도 전라도로 밀고 들어왔다. 8월에는 남원성이 함락되었다. 조정 안에서는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치자는 말까지 나왔다. 이순신이 이때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뜻의 장계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명량에 나선 조선 전선은 13척으로 적히는데, 그 뒤 수습한 배가 더해진 것으로 본다. 9월 16일 명량에서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의 서진을 막아 냈다.
주요 인물
- 원균
- 이순신의 뒤를 이은 삼도수군통제사. 독촉 속에 출전했다가 칠천량에서 패하고 죽었다.
- 이순신
- 파직되어 백의종군하다 칠천량 패전 뒤 다시 통제사가 되었다.
- 권율
- 도원수. 원균에게 출전을 강하게 재촉했다.
- 이억기와 최호
- 전라우수사와 충청수사. 칠천량에서 전사했다.
- 배설
- 경상우수사. 12척을 이끌고 빠져나왔다. 뒤에 군을 떠난 죄로 1599년 처형되었다.
- 도도 다카토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친 일본 수군 장수들.
더 알아 둘 점
칠천량 해전은 조선 수군이 겪은 가장 큰 패배로 꼽힌다. 원균을 무능한 장수로만 그리는 이야기가 많지만, 평가는 지금도 논쟁적이다. 원균 역시 출전을 꺼렸고, 조정의 압박과 도원수의 곤장이 그를 바다로 내몰았다. 지친 함대가 경계 없이 좁은 바다에 머문 밤, 그 결과가 한꺼번에 터졌다. 싸움의 날짜는 사료에 따라 15일 또는 16일로 적힌다. 이 글의 날짜는 음력이다. 하룻밤 사이 이순신이 몇 해에 걸쳐 키운 함대가 사라졌고, 남은 배들이 두 달 뒤 명량의 바다에 섰다는 점에서, 칠천량은 명량 해전의 앞 장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판옥선의 노 젓는 격군, 경상우수영의 탐망 군관, 한산도 통제영의 군량 아전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조선 선조 30년, 한산도와 칠천량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1597년 이월, 삼도수군통제사(조선 수군 총사령관) 이순신이 벼슬을 잃고 한양으로 끌려갔다. 일본 쪽 첩자 요시라가 흘린 정보를 두고 출전을 미뤘다는 것이 죄목의 하나였다. 그 자리에 원균이 앉았다.
원균도 부산 앞바다로 나가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조선군 총사령관 권율이 그를 불러 곤장을 치며 출전을 재촉한다. 이순신은 백의종군(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다님) 중이다.
칠월, 지친 함대가 거제 칠천도 앞 좁은 바다에 닻을 내린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597년 4월,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떠난 뒤
원균이 한산도 통제영(수군 본부)의 주인이 되었다. 장수들은 말을 아끼고, 격군들 사이에선 도망 이야기가 오간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재물(물자),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 격군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속사정을 듣는다 사람
지친 노꾼들의 마음과 도망 낌새를 안다. - 한산도에서 둔전을 일구고 소금을 굽는다 재물
함대가 굶지 않을 식량이 생긴다. - 물길에 밝은 사람으로 통제영에 이름을 낸다 이름
장수들이 물길 일을 내게 묻게 된다.
넷째 장 · 전개 — 1597년 6월~7월 초, 가덕도와 안골포
원균의 함대가 안골포와 가덕도로 나갔다가 장수를 잃고 돌아왔다. 칠월 초, 권율은 원균에게 곤장을 치고 다시 부산 앞바다로 나가라 명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힘(무력·조직), 사람(인맥)의 기반을 다진다.
- 거제 어부에게 칠천량의 물길과 조류를 묻는다 정보
칠천량에서 빠져나갈 물때를 미리 안다. - 척후선의 연기와 깃발, 북 신호를 익힌다 힘
밤에도 적과 퇴로를 알릴 신호가 생긴다. - 이순신 밑에서 싸웠던 장수들과 줄을 댄다 사람
위급할 때 내 말을 믿어 줄 장수가 생긴다.
다섯째 장 · 전개 — 1597년 7월 14일, 가덕도에서 물러난 뒤
부산 앞바다에서 풍랑과 물 부족에 시달린 함대가 가덕도에서 사람을 잃고 물러났다. 함대는 영등포를 거쳐 칠천량으로 향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힘(무력·조직),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 칠천량 양쪽 물목의 지형을 그려 둔다 정보
어느 쪽으로 빠져나가야 하는지 한눈에 보인다. - 지친 격군들을 추슬러 노 젓는 순번을 짠다 힘
한밤중에도 배를 움직일 힘이 남는다. - 한산도에 남은 물과 군량을 배에 실어 보낸다 재물
목마르고 지친 격군들이 다시 힘을 낸다.
여섯째 장 · 그날 — 1597년 7월 15일 밤, 칠천량
함대가 칠천도 앞에 닻을 내렸다. 척후선(적을 살피는 작은 배)은 띄워지지 않았고, 어둠 속 섬 그늘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 물때 그림을 들고 정박지를 옮기자고 고한다 정보
기습이 빈 바다를 쳐 수군이 살아남는다. - 척후선을 양쪽 물목에 띄우고 북 신호를 맞춘다 힘
적이 오는 것을 먼저 알고 함대가 빠져나간다. - 이억기의 배에 퇴로를 미리 알린다 사람
훨씬 많은 배가 살아남아 남해를 지킨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7월 16일 새벽 일본 수군의 기습으로 조선 수군 대부분이 무너졌다. 이억기와 최호가 전사했고, 경상우수사 배설이 이끈 열두 척만 빠져나왔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 정유재란
- 1597년 일본이 다시 일으킨 전쟁
- 이중첩자
- 두 나라를 오가며 정보를 흘리는 첩자
- 청야
- 적이 쓰지 못하게 들과 창고를 비우는 일
- 백의종군
-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다니며 싸움을 도움
- 판옥선
- 2층 구조로 만든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
- 삼도수군통제사
- 조선 수군 총사령관
- 격군
- 노 젓는 군사
- 통제영
- 수군 본부
- 척후선
- 적을 살피는 작은 배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1597년, 열두 척이 남기까지.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