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조선어학회 사건

1942년 · 일제강점기 · 막기

조선어학회 사건 — 큰사전 원고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1942년 · 일제강점기, 전시체제기
어디서
경성 화동과 함흥
무슨 일
1942년 일본 경찰이 우리말 사전을 만들던 조선어학회 학자들을 독립운동 혐의로 잇따라 붙잡았다(조선어학회 사건).
무엇이 문제였나
서른세 명이 모진 신문을 받았고 이윤재·한징이 옥에서 숨졌다. 13년 넘게 모은 사전 원고는 압수되어 사라질 뻔했다.
이야기 속 목표
우리말 사전 『조선말 큰사전』 원고와 그것을 만든 학자들을 지킨다

배경: 사전을 만드는 일

나라를 잃은 뒤에도 우리말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1921년 주시경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우리말을 연구하는 모임 조선어연구회가 만들어졌고, 이 모임은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9년 10월에는 여러 분야의 인사 100여 명이 뜻을 모아 조선어사전편찬회를 만들고 『조선말 큰사전』을 엮기 시작했다. 사전을 만들려면 먼저 말을 적는 규칙이 있어야 했다. 학회는 1933년 10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1936년 표준어 사정을 내놓았다. 1940년에는 조건을 붙여 사전의 출판 허가까지 받았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뒤 일제는 1938년부터 학교의 조선어 수업을 선택 과목으로 돌려 사실상 없애고, 일본어만 쓰게 하는 등 우리말을 지우려 했다. 1940년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폐간되었다. 그런 때에 우리말 사전을 엮는 일 자체가 일제의 눈에는 위험한 일이었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942년 여름, 함흥의 여학생

1942년 여름, 함흥 영생고녀의 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조선말로 이야기한 일이 문제가 되었다. 학생의 일기가 문제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함경남도 홍원의 경찰은 학생들을 조사하며 민족의식을 심어 준 사람을 찾았고, 그 학교에서 가르쳤던 사전 편찬원 정태진을 지목했다. 9월, 정태진이 경찰에 불려 갔다.

전개 — 1942년 10월 1일부터, 33명의 검거

10월 1일부터 이중화, 장지영, 최현배, 이희승, 이윤재, 한징, 정인승, 권승욱, 이석린 등 학회 사람들이 잇따라 붙잡혔다. 1943년 4월 1일까지 붙잡힌 사람은 33명에 이르렀다. 경찰은 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몰아, 치안유지법의 내란죄 혐의를 씌웠다. 이들은 홍원경찰서를 거쳐 함흥형무소에 갇혀 모진 신문을 받았다. 사전 원고는 증거물로 압수되었다.

결말 — 1943년부터 1945년까지

1943년 12월 8일 이윤재가, 1944년 2월 22일 한징이 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이 숨진 날짜는 자료에 따라 조금 다르다. 1944년 12월부터 1945년 1월 사이 함흥지방법원의 재판에서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이 실형을 받았다. 이극로가 가장 무거운 6년형이었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집행유예나 무죄를 받았다. 정태진을 뺀 네 사람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고, 사전 원고는 상고심의 증거물로 경성으로 옮겨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상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들은 광복을 맞은 뒤에야 함흥형무소에서 풀려났다.

1945년 9월 8일,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그 원고가 발견되었다. 2만 6,500여 장이었다.

연표: 말모이에서 큰사전까지

사전이 어떻게 ‘내란’이 되었나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사전을 만든 일이 왜 죄가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제의 논리는 이랬다. 한 민족의 고유한 말과 글은 민족의식을 기르는 바탕이고, 그 말을 정리하고 지키는 일은 결국 그 민족이 독립하려는 준비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회의 사전 편찬과 맞춤법 정리, 강연과 잡지 발행이 모두 독립을 꾀하는 활동으로 엮였다. 판결문도 이런 논리로 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라고 규정했다.

이 논리는 거꾸로 이 일의 무게를 보여 준다. 말을 모으고 규칙을 세우는 일은 총을 들지 않았지만, 일제가 지우려던 것을 끝까지 남기려는 일이었다. 학회 사람들이 붙잡혀 있는 동안에도 원고는 증거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주요 인물

이극로
조선어학회를 이끈 학자. 사건으로 가장 무거운 형을 받았다.
최현배와 이희승
우리말을 연구한 학자들. 사건으로 실형을 받았다.
정인승
사전 편찬을 이끈 학자. 실형을 받았다.
정태진
사전 편찬원. 영생고녀에서 가르친 일로 가장 먼저 경찰에 불려 갔다.
이윤재와 한징
조선어학회 학자들. 함흥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영옥
함흥 영생고녀 학생. 기차 안에서 조선말로 이야기한 일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학생에게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주 헷갈리는 점

조선어학회는 처음부터 그 이름이 아니었다. 사전 편찬이 시작된 1929년의 이름은 조선어연구회였고, 1931년에 조선어학회가 되었으며, 광복 뒤 1949년 한글학회가 되었다. 또 사전의 이름도 바뀌었다. 처음 나온 권들은 『조선말 큰사전』으로, 뒤의 권들은 『큰사전』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사건의 발단을 기차 안의 대화로 보는 쪽(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일기장으로 보는 쪽이 있지만, 어느 쪽이든 한 학생의 평범한 일상이 구실이 되었다는 점은 같다. 경찰이 노린 것은 학생이 아니라 학회였다.

원고가 걸어온 길

조선어학회 사건은 말과 글을 지키는 일이 곧 독립운동으로 처벌받았던 시대를 보여 준다. 서울역 창고에서 찾은 원고 덕분에 사전 편찬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되었다. 원고는 원고지에 손으로 쓰고 고친 흔적이 그대로 남은 묶음으로, 한 낱말 한 낱말을 몇 해에 걸쳐 모으고 다듬은 과정을 보여 준다. 이 원고는 국가등록문화재를 거쳐 지금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영화 「말모이」가 이 사전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조선어학회는 지금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오늘 쓰는 맞춤법과 표준어의 큰 틀도 이 학회가 그 시절에 놓은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조선어학회의 원고 나르는 사환, 함흥 영생고녀의 국어 교사, 함흥형무소 의무실의 간병부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일제강점기, 전시체제기, 경성 화동과 함흥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우리말을 연구하는 학자 모임 조선어학회는 1929년부터 『조선말 큰사전』을 엮어 왔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한글 쓰는 규칙)을 내고, 1940년에는 출판 허가까지 받았다.

1942년 여름, 함경남도 홍원 경찰이 함흥 영생고녀(여학교) 학생들을 조사하다 사전을 엮던 정태진을 불러 간다. 10월 1일부터 학회를 이끌던 이극로를 비롯해 학자들이 잇따라 붙잡힌다.

이윤재와 한징은 끝내 옥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원고 2만 6천여 장은 증거물로 압수된 채 행방을 감춘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942년 봄, 화동 조선어학회 회관

조판(인쇄할 판을 짜는 일)을 기다리는 원고 카드가 상자마다 빼곡하다. 전쟁이 길어지며 학교에서는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사람(인맥),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1942년 여름, 함경남도 홍원

홍원 경찰이 영생고녀 학생들을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왔다. 질문은 학생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친 사람을 향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정보(지식),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1942년 9월, 정태진이 불려 간 뒤

정태진 선생이 홍원으로 불려 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회관 사람들은 아직 그 뜻을 다 알지 못한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힘(무력·조직),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942년 9월 30일 밤, 화동 조선어학회 회관

내일 아침 경찰이 회관에 들이닥친다. 원고 상자를 옮길 수 있는 밤은 오늘뿐이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서른세 명이 붙잡혀 모진 신문을 받았고, 이윤재와 한징이 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압수된 원고는 광복 뒤인 1945년 9월에야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조선어학회
우리말과 한글을 연구하던 학자 모임. 지금 한글학회의 앞 이름
치안유지법
일제가 독립운동과 사상 운동을 처벌하려 만든 법
표준어 사정
여러 지역 말 가운데 표준이 될 말을 정한 일
전시체제기
1937년 중일전쟁 뒤 일제가 전쟁을 위해 조선을 옥죈 시기
말모이
주시경과 제자들이 엮다 끝내지 못한 첫 우리말 사전 원고. ‘말을 모은 것’이라는 뜻
상고
판결에 따르지 않고 더 높은 법원에 다시 재판을 청함
통일안
한글 쓰는 규칙
조판
인쇄할 판을 짜는 일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1942년, 큰사전 원고.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