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한국광복군과 독수리 작전

1944년 · 일제강점기 · 막기

한국광복군과 독수리 작전 — 독수리 작전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1944년 · 일제강점기, 전시체제기
어디서
충칭과 시안 두취
무슨 일
1945년 임시정부의 군대 한국광복군이 미국과 손잡고 한반도에 몰래 들어갈 요원을 길렀다(독수리 작전).
무엇이 문제였나
훈련을 마치고 들어가기 직전 일본이 항복했다. 우리 군대가 직접 싸워 나라를 되찾을 기회를 놓쳤다.
이야기 속 목표
광복군 침투조가 8월 15일보다 먼저 나라 안에 들어가 있게 한다

배경: 임시정부의 군대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자기 군대인 한국광복군을 세웠다. 총사령은 지청천, 참모장은 이범석이었다. 임시정부는 일본군을 피해 상하이에서 항저우, 창사, 광저우 등지를 거쳐 몇 해 동안 옮겨 다닌 끝에 충칭에 자리 잡은 참이었다. 그러나 군대의 출발은 쉽지 않았다. 병력은 적었고, 돈과 무기는 중국 정부의 도움에 기대야 했다.

1941년 11월 중국 정부가 내놓은 9개 행동준칙 때문에 광복군은 중국군의 지휘 아래 묶였다. 그래도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고, 1942년에는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 일부가 광복군에 합류했다. 1943년에는 광복군 공작대가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함께 일본군을 상대로 선전과 포로 신문 같은 일을 맡았다. 광복군은 1944년 8월에야 9개 행동준칙에서 벗어났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945년 초, 학병 탈출자들과 OSS

1945년 1월, 일본군에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한 장준하와 김준엽 등이 충칭의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같은 무렵 미국의 첩보 기관 OSS는 한인을 활용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2월 24일 OSS의 한인 활용 계획이 나왔고, 4월 3일 김구와 OSS의 클라이드 서전트 대위가 합의했으며, 4월 17일 정식 협정이 맺어졌다. 한반도에 몰래 들어가 첩보를 모으고 연락망을 만드는 요원을 기르는 독수리 작전이었다.

전개 — 1945년 5월부터, 두취와 리황의 훈련

5월 11일, 시안 두취의 광복군 제2지대와 리황의 제3지대에서 훈련이 시작되었다. 제2지대는 이범석이, 제3지대는 김학규가 이끌었다. 훈련생들은 적진에 몰래 들어가 무전으로 소식을 보내고 첩보를 모으는 기술을 배웠다. 8월 3일 OSS 평가단이 훈련 성과를 살폈고, 8월 4일 제2지대 1기 50명 가운데 38명이 훈련을 마쳤다.

결말 — 1945년 8월, 침투 직전의 항복

8월 7일, 김구와 지청천, 이범석은 OSS 책임자들과 함께 공동작전을 선언했다. 침투 계획이 확정되어 가던 때였다. 그러나 8월 10일 무렵 일본이 항복할 뜻을 밝혔고, 8월 15일 광복을 맞았다. 독수리 작전은 끝내 실행되지 못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 오랜 고생 끝에 준비한 참전이 모두 허사가 되었다며, 이 소식이 기쁘기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는 심정을 남겼다.

훈련은 무엇을 가르쳤나

독수리 작전의 훈련은 석 달 과정으로 짜였다. 훈련생들은 무전기를 다루고 모스 부호로 소식을 주고받는 법, 적의 부대와 시설을 살펴 보고하는 법, 들키지 않고 움직이는 법 등을 배웠다. 일부는 폭파와 사격 같은 기술도 익혔다. 이들의 임무는 큰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고향 땅에 몰래 들어가 연합군에게 필요한 정보를 보내고 현지 사람들과 연락망을 만드는 것이었다. 훈련을 마친 사람들은 한반도의 주요 지역별로 나뉘어 들어갈 계획이었다고 전한다. 1기를 마친 뒤에는 2기 훈련이 이어질 예정이었다.

학병들의 긴 길

독수리 작전의 훈련생 가운데에는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이 많았다. 일제는 1944년 무렵 전문학교와 대학에 다니던 조선인 학생들을 학병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끌어냈다. 중국 전선으로 보내진 이들 가운데 몇몇은 부대를 빠져나와 광복군을 찾아 나섰다. 장준하와 김준엽 일행은 쉬저우 근처의 부대를 탈출해 중국군 지역을 거쳐 충칭까지, 흔히 6천 리라 부르는 먼 길을 걸었다. 그 여정은 뒤에 장준하의 『돌베개』와 김준엽의 『장정』에 자세히 남았다.

이들이 충칭에 닿았을 때 임시정부는 크게 반겼다. 일본 군대의 사정을 직접 겪어 알고, 일본어와 중국어를 하며, 새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첩보 요원으로서도 귀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여럿이 시안으로 가 독수리 작전의 훈련을 받았다.

연표로 보는 다섯 해

주요 인물

김구
임시정부 주석. OSS와 합의하고 공동작전을 선언했다.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
이범석
광복군 참모장을 거쳐 제2지대장. 두취의 훈련을 이끌었다.
김학규
광복군 제3지대장. 리황에서 훈련을 이끌었다.
장준하와 김준엽
일본군 학병에서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하고 제2지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클라이드 서전트
OSS 대위. 두취의 훈련을 책임졌다.

더 알아 둘 점

독수리 작전은 우리 군대가 직접 국내로 들어가 나라를 되찾는 싸움에 나서려 한 계획이었다. 그 기회를 놓친 것은 광복 뒤의 나라에도 그림자를 남겼다. 연합국의 일원으로 싸웠다는 자격을 얻지 못한 채 광복을 맞았기 때문이다. 임시정부의 요인들도 그해 11월 정부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다. 김구의 탄식이 깊었던 까닭이다.

작전을 시작하려던 날짜는 8월 9일로도, 8월 20일 전후로도 전해 자료마다 다르다. OSS 국장 도노반이 8월 시안을 찾아 회의에 함께했다는 서술도 있지만 더 확인이 필요하다. 광복 직후에는 이범석과 장준하, 김준엽 등이 국내정진군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8월 16일 한 차례 떠났다가 되돌아갔고, 18일 다시 떠나 여의도 비행장에 내렸지만 일본군에 막혀 이튿날 돌아갔다. 이 일은 광복 뒤의 일이라 이야기의 범위 밖에 두었다. 광복군 대원들은 광복 뒤에도 한동안 중국에 머물러야 했고, 많은 사람이 이듬해 무렵에야 고국 땅을 밟았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일본군에서 탈출한 조선인 학병, 두취 훈련장의 무전 교육생, 임시정부 청사의 타자수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일제강점기, 전시체제기, 충칭과 시안 두취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1940년 9월 17일,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자기 군대인 한국광복군을 세웠다. 총사령은 지청천, 참모장은 이범석이다.

1945년 4월 광복군은 미국 첩보 기관 OSS와 손잡고 한반도로 몰래 들어갈 요원을 기르는 독수리 작전을 시작한다. 8월 4일 첫 훈련생 서른여덟 명이 훈련을 마친다.

그러나 침투를 앞두고 일본이 항복한다. 김구는 천신만고 끝에 준비한 참전이 허사가 되었다며 탄식한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944년 가을, 쉬저우 근처

일본군에 끌려온 조선인 학병(전쟁에 끌려간 학생 병사)들이 탈출을 궁리한다. 중국 쉬저우에서 충칭까지는 육천 리 길이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힘(무력·조직), 정보(지식)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1945년 1월, 충칭 임시정부 청사

학병 탈출자들이 충칭에 닿았다. 광복군은 사람을 얻었지만 무기도 훈련도 연합군의 약속도 아직 없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이름(평판·여론), 정보(지식),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1945년 2월, 시안 두취

김구 주석과 OSS 쪽의 만남이 미뤄지고 있다. 시안 근처 산골 두취의 훈련장은 비어 있고, 학병 출신들은 기다리다 지쳐 간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이름(평판·여론), 사람(인맥),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945년 3월, 충칭 임시정부 청사

미국과의 협정이 늦어지면 훈련은 여름 끝에야 끝난다. 몇 주를 당길 수 있는 때는 지금뿐이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8월 4일 첫 기 서른여덟 명이 훈련을 마치고 8월 7일 공동작전이 선언되었지만, 침투 직전 일본이 항복해 독수리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OSS
미국의 전략첩보국. 2차 세계대전 때의 첩보 기관
9개 행동준칙
광복군을 중국군 아래에 두게 한 중국 쪽 규정
학병
일제가 전쟁에 끌어낸 조선인 학생 병사
지대
광복군의 부대 단위
선전포고
전쟁을 시작한다고 공식으로 알림
국내정진군
나라 안으로 먼저 들어가려고 꾸린 광복군 부대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1944년, 독수리 작전.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