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6·10 만세운동
1926년 · 일제강점기 · 막기
6·10 만세운동 — 6·10 만세운동
한눈에 보기
- 언제
- 1926년 · 일제강점기
- 어디서
- 경성 종로
- 무슨 일
- 1926년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 날, 학생과 청년들이 장례 행렬에서 만세를 부르려 했다(6·10 만세운동).
- 무엇이 문제였나
- 6월 초 미리 찍은 격문을 경찰에 빼앗겨 준비한 사람들이 붙잡혔다. 당일 만세를 부른 학생들도 많이 잡혀갔다.
- 이야기 속 목표
- 순종의 장례 날, 만세를 부르자는 격문이 빼앗기지 않고 거리에 뿌려지게 한다
배경: 마지막 황제의 죽음
1926년 4월 25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세상을 떠났다. 순종은 1907년 고종이 일제의 압력으로 물러난 뒤 황제가 되었고, 1910년 나라가 병합된 뒤에는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와 ‘이왕’이라는 이름으로 창덕궁에서 지냈다. 나라를 잃은 지 16년이 지났지만, 황제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창덕궁 돈화문 앞에는 날마다 곡을 하러 온 사람들이 모였다. 장례 날인 인산일은 6월 10일로 정해졌다. 7년 전 고종의 인산을 앞두고 3·1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이번에도 장례 행렬에 맞춰 만세를 부르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일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경찰과 군대가 경성 곳곳에 배치되었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926년 4월과 5월, 두 갈래의 준비
사회주의 운동가인 고려공산청년회의 권오설은 6·10투쟁특별위원회를 꾸리고, 대한독립당 이름으로 된 격문을 기획했다. 천도교 청년 박래원 등이 이 격문을 대량으로 인쇄했다.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의 천도교가 함께 손을 잡은 준비였다.
이와 따로 학생들도 움직였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의 이병립과 박하균, 중앙고보의 이선호 등 이른바 통동계 학생들은 각자 손으로 찍는 작은 인쇄기인 등사판을 돌려 격문을 수천에서 1만 장가량 만들었다.
전개 — 6월 초, 발각된 격문
6월 초, 6일 무렵으로 알려진 날 권오설 쪽이 찍어 둔 인쇄물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발각되었다. 권오설과 박래원 등이 붙잡혔고, 조선공산당은 이 일로 크게 타격을 입었다. 이 일을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이라고도 한다. 발각된 경위는 위조지폐를 수사하다 우연히 찾아냈다는 설을 비롯해 자료마다 다르다.
결말 — 6월 10일, 인산 행렬
6월 10일 오전, 순종의 장례 행렬이 돈화문을 나서 종로를 지났다. 학생들은 종로 단성사 앞을 비롯한 행렬 길가 여러 곳에서 격문을 뿌리고 만세를 외쳤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고, 길가의 시민 가운데 따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한다. 가장 먼저 만세가 터진 곳은 종로 단성사 앞으로, 중앙고보 학생 이선호가 앞장섰다고 전한다. 많은 학생이 그 자리에서 붙잡혔다. 붙잡힌 학생은 200여 명으로 전하지만 숫자는 자료마다 다르다. 그 뒤 학생들의 동맹휴학이 전국으로 번졌고, 지방 몇 곳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1운동과 무엇이 달랐나
두 운동은 모두 황제의 장례를 계기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준비한 사람과 퍼진 방식이 달랐다. 3·1운동은 종교계 지도자들이 민족 대표로 나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고, 전국의 도시와 농촌으로 몇 달에 걸쳐 번졌다. 6·10 만세운동은 사회주의 운동가와 천도교 청년, 그리고 학생들이 준비했고, 경성의 인산 행렬 길가에서 하루 동안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3·1운동을 겪은 일제는 이번에는 미리 대비했고, 지도부는 그날이 오기 전에 붙잡혔다. 요구의 내용도 달랐다. 학생들이 뿌린 격문에는 일본의 지배를 끝내자는 외침과 함께, 조선 사람의 교육은 조선 사람 중심으로 하라는 요구,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없애라는 요구 같은 생활과 교육의 문제가 담겼다고 전한다. 그런데도 만세가 울렸다는 점이 이 운동의 특징이다. 준비한 사람들이 미리 붙잡혔는데도 만세가 울릴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이 따로, 각자 준비했기 때문이다. 한쪽이 들켜도 다른 쪽이 남았다.
왜 학생들이었나
1920년대에 들어 조선에서는 학교에 다니는 청년이 크게 늘었다. 3·1운동 뒤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를 내세우며 학교를 조금 늘렸고, 배우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학생들은 독서회와 연구회를 꾸려 책을 읽고 토론했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도 그런 모임 가운데 하나로, 경성의 여러 학교 학생들이 함께했다.
학생들은 수업 거부, 곧 동맹휴학으로 학교 안의 차별과 일본인 교사의 폭언에 맞서는 일에도 익숙했다. 같은 학교, 같은 하숙집, 같은 모임으로 이어진 관계는 경찰이 한 줄을 끊어도 다른 줄이 남는 연락망이 되었다. 6월 10일 지도부가 이미 붙잡힌 뒤에도 만세가 울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학생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3년 뒤 광주에서 다시 한번 드러난다.
주요 인물
- 권오설
- 고려공산청년회의 운동가. 6·10 만세운동을 총괄해 준비했으나 사전에 붙잡혔고, 193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 박래원
- 천도교 청년. 격문 인쇄를 맡았다.
- 이병립과 박하균
- 조선학생과학연구회의 학생들. 따로 격문을 만들어 당일 만세를 이끌었다.
- 이선호
- 중앙고보 학생. 통동계 학생들과 함께 만세를 준비했다.
- 순종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그의 인산일이 만세운동의 날이 되었다.
그 뒤에 일어난 일
- 1926년 하반기 붙잡힌 학생 가운데 일부가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받는다. 학교마다 동맹휴학이 이어진다.
- 1927년 2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함께한 단체 신간회가 만들어진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이 이어진 결과로 본다.
- 1929년 11월 광주에서 학생들이 일어선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전국으로 번진다. 6·10 만세운동에서 자란 학생 조직의 경험이 그 밑바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1930년 권오설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난다.
더 알아 둘 점
6·10 만세운동은 3·1운동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이 함께 큰 만세 운동을 준비한 이른 사례로 꼽힌다. 3·1운동과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사이를 잇는 학생 운동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에 견주어 덜 알려졌지만, 2020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다시 조명을 받았다. 준비한 사람 가운데 사회주의 계열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광복 뒤 평가가 엇갈리면서 덜 다뤄졌다는 지적도 있다.
순종은 경기도 남양주 금곡의 유릉에 묻혔다. 그날 행렬이 지나간 종로와 돈화문 앞은 지금도 서울 한복판에 있다. 2026년은 6·10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통동 하숙집의 중앙고보 학생, 천도교 인쇄소의 수습공, 인산 행렬을 지키는 조선인 순사보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일제강점기, 경성 종로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1926년 4월 25일, 순종이 세상을 떠났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를 보내는 인산일(임금의 장례 날)은 6월 10일로 정해진다.
사회주의 운동가 권오설은 천도교(동학을 이은 종교) 청년들과 손잡고 장례 행렬에 맞춰 뿌릴 격문(만세를 부르자는 글)을 대량으로 찍는다. 학생들도 따로 등사판(손으로 찍는 작은 인쇄기)을 돌린다.
그러나 6월 초, 격문이 경찰 손에 들어간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926년 5월, 순종 승하 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앞에 곡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그 슬픔 아래에서 여러 무리가 같은 날을 따로 준비하고 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사람(인맥),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 인산 행렬 경로와 경찰 배치를 알아낸다 정보
순사가 없는 자리를 골라 격문을 뿌릴 수 있다. - 학교마다 누가 어느 자리에 설지 연락망을 짠다 사람
학생들이 행렬 곳곳에서 한꺼번에 만세를 부른다. - 등사판 세 대를 서로 다른 하숙집에 나눠 둔다 힘
한 집이 뒤져져도 격문을 계속 찍을 수 있다.
넷째 장 · 전개 — 1926년 5월 하순, 천도교 인쇄소
권오설과 천도교 청년 박래원 쪽 격문이 수만 장 찍혀 쌓인다. 학생들도 밤마다 등사판을 돌린다. 숨길 곳이 모자란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재물(물자), 정보(지식),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 상복과 짚신을 사서 격문을 숨길 보따리를 꾸린다 재물
장례 짐처럼 보여 격문을 숨겨 옮길 수 있다. - 경찰이 어느 동네를 뒤지는지 귀띔을 받는다 정보
경찰이 뒤질 동네를 미리 피할 수 있다. -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모범생으로 보이게 처신한다 이름
경찰 의심을 피해 내 가방은 뒤지지 않는다.
다섯째 장 · 전개 — 1926년 6월 초, 경성
경찰이 무언가를 쫓고 있다는 기척이 짙어졌다. 격문을 쌓아 둔 곳 가운데 어디가 먼저 뒤져질지 모른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재물(물자),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 천도교 청년들과 학생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사람
두 무리가 손발을 맞춰 한쪽이 막혀도 버틴다. - 격문을 옮길 손수레와 짐꾼 삯을 미리 치러 둔다 재물
급할 때 격문을 한꺼번에 옮길 수 있다. - 격문 더미를 밤에 나를 골목길을 익혀 둔다 힘
순사 초소를 피해 밤에 격문을 나를 수 있다.
여섯째 장 · 그날 — 1926년 6월 초, 격문을 숨긴 집
오늘 밤 경찰이 이 집을 뒤진다는 말이 들어왔다. 쌓인 격문과 사람들의 이름이 한 지붕 아래 있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 수색 전에 격문을 여러 집으로 나눠 옮긴다 정보
격문이 살아남아 장례 날 거리 곳곳에 뿌려진다. - 연락 줄을 끊어 한 사람이 잡혀도 다른 쪽이 모르게 한다 사람
한 곳이 잡혀도 학생들 계획은 들키지 않는다. - 격문을 상복 보따리에 싸 장례 손님들 짐에 섞는다 재물
경찰 눈을 피한 격문이 장례 인파를 타고 퍼진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6월 초 격문이 발각되어 권오설·박래원 등이 붙잡혔다. 6월 10일 학생들은 인산 행렬 곳곳에서 만세를 불렀지만 많은 학생이 검거되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 인산
- 임금이나 왕족의 장례
- 승하
- 임금이 세상을 떠남
- 동맹휴학
-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거부함
- 연도
- 행렬이 지나가는 길가
- 격문
- 사람들에게 함께 일어서자고 외치는 글
- 등사판
- 손으로 밀어 여러 장을 찍어 내는 작은 인쇄기
- 인산일
- 임금의 장례 날
- 천도교
- 동학을 이은 종교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1926년, 6·10 만세운동.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