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일장기 말소 사건

1936년 · 일제강점기 · 막기

일장기 말소 사건 — 일장기 말소 사건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1936년 · 일제강점기
어디서
경성 동아일보 편집국
무슨 일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자, 동아일보가 시상식 사진 속 그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지워 실었다(일장기 말소 사건).
무엇이 문제였나
총독부가 기자들을 잡아가 40여 일 신문하고 동아일보를 이듬해 6월까지 정간시켰다. 조선중앙일보는 끝내 문을 닫았다.
이야기 속 목표
사진 속 일장기를 지운 일 때문에 신문사가 문을 닫고 기자들이 끌려가지 않게 한다

배경: 베를린의 두 사람

1936년 8월 9일(현지 날짜), 독일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남승룡이 동메달을 땄다. 손기정의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로, 당시 올림픽 최고 기록이었다. 손기정은 1912년 신의주에서 태어나 경성의 양정고보에서 달리기를 했고, 남승룡은 전남 순천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조선 사람이었지만 나라를 잃은 탓에 일본 대표로,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다. 8월 10일부터 경성의 신문들은 호외를 뿌리며 기쁜 소식을 알렸다. 거리마다 축하하는 열기가 가득했다.

손기정은 시상대에서 우승 기념으로 받은 어린나무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러나 이 사건 자체는 손기정이 아니라 그 소식을 전한 신문사에서 벌어졌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8월 13일, 흐리게 지운 첫 사진

8월 13일,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 4면과 『동아일보』 지방판 2면에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를 흐릿하게 지운 사진이 실렸다. 이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지나갔다. 『동아일보』도 이날 지방판에 같은 사진을 실었다는 사실은 뒤의 연구로 확인되었다.

전개 — 8월 25일, 다시 지운 시상식 사진

8월 25일, 『동아일보』 2면에 손기정의 시상식 사진이 실렸다. 일본 신문사 계열에서 받은 사진을 옮겨 실은 것이었는데, 미술기자 이상범이 사진의 일장기를 지웠다. 총독부 경무국은 이번에는 이를 문제 삼아 조사에 나섰다.

결말 — 8월 29일과 그 뒤

체육부 기자 이길용과 미술기자 이상범, 사회부장이자 소설가인 현진건 등이 붙잡혀 40여 일 동안 신문을 받았다. 이들은 다시는 언론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풀려나 언론계를 떠나야 했다. 『동아일보』는 8월 29일자로 무기정간을 당했고, 이듬해 1937년 6월 2일에야 정간이 풀렸다. 정간을 풀어 주는 대가로 사장 송진우 등 경영진이 물러났다고 전한다. 『조선중앙일보』는 9월 5일 스스로 발행을 멈춘 뒤, 끝내 1937년 폐간되었다.

날짜로 따라가는 한 달

왜 사진 한 장이 문제였나

1930년대 중반의 조선에서 신문은 매일 총독부의 검열을 받았다. 기사가 문제가 되면 그 부분을 깎아 내거나 신문을 압수했고, 더 크면 발행 자체를 멈추게 했다. 신문사들은 이 선을 넘지 않으려고 늘 조심해야 했다. 일장기를 지운 사진은 글이 아니라 그림이었지만, 그 뜻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조선 사람이 이긴 것이지 일본이 이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무렵은 일제가 조선을 전쟁 준비에 끌어들이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다. 1936년 8월에는 미나미 지로가 새 총독으로 왔고, 이듬해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일장기 말소 사건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일어났기에 처벌이 무거웠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사진 한 장을 고친 일이 신문 하나를 멈추고 다른 하나를 문 닫게 만든 셈이다.

주요 인물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사건을 일으킨 사람은 아니지만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남승룡
같은 대회 마라톤 동메달리스트.
이길용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사진의 일장기를 지우는 일에 앞장섰다. 광복 뒤 다시 기자로 일했으나 한국전쟁 때 북으로 끌려갔다.
이상범
『동아일보』 미술기자이자 화가. 사진의 일장기를 지웠다. 뒤에 한국화의 큰 화가로 이름을 남겼다.
현진건
『동아일보』 사회부장이자 소설가. 「운수 좋은 날」을 쓴 작가로, 사건으로 붙잡혀 언론계를 떠났다.
송진우
당시 『동아일보』 사장.
여운형
당시 『조선중앙일보』 사장. 신문은 이 사건 뒤 폐간되었다.

자주 헷갈리는 점: 월계수가 아니었다

손기정이 시상대에서 들고 있던 나무는 흔히 월계수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우승자에게 준 참나무 종류의 묘목이었다. 그 나무는 손기정이 들고 돌아와 모교인 양정고보에 심었고, 지금도 옛 양정 자리에 꾸민 서울 중구의 손기정기념공원에서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 하나 헷갈리기 쉬운 점은 일장기를 처음 지운 신문이 『동아일보』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8월 13일에 두 신문이 먼저 흐리게 지운 사진을 실었고, 8월 25일의 사진이 문제가 되면서 사건이 커졌다.

그 뒤의 손기정

손기정의 이름은 올림픽 공식 기록에 지금도 일본 대표로 올라 있다. 그는 광복 뒤 우리 마라톤의 길을 닦았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그가 감독으로 이끈 서윤복이 우승했다. 우승자에게 주기로 했던 고대 그리스의 청동 투구는 1936년에 전해지지 않았다가 50년 만인 1986년에야 그의 손에 들어왔고, 뒤에 보물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 대회에는 베를린에서 함께 달렸던 남승룡도 선수로 나섰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는 그가 이끈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위부터 3위까지를 모두 차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일흔이 넘은 그가 성화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손기정은 2002년 세상을 떠나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혔다.

일장기 말소 사건은 사진 한 장으로 식민지의 현실에 맞선 언론인들의 이야기다. 세계 대회에서 이긴 선수가 자기 나라 국기를 달 수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국기를 지운 대가로 신문이 멈췄다는 사실이 함께 남았다. 현진건 같은 이름난 소설가가 이 사건으로 기자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는 점도 이 사건이 남긴 그늘이다. 그는 그 뒤로는 소설로만 글을 이어 갔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동아일보 사진부의 암실 조수, 조선중앙일보 교정부의 견습 기자, 경무국 도서과의 조선인 검열 촉탁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일제강점기, 경성 동아일보 편집국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남승룡이 동메달을 땄다. 경성의 거리마다 호외(급한 소식만 담아 따로 찍은 신문)가 뿌려진다.

8월 13일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지방판(지방에 보내는 신문)에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일본 국기)를 흐리게 지운 사진이 실렸다. 8월 25일, 『동아일보』 2면에 다시 지운 사진이 실린다.

총독부는 체육 기자 이길용 등 기자들을 끌고 가고, 『동아일보』는 무기정간(언제 풀릴지 모르는 발행 금지)을, 『조선중앙일보』는 끝내 폐간을 맞는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936년 8월 10일, 호외가 뿌려진 날

손기정 우승 소식에 편집국이 들썩인다. 그러나 사진 속 그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선명하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정보(지식),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1936년 8월 13일, 지방판이 나간 뒤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지방판에 일장기를 흐린 사진이 실렸다. 이상하게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정보(지식),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1936년 8월 24일 밤, 동아일보 편집국

내일 아침 2면에 실릴 시상식 사진이 들어왔다. 미술 기자 이상범 화백(화가)이 사진 앞에 붓을 들고 앉는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사람(인맥),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936년 8월 말, 경무국 조사가 시작되던 날

경무국(총독부의 경찰 본부) 사람들이 편집국으로 들이닥쳤다. 사진부 원판 선반과 기자들의 얼굴을 차례로 훑는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이길용·이상범·현진건 등이 붙잡혀 사십여 일 신문을 받고 언론계를 떠나야 했다. 『동아일보』는 이듬해 6월까지 정간되었고, 『조선중앙일보』는 끝내 폐간되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말소
지워 없앰
정간
신문 발행을 멈추게 함. 무기정간은 언제 풀릴지 모르는 정간
폐간
신문을 아예 그만 펴냄
경무국
조선총독부의 경찰 본부
호외
큰 소식을 알리려고 정해진 때가 아닌데 따로 찍어 돌리는 신문
속간
멈췄던 신문을 다시 펴냄
지방판
지방에 보내는 신문
일장기
일본 국기
무기정간
언제 풀릴지 모르는 발행 금지
원판
사진을 찍어 내는 원본 판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