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고려인 강제이주

1937년 · 일제강점기 · 막기

고려인 강제이주 — 서쪽으로 가는 기차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1937년 · 일제강점기, 소련 연해주
어디서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시베리아 철도
무슨 일
1937년 소련은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러시아 땅의 조선 사람) 17만여 명을 화물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옮겼다(고려인 강제이주).
무엇이 문제였나
떠나라는 통고는 며칠 전에야 왔다. 한 달 넘게 화물칸에 실려 가는 길과 집 없는 첫 겨울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야기 속 목표
쫓겨나는 날, 이웃이 흩어지지 않고 겨울을 날 것과 우리말 책을 싣고 떠나게 만든다

배경: 연해주의 고려인 사회

1860년대부터 많은 조선 사람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의 연해주로 옮겨 갔다. 굶주림과 무거운 세금을 피해 떠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거친 땅을 논으로 일구었고, 반세기 넘게 그곳에서 살아왔다. 나라를 잃은 뒤에는 연해주가 독립운동의 중요한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마을 신한촌에는 고려말로 가르치는 학교와 극장, 신문사가 있었고, 포시에트 같은 마을에서는 집단농장의 논에서 벼가 자랐다.

그러나 1930년대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대숙청이 이어지고 있었다. 동쪽에서는 일본이 만주를 차지하고 세력을 넓혀 왔다. 소련은 일본과 맞닿은 국경 가까이에 사는 고려인을 믿지 못할 사람들로 보기 시작했다. 고려인이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의심에는 근거가 없었다. 실제로는 많은 고려인이 오랫동안 일본에 맞서 싸워 온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937년 여름, 잡혀가는 사람들

1937년 여름, 고려인 사회의 지도자와 교사, 당 간부들이 하나둘 잡혀갔다. 이주 결정 직전과 직후에 체포된 사람이 2천여 명에 이른다는 추정이 있다. 공동체를 이끌 사람들이 먼저 사라진 셈이다.

전개 — 8월 21일의 결정과 며칠 전의 통고

8월 21일, 소련 인민위원회와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극동 지역에 일본 첩자가 스며드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극동 국경 지대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9월에 국경 지대부터 열차가 떠났고, 9월 28일 두 번째 결정으로 극동의 나머지 지역도 대상이 되어, 사실상 극동의 고려인 전체가 떠나게 되었다. 떠나라는 통고는 떠나기 사흘에서 이레 전에야 왔다. 사람들은 땅과 집, 거두지 못한 곡식을 두고 짐을 꾸려야 했다. 남겨 두는 재산은 나중에 보상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결말 — 30일에서 40일의 기차 길, 그리고 첫 겨울

화물칸 한 칸에 대여섯 가구가 탔고, 열차는 30일에서 40일을 달렸다. 10월 25일 보고에 따르면 36,442가구, 171,781명이 열차 124편에 실려 이주를 마쳤다. 사람들이 내린 곳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낯선 땅이었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근처의 바슈토베 언덕에서는 땅을 파서 만든 토굴에서 첫 겨울을 났다. 가는 길과 첫 겨울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어린아이와 노인이 많았다고 전한다. 이동 중에만 554명이 숨졌다는 집계가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확인이 어렵다.

고려인들은 그 땅에서도 다시 논을 일구었다. 원동고려극장과 고려인 신문 『선봉』, 고려사범대학도 중앙아시아로 옮겨 가 다시 문을 열었다.

연표

새 땅에서 다시 일군 삶

중앙아시아에 내린 고려인들은 처음 몇 해 동안 정해진 곳 밖으로 마음대로 옮겨 갈 수 없었다. 그 속에서 그들은 갈대밭과 거친 땅에 물길을 내고 논을 만들었다. 벼농사를 잘 모르던 지역에 고려인들이 벼를 심었고, 고려인 집단농장 가운데에는 소련 전체에서 손꼽히는 수확을 올린 곳도 있었다. 고려인 농민 가운데 소련이 큰 공을 세운 노동자에게 주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도 여럿 나왔다.

말과 글을 지키는 일도 이어졌다. 『레닌기치』는 소련이 무너진 뒤 『고려일보』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도 나온다.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고려말 공연의 전통을 이어 간다. 다만 러시아어로 교육받는 세대가 늘면서, 고려말을 하는 사람은 점점 줄었다.

자주 헷갈리는 점

고려인 강제이주를 전쟁 중의 피란과 헷갈리기 쉽지만, 1937년의 소련은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이주는 싸움을 피해 떠난 일이 아니라, 국가가 한 민족 전체를 잠재적 적으로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또 이주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소련 시민이 된 지 오래인 사람, 소련 군대에서 복무한 사람, 공산당원도 많았다. 신분이나 공로와 상관없이 고려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대상이 되었다.

고려인은 사할린의 한인과도 다르다. 사할린 한인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남사할린으로 동원되거나 건너간 사람들과 그 후손으로, 광복 뒤에도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두 공동체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주요 인물

스탈린
당시 소련의 최고 지도자. 강제이주 결정의 책임자다.
예조프
소련의 내무인민위원. 대숙청과 이주를 집행했다.
고려인 지도자와 교사들
이주 직전과 직후에 많은 사람이 체포되었다.
고려인 학자와 예술가들
역사학자 계봉우, 독립군 지도자였던 홍범도도 이 무렵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로 옮겨 간 것으로 전한다.

더 알아 둘 점

고려인 강제이주는 한 민족 전체를 짧은 통고만으로 수천 킬로미터 밖으로 옮긴 일이다. 고려인, 고려사람은 그들이 스스로를 부른 이름이다. 러시아 말로 한국인을 뜻하는 카레이스키라는 말도 쓰이지만, 이 글은 그들 스스로의 이름을 따른다. 첫 이주 날짜는 9월 9일로도 21일로도 적히는 등 자료마다 다르다. 강제이주를 겪은 민족은 고려인만이 아니었다. 1940년대에는 소련 안의 다른 여러 민족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 사건은 우리 민족이 외세 때문에 겪은 고통이 한반도 안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지금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는 수십만 명의 고려인이 살며, 고려말과 고려극장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우슈토베의 바슈토베 언덕에는 첫 겨울을 기억하는 비가 서 있다.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일은 이 역사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신한촌 고려사범대학의 학생, 포시에트 집단농장의 볍씨 담당, 고려극장의 젊은 배우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일제강점기, 소련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시베리아 철도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연해주(두만강 너머 러시아 동쪽 끝 땅)에는 조선 사람들이 반세기 넘게 땅을 일구며 살아왔다.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는 고려말(고려인이 쓰는 우리말) 학교와 극장, 신문사가 있고, 포시에트 마을의 논에서는 벼가 익어 간다.

1937년 여름, 고려인 지도자와 교사들이 하나둘 잡혀간다. 팔월 스무하루 소련 정부는 일본 첩자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극동의 고려인을 모두 중앙아시아로 옮기기로 정한다.

구월, 떠나라는 통고가 고작 며칠 앞서 온다. 화물칸에 실린 사람들은 한 달 넘게 서쪽으로 달리고, 낯선 언덕에서 첫 겨울을 맞는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937년 8월, 신한촌

선생님 몇이 밤사이 사라졌다.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고, 학교 책장과 신문사 활자 상자 앞에는 먼지만 쌓인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사람(인맥),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1937년 9월 초, 통고가 오던 날

우리 마을에도 통고가 왔다. 짐은 들 수 있을 만큼만, 떠날 날은 닷새 뒤다. 사람들은 집과 논을 두고 무엇을 챙겨야 할지 몰라 서성인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재물(물자), 사람(인맥),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1937년 9월, 떠나기 사흘 전

역에는 화물칸이 늘어서 있고, 한 칸에 다섯이나 여섯 집이 탄다고 한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재물(물자), 정보(지식),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937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역

화물칸 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짐을 들고 줄을 서고, 철도원이 숫자를 세며 사람들을 칸에 나눠 태운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1937년 9월부터 극동의 고려인 17만여 명이 화물열차에 실려 한 달 넘게 달려 카자흐와 우즈베크로 옮겨졌다. 가는 길과 첫 겨울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고려인
옛 소련 땅에 사는 한인을 스스로 부르는 말
연해주
두만강 너머 러시아 동쪽 끝의 땅
신한촌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마을
집단농장
소련에서 땅과 농기구를 함께 쓰며 일하던 농장. 콜호스라고 했다
대숙청
1930년대 소련에서 많은 사람을 잡아들이고 처형한 일
명예 회복
억울하게 받은 죄나 낙인을 공식으로 거두는 일
고려말
고려인이 쓰는 우리말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1937년, 서쪽으로 가는 기차.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