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강조의 정변과 거란 2차 침입
1009년 · 고려 · 막기
강조의 정변과 거란 2차 침입 — 강조의 정변과 통주
한눈에 보기
- 언제
- 1009년 · 고려 목종 12년
- 어디서
- 개경과 통주
- 무슨 일
- 1010년, 거란이 40만 대군으로 고려를 쳤다. 고려 장수 강조가 왕(목종)을 몰아내고 죽인 일을 트집 잡은 것이다(거란 2차 침입).
- 무엇이 문제였나
- 강조가 지키던 통주의 진이 기습에 무너졌다. 이듬해 정월 도읍 개경이 함락되고, 새 왕 현종은 남쪽 끝 나주까지 피란해야 했다.
- 이야기 속 목표
-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 통주를 지키던 고려군이 기습에 무너지지 않게 만든다
배경: 궁궐 안의 권력 다툼
고려 7대 왕 목종 때, 왕의 어머니 천추태후와 그 측근 김치양이 나라의 권세를 쥐었다. 김치양은 태후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다음 왕으로 세우려 했다. 그러려면 걸림돌이 하나 있었다. 왕족 대량원군, 곧 뒷날의 현종이다. 대량원군은 삼각산의 절 신혈사에 몸을 숨긴 채 여러 번 목숨을 위협받았다.
바깥에는 거란이 있었다. 993년 서희의 담판으로 한 차례 전쟁을 넘긴 고려는 강동 6주를 얻었지만, 거란은 이 땅과 고려의 송나라 외교를 계속 문제 삼고 있었다. 고려 안에서 큰 정변이 일어나자, 거란은 그것을 구실로 삼았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009년, 강조가 개경으로 오다
병석에 누운 목종은 대량원군을 지키고 김치양 세력을 누르기 위해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를 개경으로 불렀다. 강조가 군대를 이끌고 내려오는 동안, 진중에는 왕이 이미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조는 남하를 서둘렀다. 목종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안 뒤에도 그는 군대를 돌리지 않았다. 강조는 개경에 들어와 김치양 부자를 처형했고, 나아가 목종까지 왕위에서 몰아냈다. 대량원군이 왕위에 올라 현종이 되었고, 목종은 귀양길에 적성에서 목숨을 잃었다.
전개 — 1010년 11월, 40만 대군과 통주의 진
1010년 11월, 거란 성종은 신하가 임금을 죽인 죄를 묻겠다며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거란군은 먼저 흥화진을 에워쌌지만, 도순검사 양규가 지키는 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거란군은 흥화진을 두고 남쪽 통주로 내려왔다.
고려군을 이끈 이는 행영도통사가 된 강조였다. 그는 통주 남쪽에서 강을 끼고 세 곳에 진을 쳤고, 칼날을 촘촘히 꽂은 싸움 수레인 검차를 앞세워 거란군을 몇 차례 물리쳤다.
결말 — 통주의 기습과 개경 함락
거듭 이기자 강조는 경계를 늦췄다. 거란군이 다가온다는 보고가 들어와도 크게 대비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거란군의 기습에 고려군은 크게 무너졌고 3만여 명이 전사했다. 강조는 이현운 등과 함께 사로잡혔다. 거란 성종이 내 신하가 되겠느냐고 묻자 강조는 자신은 고려 사람이라며 거절했고, 끝내 처형되었다. 함께 잡힌 이현운은 항복했다.
1011년 정월, 거란군은 개경을 함락했다. 거란군은 태묘와 궁궐, 민가를 불태웠다. 현종은 강감찬 등의 건의에 따라 남쪽으로 피란해 나주까지 내려갔다. 그사이 양규와 김숙흥 등이 거란군의 뒤를 끊으며 맞서 싸웠고, 거란은 현종이 직접 거란에 와서 예를 올린다는 조건을 걸고 물러났다.
연표로 보는 세 해
- 1009년 정월~2월 목종이 강조를 부른다. 강조가 개경에 들어와 김치양 부자를 없애고 목종을 폐위한다. 현종 즉위, 목종은 적성에서 죽임을 당한다.
- 1010년 11월 거란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압록강을 건넌다. 흥화진은 양규가 지켜 낸다.
- 1010년 11월 하순 통주 싸움. 강조가 사로잡혀 처형된다.
- 1010년 12월 현종이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피란길에 오른다.
- 1011년 정월 개경 함락. 거란이 화의를 받아들이고 철수를 시작한다. 양규와 김숙흥이 퇴로에서 싸우다 전사한다.
- 1011년 2월 현종이 개경으로 돌아온다. 불탄 도읍을 다시 세우는 일이 시작된다.
피란길의 현종과 화의
현종의 피란길은 험했다. 왕을 따르던 신하들이 흩어지고, 지방 세력 가운데에는 왕의 행렬을 위협하는 이도 있었다. 공주에서는 공주절도사 김은부가 왕을 정성껏 맞았고, 그의 딸들이 뒤에 현종의 왕비가 되었다. 이 인연은 현종 대 이후 왕실의 혈통으로 이어진다.
거란과의 화의를 맺으러 적진에 간 사람은 하공진이었다. 그는 현종이 직접 거란에 와서 예를 올리겠다는 뜻을 전해 거란군을 돌려세우는 데 힘을 보탰고, 그 대가로 볼모가 되어 거란으로 끌려갔다. 거란 성종이 그를 신하로 삼으려 했으나 하공진은 끝내 따르지 않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고려사』는 적는다.
양규의 싸움도 기억할 만하다. 그는 흥화진을 지킨 뒤 적에게 넘어간 곽주를 되찾았고, 물러가는 거란군을 여러 차례 공격해 끌려가던 고려 사람들을 구했다. 마지막에는 김숙흥과 함께 애전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통주라는 싸움터
통주는 지금의 평안북도 선천 부근으로, 압록강을 건너 개경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있었다. 강동 6주 가운데 하나로, 서희의 담판 뒤에 쌓은 성이었다. 강조가 진을 친 곳은 통주 남쪽의 세 물줄기가 만나는 자리로, 『고려사』는 이곳을 삼수채라고 적는다. 강을 앞에 두고 진을 나누어 친 것은 거란의 기병이 한꺼번에 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계산이었다.
검차는 그 계산을 받쳐 준 무기였다. 수레 앞에 칼날을 촘촘히 꽂아 기병이 부딪쳐 오면 말과 사람이 다치게 만든 것으로, 거란 기병이 처음 몇 차례 물러난 것도 이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수레와 진은 지키는 사람이 깨어 있어야 힘을 쓴다. 통주의 패배는 무기보다 마음가짐에서 갈렸다고 기록은 말한다.
주요 인물
- 강조
- 서북면 도순검사.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세웠으며, 통주에서 거란군에 사로잡혀 죽었다.
- 목종과 천추태후
- 고려 7대 왕과 그 어머니. 태후와 김치양의 권세가 정변의 배경이 되었다.
- 현종(대량원군)
- 강조가 세운 고려 8대 왕. 거란 2차 침입 때 나주까지 피란했다.
- 거란 성종
- 40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고려를 친 거란의 황제.
- 양규
- 흥화진 도순검사. 성을 지켜 냈고, 거란군의 퇴로를 끊으며 싸우다 전사했다.
- 하공진
- 거란 진영에 가서 화의를 이끌고 볼모로 끌려간 신하.
더 알아 둘 점
강조는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그는 왕을 몰아내고 죽인 정변의 주인공이었지만, 적에게 사로잡혀서는 고려 사람이라며 항복을 거부하고 죽었다. 한 사람 안에 반역과 충절이 함께 있는 셈이다. 이 글에서는 어느 쪽으로도 단정하지 않는다. 그가 통주에서 바둑 같은 놀이를 하며 방심했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원문을 더 확인해야 하는 일화다.
현종은 약속한 입조를 끝내 하지 않았고, 거란은 강동 6주를 돌려 달라고 거듭 요구했다. 거란은 몇 해 동안 크고 작은 침입을 이어 가다 1018년 소배압의 10만 대군으로 다시 쳐들어왔고, 1019년 강감찬이 귀주에서 이들을 크게 무찔렀다. 왕이 나주까지 피란해야 했던 이 전쟁의 기억이 고려가 북쪽 방어를 다지고, 뒤에 개경에 나성을 두르는 계기가 되었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강조 막하에서 말을 달리는 전령, 신혈사에서 시중드는 승려 시자, 통주 대장간 집 아들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고려 목종 12년, 개경과 통주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나라의 권세를 쥐었다. 김치양은 태후가 낳은 아들을 다음 왕으로 세우려 하고, 왕족 대량원군(뒷날의 현종)은 삼각산의 절 신혈사에 몸을 숨긴 채 위협을 받는다.
1009년 병석의 목종은 북쪽 국경을 지키는 장수 강조를 개경으로 불렀다. 강조의 진중에는 왕이 이미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왕이 살아 있음을 안 뒤에도 강조는 돌아서지 않았다.
목종은 폐위되어 귀양길에 목숨을 잃고, 이듬해 거란 성종이 이 일을 따지며 사십만 대군으로 쳐들어온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009년 정월, 강조의 군대가 남쪽으로 움직일 때
왕이 죽었다는 소문이 진중을 휩쓴다. 강조는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향하고, 개경에서는 김치양의 사람들이 대량원군을 노린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사람(인맥),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 역참을 갈아타며 개경 소식을 직접 확인한다 정보
왕이 살아 있다는 진실로 헛소문을 잠재울 수 있다. - 신혈사의 대량원군 곁을 지키며 말동무가 된다 사람
다음 왕이 될 사람의 믿음을 얻는다. - 진중에서 정직한 전령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름
내가 전하는 말이면 장수들이 믿는다.
넷째 장 · 전개 — 1010년 11월, 거란이 압록강을 건넌 뒤
거란 성종이 대군을 이끌고 왔다. 흥화진(압록강 가까운 고려의 성)을 장수 양규가 지켜 내자 거란군은 그 성을 두고 통주로 내려온다. 고려군 총사령관이 된 강조가 통주에서 그들을 맞는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정보(지식),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 검차 칼날을 벼리고 바퀴를 손본다 힘
검차가 거란 기병을 막아 내는 힘이 커진다. - 통주 백성들과 척후조를 꾸려 거란군을 살핀다 정보
거란군의 수와 움직임을 손금 보듯 안다. - 군량 수레 장부를 맡아 남은 날수를 헤아린다 재물
진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정확히 안다.
다섯째 장 · 전개 — 1010년 11월, 삼수채에서 연이어 이긴 뒤
강조는 통주 남쪽 강을 끼고 세 곳에 진을 쳤고, 검차로 거란군을 여러 번 물리쳤다. 진중에는 거란이 별것 아니라는 말이 퍼진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이름(평판·여론), 힘(무력·조직), 정보(지식)의 기반을 다진다.
- 이긴 뒤일수록 조심하자는 말을 진중에 퍼뜨린다 이름
이겨서 들뜬 장수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 밤 순찰조를 늘려 진 바깥 둑까지 돈다 힘
적이 몰래 다가오면 바로 알 수 있다. - 거란군이 강 상류로 돌아오는 흔적을 찾는다 정보
거란이 노리는 기습 길을 미리 찾아낸다.
여섯째 장 · 그날 — 1010년 11월, 통주 삼수채
거란군이 진 앞에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연승에 익숙해진 장막 안은 느긋하고,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진은 한꺼번에 무너진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 척후가 찾아낸 기습로를 그려 강조 앞에 펼친다 정보
기습이 빈 진을 쳐 통주가 버티고 개경이 무사하다. - 검차를 둥글게 세워 진의 빈틈을 막는다 힘
기습을 막아 통주가 버티고 거란이 더 내려오지 못한다. - 틀린 적 없는 전령의 이름을 걸고 강조에게 거듭 아뢴다 이름
강조가 미리 대비해 기습이 막히고 왕이 피란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강조는 통주에서 기습을 당해 사로잡혔고, 신하가 되라는 거란 성종의 말을 거절하고 죽었다. 이듬해 정월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은 나주까지 피란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 서북면 도순검사
- 고려 서북쪽 국경 지역의 군사 책임자
- 행영도통사
- 전쟁 때 군대 전체를 지휘하는 자리
- 입조
- 신하의 나라 왕이 직접 찾아가 예를 올리는 일
- 검차
- 칼날을 촘촘히 꽂은 싸움 수레
- 볼모
- 약속을 지키는 담보로 상대에게 잡혀 있는 사람
- 대량원군
- 뒷날의 현종
- 흥화진
- 압록강 가까운 고려의 성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1009년, 강조의 정변과 통주.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