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최무선과 진포 대첩
1377년 · 고려 · 앞당기기
최무선과 진포 대첩 — 진포의 화포
한눈에 보기
- 언제
- 1377년 · 고려 우왕 3년
- 어디서
- 개경 화통도감과 진포
- 무슨 일
- 1380년 8월, 왜구(일본 해적)의 배 5백여 척이 금강 어귀 진포에 몰려왔다. 최무선이 만든 화포를 실은 고려 배들이 이를 불태웠다(진포 대첩).
- 왜 앞당기나
- 고려 배가 닿기 전에 왜구는 이미 바닷가 고을을 털고 사람들을 끌고 갔다. 승리가 빠를수록 털리는 고을과 끌려가는 사람이 줄어든다.
- 이야기 속 목표
- 화포를 실은 고려 배를 진포에 더 일찍 보내, 진포의 승리를 앞당긴다
배경: 해마다 오는 왜구
1350년 무렵부터 일본의 해적인 왜구가 해마다 고려의 바닷가 고을을 털었다.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개경으로 나르는 조운선이 막혔고, 바닷가 사람들은 끌려가거나 고향을 떠났다. 1376년 최영이 홍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렀지만 침입은 끊이지 않았다. 1377년에는 왜구가 강화까지 들이쳐 도읍을 옮기자는 말까지 나왔다.
최무선은 바다에서 왜구를 막으려면 화약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화약의 핵심 재료인 염초를 만드는 법은 중국이 비밀로 지키고 있었다. 최무선은 개경 가까운 국제 무역항 벽란도에서 중국 강남 사람 이원을 만나, 흙에서 염초를 뽑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377년 10월, 화통도감
최무선은 화약을 만드는 관청을 세우자고 도당에 여러 차례 건의했다. 처음에는 믿지 않던 조정도 마침내 뜻을 받아들여, 1377년 10월 화통도감이 세워졌다. 화통도감에서는 대장군, 이장군, 삼장군 같은 총포와 화전, 철령전, 주화 등 18가지 화기를 만들었다. 화포를 실을 수 있는 전함도 준비했다.
전개 — 1380년 8월, 진포 어귀의 왜선
1380년 8월, 왜선 500여 척이 금강 어귀의 진포, 지금의 군산과 서천 사이에 들어왔다. 왜구는 큰 밧줄로 배를 서로 묶어 두고 군사를 나눠 지키게 한 뒤, 뭍에 올라 고을을 털었다. 곡식을 배로 나르다 흘린 쌀이 땅에 한 자나 쌓였다고 전한다.
결말 — 진포의 불과 황산의 싸움
원수 나세와 심덕부, 부원수 최무선이 화포를 실은 전함 100여 척을 이끌고 진포로 나갔다. 고려 전함은 화포로 서로 묶인 왜선을 불태웠다. 배를 묶어 둔 것이 오히려 불을 옮기는 길이 되었다. 이 싸움에서 왜구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들 일부가 풀려나 돌아왔다.
배를 잃은 왜구는 내륙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옥주와 상주, 함양을 지나며 고을을 털고 남원 운봉에 모였다. 그해 9월, 이성계가 황산에서 이들을 무찔렀다. 황산대첩이다.
그날까지 잃은 것
화포는 이미 3년 전부터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 전함이 진포에 닿았을 때 왜구는 이미 충청과 전라의 바닷가 고을을 털고 곡식을 배로 나르던 참이었다. 배를 잃고 흩어진 왜구가 지나간 내륙의 고을들도 피해를 입었다. 전함이 더 일찍 금강 어귀에 닿았다면 왜구가 뭍으로 흩어지기 전에 배를 불사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앞당기기’로 쓰인 까닭이다.
연표
- 1350년 무렵 왜구의 침입이 해마다 이어지기 시작한다.
- 1376년 최영이 홍산에서 왜구를 무찌른다.
- 1377년 왜구가 강화까지 들이친다. 10월 화통도감이 세워진다.
- 1377~1380년 화통도감에서 18가지 화기와 화포를 실을 전함을 만든다.
- 1380년 8월 진포에서 왜선을 불태운다.
- 1380년 9월 이성계가 남원 운봉의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른다.
- 1383년 정지가 남해 관음포에서 화포로 왜구를 무찌른다.
- 1389년 박위가 쓰시마를 친다.
- 1395년 최무선이 세상을 떠난다.
왜 진포가 중요한가
그때까지 고려 수군이 왜구와 싸우는 방법은 배를 붙여 군사끼리 맞붙는 것이었다. 왜구는 배에서 칼로 싸우는 데 능했고, 고려는 수가 많아도 쉽게 이기지 못했다. 진포에서는 처음으로 배에 실은 화포가 승패를 갈랐다. 멀리서 불을 쏘아 배를 태우는 싸움은 군사의 수와 칼솜씨의 차이를 뒤집었다.
진포 대첩은 한국 역사에서 화포를 배에 싣고 쓴 첫 큰 해전으로 꼽힌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른 함포 해전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무엇을 ‘함포’로 볼지에 따라 견해가 갈린다. 분명한 것은 이 싸움을 고비로 왜구가 크게 줄어드는 흐름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진포에서 배를 잃은 무리가 황산에서 무너졌고, 3년 뒤인 1383년 정지가 남해 관음포에서 다시 화포로 왜구를 무찔렀다. 1389년에는 박위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를 쳤다.
화통도감의 무기들
화통도감이 만든 18가지 화기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대장군, 이장군, 삼장군처럼 쇠로 만든 통에 화약을 넣고 화살이나 돌을 쏘는 총포다. 이름의 대·이·삼은 크기의 차례로 본다. 다른 하나는 화전, 주화처럼 화살에 화약을 달아 불을 붙여 날리는 무기다. 특히 주화는 화약의 힘으로 스스로 날아가는 화살로, 뒤에 세종 때 신기전으로 발전했다. 진포에서 왜선을 불태운 것도 이런 불화살과 총포였다.
사료와 기록
최무선의 행적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특히 그가 1395년 세상을 떠났을 때 『태조실록』에 실린 졸기가 화약을 배운 과정과 화통도감, 진포의 싸움을 함께 정리하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졸기는 그가 화약 만드는 법을 책으로 적어 아내에게 맡기고, 아들이 자라면 주라고 했다고 전한다. 그 책은 지금 전하지 않는다.
진포에 나선 고려 전함의 수는 80척으로도 100여 척으로도 적힌다. 왜구의 병력이나 풀려난 사람의 수도 자료마다 다르게 전해 이 글에서는 숫자를 쓰지 않았다.
주요 인물
- 최무선
- 고려의 화약 기술자이자 무관. 화통도감을 세우고 진포에서 화포로 왜선을 불태웠다.
- 이원
- 최무선에게 흙에서 염초를 뽑는 법을 알려 준 중국 강남 사람.
- 나세와 심덕부
- 진포로 나간 고려 전함의 원수들.
- 우왕
- 당시 고려의 왕. 화통도감 설치를 받아들였다.
- 최영
- 1376년 홍산에서 왜구를 무찌른 장수.
- 이성계
- 진포에서 흩어진 왜구를 1380년 9월 황산에서 무찔렀다. 뒤에 조선을 세운다.
그 뒤에 남은 것
최무선의 화약 기술은 아들 최해산에게 이어졌다. 최해산은 조선 태종과 세종 때 화약과 화기를 맡아, 조선 초의 화약 무기가 크게 발전하는 바탕을 놓았다. 화포를 실은 배로 적을 깨뜨린다는 생각은 200여 년 뒤 임진왜란의 조선 수군에게도 이어졌다.
최무선의 고향으로 알려진 경북 영천에는 그의 업적을 소개하는 최무선과학관이 있고, 군산에는 진포의 이름을 딴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있다. 남원 운봉에는 황산대첩을 기린 비가 서 있던 황산대첩비지가 남아 있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 말에 깨뜨려졌고, 지금은 다시 세운 비와 깨진 조각을 모아 둔 비각이 함께 있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앞당기기’ 이야기다. 나는 화통도감 판사 최무선 본인으로 깨어난다. 손끝에 화약 냄새가 배어 있다. 염초를 뽑는 법도, 쇠통이 어떻게 터지는지도 이 시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날이 언제 오는지 알고 있으니, 준비와 사람과 정보로 그날을 더 일찍 오게 하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고려 우왕 3년, 개경 화통도감과 진포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1350년 이래 왜구(일본 해적)가 해마다 바닷가 고을을 턴다. 조운선(세금 곡식을 나르는 배)이 끊기고, 1377년 봄에는 강화까지 들이쳐 도읍을 옮기자는 말까지 나왔다.
최무선은 개경 근처 항구 벽란도에서 중국 강남 사람 이원에게 흙에서 염초(화약의 주재료)를 뽑는 법을 배웠다. 화약을 만들 관청을 세우자고 조정에 거듭 아뢰지만, 재상들은 아직 고개를 갸웃한다.
삼 년 뒤 팔월, 왜선 오백여 척이 금강 어귀 진포에 닿는다. 화포를 실은 전함이 닿는 것은 왜구가 연해 고을을 다 턴 뒤다. 그날이 언제 오는지 나는 안다. 더 일찍 올 수도 있다.
셋째 장 · 발단 — 1377년 가을, 개경 도당
나는 화약을 만들 관청을 세워 달라고 다시 아뢴다. 재상들은 바다 건너 사람에게 들은 재주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이름(평판·여론), 정보(지식)의 기반을 다진다.
- 왜구와 싸워 본 무장들을 먼저 찾아간다 사람
무장들이 거들어 화약 관청이 서고 장인이 모인다. - 개경 들판에서 화약 터뜨리는 것을 보여 준다 이름
사람들이 화약의 힘을 알고 내 편이 된다. - 이원에게 배운 염초 뽑는 법을 책으로 엮는다 정보
장인 누구나 같은 염초를 뽑을 수 있다.
넷째 장 · 전개 — 1378년~1379년, 화통도감
화통도감(화약 무기를 만드는 관청)에서 대장군·이장군 같은 대포와 화전(불화살), 주화(스스로 날아가는 불화살)를 만든다. 쇠와 염초는 늘 모자라고, 쏠 줄 아는 사람은 더 모자란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재물(물자), 정보(지식),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 쇠붙이와 묵은 집 마루 밑 흙을 사 모은다 재물
화포와 화약을 만들 재료가 넉넉해진다. - 포마다 화약 재는 양과 쏘는 법을 적어 둔다 정보
처음 잡는 군사도 표대로 포를 쏠 수 있다. - 수군에서 날랜 군사를 뽑아 포 쏘는 법을 가르친다 힘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포를 맞히는 군사가 생긴다.
다섯째 장 · 전개 — 1380년 7월, 서해 바닷가
왜선이 크게 몰려온다는 소문이 바닷가에 돈다. 화포를 실을 전함은 아직 개경 가까운 포구에 묶여 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재물(물자), 힘(무력·조직), 사람(인맥)의 기반을 다진다.
- 전함마다 화약과 화전을 미리 나눠 싣는다 재물
명령이 떨어지면 그날로 배가 떠날 수 있다. - 전함 몇 척을 먼저 금강 어귀 가까이 보낸다 힘
진포까지 하루 뱃길이라 훨씬 빨리 닿는다. - 연해 어부와 봉수군에게 왜선을 보면 알리라 한다 사람
왜선이 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여섯째 장 · 그날 — 1380년 8월, 진포 어귀
왜선 오백여 척이 진포 어귀에 닿아 큰 밧줄로 서로를 묶었다. 왜구가 뭍으로 흩어지기 전에 전함이 닿아야 한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 실어 둔 화약과 화전으로 닿자마자 쏜다 재물
왜구가 뭍에 흩어지기 전에 배를 모두 태운다. - 화포 군사들을 이끌고 첫날 밤에 불사른다 힘
왜구가 고을로 흩어지기 전에 발이 묶인다. - 봉수와 어부의 말로 닿는 날을 먼저 알고 기다린다 정보
왜선이 닿자마자 막혀 털리는 고을이 손에 꼽힌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1380년 8월, 화포를 실은 고려 전함이 진포에 닿았을 때 왜구는 이미 연해 고을을 털고 곡식을 배로 나르던 참이었다. 배를 잃은 왜구는 내륙으로 흩어졌다가 9월 황산에서 이성계에게 무너졌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사람의 삶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 도당
- 고려 말 나랏일을 의논하던 최고 회의 기구
- 벽란도
- 개경 가까운 예성강의 국제 무역항
- 총포
- 화약으로 쏘는 무기
- 원수
- 전쟁 때 군대를 이끄는 장수
- 염초
- 화약의 주재료. 흙에서 뽑아냈다
- 조운선
-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도읍으로 나르는 배
- 졸기
- 실록에서 이름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생애를 짧게 적은 글
- 왜구
- 일본 해적
- 화통도감
- 화약 무기를 만드는 관청
- 주화
- 스스로 날아가는 불화살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1377년, 진포의 화포.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