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몽골의 3차 침입과 황룡사 구층목탑
1235년 · 고려 · 막기
몽골의 3차 침입과 황룡사 구층목탑 — 아홉 층 나무탑
한눈에 보기
- 언제
- 1235년 · 고려 고종 22년
- 어디서
- 경주 황룡사
- 무슨 일
- 1238년 고려에 쳐들어온 몽골군이 경주까지 내려와 황룡사를 불태웠다(몽골의 3차 침입).
- 무엇이 문제였나
- 645년에 세워 600년 가까이 서 있던 아홉 층 나무탑(구층목탑)과 큰 불상, 큰 종이 모두 불탔다. 지금은 탑의 주춧돌만 남아 있다.
- 이야기 속 목표
- 황룡사의 아홉 층 나무탑이 몽골군의 불길을 견디고 서 있게 만든다
배경: 신라의 아홉 층 탑
황룡사는 경주에 있던 신라 최대의 절이다. 553년 진흥왕이 새 궁궐을 지으려던 자리에 누런 용이 나타나 절로 바꾸어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그 뒤 10여 년이 넘는 공사 끝에 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진흥왕 35년인 574년에는 큰 불상 장륙존상을 부어 만들었다. 장륙은 한 장 여섯 자, 곧 사람 키의 세 배 가까운 높이를 뜻한다. 선덕여왕 때 스님 자장의 청으로 아홉 층 나무탑을 세웠고, 645년에 완성되었다. 백제의 장인 아비지가 탑을 지었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탑의 아홉 층은 신라를 둘러싼 아홉 나라를 뜻했다.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이며, 이어서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여적, 예맥이다. 이웃 나라들의 위협을 부처의 힘으로 누르려는 바람을 담은 탑이었다. 백과사전은 탑의 높이를 상륜부 42척과 탑신 183척을 더한 225척, 약 80미터로 적는다. 경덕왕 때인 754년에는 성덕대왕신종보다도 컸다고 전하는 대종도 만들었다. 탑은 벼락을 맞아 여러 차례 고쳐 지으면서 고려 때까지 600년 가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신라의 세 보물
『삼국유사』는 신라에 나라를 지키는 세 가지 보물이 있었다고 적는다. 황룡사의 장륙존상, 황룡사의 구층목탑, 그리고 진평왕이 하늘에서 받았다는 옥 허리띠다. 세 보물 가운데 둘이 한 절에 있었던 셈이니, 황룡사가 신라 사람들에게 어떤 곳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구려 왕이 신라를 치려다 이 보물들 때문에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구층목탑을 세우자고 한 자장은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스님이었다. 그때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에 거듭 성을 빼앗기던 어려운 처지였고, 여왕이 다스린다는 이유로 이웃 나라의 업신여김도 받았다. 아홉 층 탑은 그런 나라 안팎의 불안을 하나로 모으려는 큰 공사였다. 적국이었던 백제의 장인을 불러 탑을 짓게 했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눈길을 끈다.
탑이 선 600년
- 553년
- 진흥왕이 황룡사를 짓기 시작한다.
- 574년
- 장륙존상을 부어 만든다.
- 645년
- 선덕여왕 때 구층목탑을 완성한다.
- 754년
- 경덕왕 때 큰 종을 만든다.
- 872년
- 경문왕 때 탑을 고쳐 짓고, 그 내력을 찰주본기에 새긴다.
- 1238년
- 몽골군이 경주에 이르러 절 전체가 불탄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235년, 몽골의 세 번째 침입
몽골은 1231년 처음, 1232년 두 번째로 고려에 쳐들어왔다. 두 번째 침입 때에는 대구 부인사에 있던 초조대장경판이 불탔다. 고려 조정은 1232년 이미 강화도로 옮겨 가 있었다. 1235년, 몽골은 장수 탕구를 앞세워 세 번째로 쳐들어왔다. 육지 백성에게는 산성과 섬으로 들어가 피하라는 명만 내려졌다.
전개 — 1236년부터 1238년까지, 남쪽 깊숙이
세 번째 침입의 몽골군은 1239년까지 몇 해 동안 경상도와 전라도 깊숙이 고을을 휩쓸었다. 의주에서 서경과 남경을 거쳐 동경, 곧 경주까지 내려온 길이었다. 맞서 싸운 사람도 있었다. 1236년 죽주산성에서는 방호별감 송문주가 몽골군을 물리쳤다고 전한다. 『고려사』는 그가 1231년 귀주성에서 박서와 함께 싸우며 몽골군이 성을 치는 방법을 익혀 두었기에, 적이 어떤 수를 쓸지 미리 알고 대비했다고 적는다.
결말 — 1238년, 경주의 불
1238년, 몽골군은 경주에 이르러 황룡사의 가람 전체를 불태웠다. 『고려사』에는 윤4월 몽골군이 동경에 이르러 황룡사탑을 불태웠다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널리 인용된다. 645년에 세운 구층목탑, 574년에 부어 만든 장륙존상, 754년에 만든 대종이 함께 사라졌다. 고려는 그해 말 사신을 보내 강화를 청했고, 몽골군은 1239년 물러났다.
주요 인물
- 고종
- 고려의 왕. 강화도에서 몽골의 침입을 견뎠다.
- 최우
- 최씨 정권의 집권자. 강화 천도를 이끌었다.
- 탕구
- 몽골의 3차 침입을 이끈 장수.
- 송문주
- 죽주산성의 방호별감. 몽골군을 물리쳤다.
- 선덕여왕과 자장
- 구층목탑을 세운 신라의 여왕과 탑을 세우자고 청한 스님.
- 아비지
- 탑을 지었다고 전하는 백제의 장인.
더 알아 둘 점
지금 경주 황룡사 터에는 탑을 받치던 심초석과 주춧돌만 남아 넓은 들판을 이루고 있다. 심초석 아래에서 나온 사리장엄구와 872년에 탑을 고쳐 지은 내력을 적은 찰주본기는 지금까지 전한다. 탑의 높이는 자료에 따라 68미터로 적기도 한다. 탑을 세운 내력은 『삼국유사』와 찰주본기에, 절을 짓고 장륙존상을 만든 일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함께 전한다. 소실된 달을 윤4월로 보는 것은 널리 쓰이는 인용이지만, 백과사전은 고종 25년에 불탔다고만 적는다.
황룡사 터는 1976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크게 발굴되었다. 그 결과 절의 건물 배치와 규모가 드러났고, 기와와 불상 조각, 생활 도구 같은 유물이 많이 나왔다. 지금은 터 둘레를 정비해 누구나 걸어 볼 수 있고, 가까운 전시관에서는 탑을 줄여 만든 모형을 볼 수 있다.
3차 침입이 끝난 뒤에도 몽골은 여러 차례 더 쳐들어왔다. 1254년의 침입 뒤 『고려사』는 몽골군에게 붙잡혀 간 사람이 20만 6,800여 명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강화도의 조정이 버티는 동안, 육지에서는 사람만이 아니라 수백 년을 이어 온 문화유산도 잃었다. 고려는 불탄 초조대장경 대신 대장경을 새로 새겼고, 그것이 지금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다. 아홉 층 나무탑은 다시 세워지지 못했다.
자주 헷갈리는 점
황룡사와 바로 옆의 분황사를 헷갈리는 일이 많다. 분황사는 선덕여왕 때인 634년에 세운 절로,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탑이 지금도 서 있다. 황룡사의 아홉 층 탑은 나무로 지은 탑이라 불에 약했고, 그래서 터만 남았다. 또 1238년에 불탄 것은 황룡사이고, 초조대장경이 불탄 것은 그보다 앞선 1232년 대구 부인사에서였다. 두 일이 한데 묶여 이야기되지만 때와 곳이 다르다.
몽골군이 처음부터 이 탑을 노렸는지, 고을을 휩쓰는 과정에서 불길이 번졌는지는 기록이 말해 주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조정이 섬에 있는 동안 육지의 성과 절을 지킬 힘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탑을 쓸고 닦는 황룡사의 젊은 승려, 동경유수 관아의 늙은 아전, 황룡사에 등잔 기름을 대는 상인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고려 고종 22년, 경주 황룡사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1231년 처음 압록강을 건넌 몽골군이 1235년 다시 쳐들어왔다. 고려 조정은 몽골을 피해 강화도로 옮겨 가 있고, 육지 고을에는 산성과 섬으로 들어가라는 영만 내려온다.
경주 황룡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스님 자장의 청으로 세운 아홉 층 나무탑이 육백 년 가까이 서 있다. 진흥왕 때 부어 만든 장륙존상(사람 키 세 배쯤 되는 큰 불상)과, 성덕대왕신종보다 크다는 종도 이 절에 있다.
몽골군은 경상도 깊숙이까지 고을을 휩쓸며 내려온다. 무술년 윤사월, 그들은 동경(고려 때 경주를 부르던 이름)에 이르러 황룡사를 불태운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235년 가을, 몽골군이 다시 압록강을 건넌 뒤
경주에도 산성으로 들어가라는 영이 내려왔다. 황룡사의 노승들은 부처님과 탑을 두고 떠날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사람(인맥), 재물(물자),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 노승들에게 탑을 지킬 계(돕는 모임)를 만들자고 청한다 사람
불이 나면 함께 달려올 사람들이 생긴다. - 번 돈으로 큰 물독과 두레박을 사 모은다 재물
탑 둘레에 불을 끌 물이 미리 마련된다. - 장날마다 탑에 얽힌 아홉 나라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름
사람들이 탑을 아껴 지키러 나서게 된다.
넷째 장 · 전개 — 1236년~1237년, 몽골군이 남쪽 고을을 휩쓸던 무렵
죽주산성에서 고려 장수 송문주가 몽골군을 물리쳤다는 소식과 함께, 몽골군이 지나간 고을마다 절이 불탔다는 소식이 올라온다. 몇 해 전 대구 부인사에 있던 대장경판(불경을 새긴 나무판)도 그렇게 사라졌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힘(무력·조직), 사람(인맥)의 기반을 다진다.
- 피란민에게 몽골군이 절을 태우는 모양을 묻는다 정보
몽골군이 불을 놓는 방식을 알고 대비한다. - 장정들과 탑 둘레의 마른 풀과 나뭇단을 걷어낸다 힘
불길이 탑까지 번져 올 길이 끊긴다. - 이웃 마을 장정들과 불이 나면 달려올 약조를 맺는다 사람
불이 나면 이웃 마을 장정들이 달려온다.
다섯째 장 · 전개 — 1238년 윤4월 초, 동경 가까이 봉화가 오른 날
몽골 기병이 영천 쪽에서 내려온다는 봉화가 올랐다. 관아 사람들은 산성으로 떠나고, 절에는 스님들과 몇몇 신도만 남는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재물(물자), 정보(지식), 힘(무력·조직)의 기반을 다진다.
- 사리함과 경전, 작은 불상을 남산 골짜기로 옮긴다 재물
탑이 타더라도 절의 보물은 살아남는다. - 봉화와 길손 말로 몽골 선봉이 닿을 날을 헤아린다 정보
적이 언제 닿고 바람이 어디서 부는지 안다. - 탑 아래 세 층 기둥과 판벽에 진흙을 두껍게 바른다 힘
흙옷을 입은 나무탑에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여섯째 장 · 그날 — 1238년 윤4월, 경주 황룡사
몽골 기병이 동경 성안에 들어왔다. 해가 기울자 절 담 너머에서 횃불 냄새가 넘어온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 탑계 사람들과 물동이 줄을 세워 불길을 잡는다 사람
불길이 탑에 닿기 전에 잡혀 탑이 남는다. - 바람이 바뀌는 때를 알려 탑 아래를 미리 흠뻑 적신다 정보
불이 회랑에서 멈춰 탑이 밤을 넘긴다. - 저자의 비단과 곡식을 모아 몽골 장수에게 바친다 재물
몽골 장수가 물러나 탑이 불타지 않는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1238년 몽골군이 경주에 이르러 황룡사를 불태웠다. 구층목탑과 장륙존상, 큰 종이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탑을 받치던 심초석과 주춧돌만 남아 있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 구층목탑
- 아홉 층으로 쌓은 나무탑
- 심초석
- 탑 한가운데 기둥을 받치던 큰 돌
- 해도입보
- 백성을 섬으로 옮겨 적을 피하게 함
- 방호별감
- 전쟁 때 산성을 지키게 보낸 관리
- 상륜부
- 탑 꼭대기의 장식 부분
- 장륙존상
- 사람 키 세 배쯤 되는 큰 불상
- 동경
- 고려 때 경주를 부르던 이름
- 장계
- 나라에 올리는 보고서
- 대장경판
- 불경을 새긴 나무판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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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5년, 아홉 층 나무탑.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