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역사 속에서 환생하기 · 사건 해설 · 삼별초 항쟁

1270년 · 고려 · 막기

삼별초 항쟁 — 용장성의 섬사람들

글 atelier Daham · 작성 · 수정

한눈에 보기

언제
1270년 · 고려 원종 11년
어디서
강화도와 진도 용장성
무슨 일
1270년 고려 왕이 몽골에 굴복하자, 몽골에 맞서던 군대 삼별초가 진도로 옮겨 가 따로 왕을 세우고 버텼다(삼별초 항쟁).
무엇이 문제였나
1271년 5월 고려와 몽골 연합군 1만 2천이 진도를 쳐서 성이 무너졌다. 섬에 살던 많은 사람이 포로로 붙잡혀 갔다.
이야기 속 목표
진도가 무너지는 날, 섬사람들이 붙잡혀 가지 않고 살아 빠져나가게 만든다

배경: 섬에서 버틴 40년의 끝

1232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고려는 몽골과 오랫동안 싸웠다. 그 항쟁의 주력이 삼별초였다. 삼별초는 최씨 정권 때 도둑을 잡으려 만든 야별초에서 출발했다. 야별초가 커지면서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뉘었고, 몽골에 붙잡혔다 돌아온 사람들로 꾸린 신의군까지 더해 세 부대가 되었다. 몽골에 맞서 싸우는 동안 삼별초는 고려에서 가장 날랜 군대로 이름이 났다. 동시에 무신 정권의 권력을 떠받치는 군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신 정권이 무너지고 왕이 몽골과 화친하는 쪽으로 돌아서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1270년 5월, 원종은 몽골에서 돌아와 강화도를 떠나 개경으로 돌아가라고 명했다. 몽골과 싸워 온 삼별초에게는 해산하라는 명이 떨어졌고, 군사들의 이름을 적은 명부가 몽골에 넘어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떻게 흘러갔나

발단 — 1270년 6월, 진도로 떠나다

삼별초를 이끌던 장군 배중손은 해산 명령을 거부했다. 6월 1일 그는 왕족 승화후 온을 새 왕으로 세웠고, 6월 3일 1천여 척의 배에 사람과 재물을 나눠 싣고 강화도를 떠났다. 그들이 닿은 곳은 남해의 진도였다.

전개 — 용장성과 남쪽 바다

진도에 자리 잡은 삼별초는 산을 따라 돌성인 용장산성을 쌓고, 용장사라는 절을 고쳐 궁궐로 삼았다. 진도는 세곡을 실은 배가 지나는 바닷길에 있었다. 삼별초는 이 배들을 거두어 힘을 키웠고, 전라도와 경상도 바닷가 주민들과 개경의 관노 일부가 호응했다. 남해안의 여러 고을을 치고 제주까지 손에 넣으면서, 한때 남쪽 바다의 상당 부분이 삼별초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 진도를 황도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조정은 신사전에 이어 김방경을 보내 삼별초를 치게 했지만 한동안 성과가 없었다. 배중손은 몽골군이 물러나면 전라도를 근거로 삼아 고려 조정에 복속하겠다는 답을 보내며 시간을 벌었다.

결말 — 1271년 5월 15일, 진도 함락

1271년 5월 15일, 고려의 김방경과 몽골의 흔도·홍다구가 이끄는 연합군이 세 무리로 나뉘어 진도를 공격했다. 그 수를 1만 2천으로 적는 자료가 있다. 용장성은 버티지 못했다. 승화후 온은 홍다구의 군대에 목숨을 잃었고, 배중손은 남도석성에서 싸우다 죽은 것으로 보인다. 섬에 있던 많은 사람이 포로로 붙잡혀 갔다. 정확한 숫자는 전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무리는 김통정을 따라 제주로 건너갔다. 그들은 제주에서 2년 더 버텼지만 1273년 끝내 평정되었다. 이로써 몽골에 맞선 고려의 긴 항쟁은 막을 내렸다.

연표

바다 건너 보낸 편지

진도의 삼별초는 일본에도 사신과 문서를 보냈다. 이 일은 일본에 남은 기록에서 확인된다. 1271년 무렵 고려에서 온 문서가 몇 해 전 고려 조정이 보낸 문서와 내용이 달라 일본 조정이 그 까닭을 따져 본 메모가 전하는데, 학자들은 이 문서를 삼별초가 보낸 것으로 본다. 몽골에 맞서 함께 대비하자는 뜻과 함께 군량과 군사를 청한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 편지는 삼별초가 스스로를 고려의 정통 조정으로 내세웠다는 점, 그리고 몽골의 다음 목표가 일본이 될 것을 내다보았다는 점에서 자주 이야기된다. 실제로 몽골과 고려의 연합군은 삼별초가 평정된 이듬해인 1274년 일본 원정에 나섰다.

섬사람들의 3년

삼별초 항쟁을 장수들의 이야기로만 읽으면 놓치는 것이 있다. 진도와 남해안의 섬과 포구에 살던 사람들이다. 삼별초가 진도에 자리 잡자 섬사람들은 성을 쌓고 배를 대고 곡식을 나르는 일에 나서야 했다. 삼별초가 거둔 세곡선의 곡식이 섬을 먹여 살리기도 했지만, 그만큼 섬은 조정과 몽골의 표적이 되었다.

바닷가 고을의 처지도 어려웠다. 삼별초가 오면 삼별초를 따라야 했고, 관군이 오면 관군을 따라야 했다. 진도가 무너진 날 붙잡혀 간 사람들 가운데에는 군사가 아닌 섬 주민이 많았다고 본다. 제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삼별초를 막으려는 관군과 삼별초가 차례로 섬에 들어오면서, 제주 사람들은 몇 해 동안 두 세력 사이에서 성을 쌓고 군량을 대야 했다.

주요 인물

배중손
삼별초의 장군. 해산을 거부하고 진도로 옮겨 항쟁을 이끌었다.
승화후 온
삼별초가 세운 왕. 진도가 함락될 때 목숨을 잃었다.
김통정
진도 함락 뒤 남은 무리를 이끌고 제주로 가 항쟁을 이었다.
원종
고려의 왕. 몽골과 화친하고 개경 환도를 명했다.
김방경
고려의 장수. 연합군을 이끌고 진도를 쳤고, 제주 평정에도 나섰다.
흔도와 홍다구
진도 공격에 나선 몽골군 장수.

더 알아 둘 점

삼별초 항쟁은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외세에 끝까지 맞선 민족 항쟁으로 보기도 하고, 무신 정권을 떠받치던 군대가 몰락을 거부한 싸움으로 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진도와 제주의 많은 백성이 이 싸움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점이다. 성이 무너질 때 붙잡혀 간 사람들의 이름은 거의 남지 않았다.

삼별초를 평정한 뒤 고려는 오랫동안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다. 원은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두고 직접 다스리며 목장을 열어 말을 길렀다. 제주가 고려로 완전히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오늘날 남아 있는 곳

진도에는 용장성 터와 궁궐로 쓴 용장사 자리, 배중손이 최후를 맞았다고 보는 남도석성, 곧 남도진성이 남아 있다. 진도에는 승화후 온의 무덤이라 전하는 곳도 있다. 제주 애월의 항파두리에는 김통정이 쌓은 흙성의 자취가 남아 항몽 유적지로 꾸며져 있다. 강화에서 진도를 거쳐 제주까지, 남해와 서해의 섬들이 이 3년의 항쟁을 지금도 품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바꿀 수 있는 것

이 사건은 ‘막기’ 이야기다. 나는 그 시대의 이름 없는 사람으로 깨어난다. 몸은 벽파진 포구의 뱃사공, 용장사 궁궐의 장부 맡은 서리, 강화에서 따라온 별초 군관의 아내 가운데 하나이고, 가끔은 내 몸 그대로 이방인이 되어 떨어진다. 유명한 인물 본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 결말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결말을 막거나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야기는 일곱 장이다. 첫 장에서 깨어나고, 둘째 장에서 위의 한눈에 보기 카드로 사건을 읽고 각오를 정한다. 셋째부터 다섯째 장까지 기반을 다지고, 여섯째 장 ‘그날’에서 사건을 튼다. 아래는 그 장면들과, 각 선택을 고르면 무엇이 달라지는지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 문장은 직접 읽을 때를 위해 남겨 둔다.

둘째 장 · 그 시대 — 고려 원종 11년, 강화도와 진도 용장성

이야기는 실제 역사의 발단을 따라 시작한다. 깨어난 나는 이 시대를 이렇게 읽는다.

경오년 오월, 고려 왕 원종은 몽골에서 돌아와 강화도를 떠나 개경(고려의 도읍)으로 돌아가라 명했다. 삼별초(몽골에 맞서 온 고려의 특별 군대)에는 해산하라는 명이 떨어졌고, 군사 명부(이름을 적은 장부)가 몽골에 넘어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유월 초하루 삼별초 장수 배중손은 왕족 승화후 온을 왕으로 세우고, 사흘 뒤 천 척 남짓한 배에 사람과 재물을 싣고 남쪽 바다로 떠난다. 진도에 닿은 그들은 용장성(산을 따라 쌓은 돌성)을 쌓는다.

이듬해 오월 보름, 고려와 몽골의 군사가 세 무리로 섬에 오른다. 성은 버티지 못하고, 섬에 있던 많은 사람이 붙잡혀 간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다.

셋째 장 · 발단 — 1270년 6월, 강화도를 떠나는 배 위

천 척 남짓한 배가 강화 포구를 떠난다. 별초 군사들의 가족뿐 아니라 영문도 모른 채 실린 관리 집안 사람들도 뱃전에 서 있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사람(인맥),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넷째 장 · 전개 — 1270년 가을, 용장성 쌓기

용장사를 고쳐 궁궐로 삼고 산을 따라 돌성을 쌓는다. 연해 고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건너오고, 조운선(세금 곡식을 나르는 배)의 곡식이 섬 창고로 들어온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정보(지식), 사람(인맥), 이름(평판·여론)의 기반을 다진다.

다섯째 장 · 전개 — 1271년 봄, 바다 건너 진이 보이던 때

고려 장수 김방경의 군사와 몽골군이 바다 건너편에 진을 친다. 배중손은 협상하는 척 시간을 벌지만, 성안 사람들은 저 배들이 언제 건너올지만 묻는다.

이 장면의 세 갈래는 각각 힘(무력·조직), 정보(지식), 재물(물자)의 기반을 다진다.

여섯째 장 · 그날 — 1271년 5월 15일, 진도

새벽 바다 위로 세 무리의 배가 섬을 향해 다가온다. 성 위의 군사들보다 성 아래 마을 사람들이 먼저 나를 쳐다본다.

그날의 선택은 역사를 트는 세 가지 방법이다. 앞의 장에서 그 방법에 맞는 기반을 다져 두었을수록 뜻대로 풀리기 쉽다.

이야기가 기준으로 삼는 실제 결말은 이렇다. 김방경·흔도·홍다구의 연합군이 진도를 쳐서 용장성이 무너졌다. 승화후 온과 배중손이 목숨을 잃었고 섬의 많은 사람이 붙잡혀 갔으며, 남은 무리는 김통정을 따라 제주로 갔다. 내가 고른 길이 이 문장을 바꾸는지가 결말을 가른다.

일곱째 장 ‘귀환’에서는 돌아갈지 남을지 고른다. 돌아와서 현실이 바뀌어 있을 수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 시대에 남을 수도 있다.

낯선 말 풀이

환도
도읍을 옛 자리로 되돌리는 일
승화후
왕족에게 내린 작위 이름
여몽연합군
고려와 몽골이 함께 꾸린 군대
세곡
세금으로 거둔 곡식
별초
용맹한 군사를 가려 뽑아 만든 부대
첩장
나라 사이에 오간 외교 문서
개경
고려의 도읍
삼별초
몽골에 맞서 온 고려의 특별 군대
명부
이름을 적은 장부
용장성
산을 따라 쌓은 돌성
조운선
세금 곡식을 나르는 배

출처와 더 읽을거리

이 해설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날짜와 수치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본문에서 갈리는 대목은 따로 적었다.

이 사건으로 환생하기

1270년, 용장성의 섬사람들. 무료, 회원가입 없이 일곱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