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orn Into · 로판에서 환생하기 · 안내 · 드레스
GUIDE
로판 드레스와 실제 시대 복식
| 시기(대략) | 이름 | 모양 | 치마를 받친 것 |
|---|---|---|---|
| 18세기 중반 | 로브 아 라 프랑세즈 | 몸판은 꼭 맞고, 등 뒤로 넓은 주름이 흘러내린다. 치마는 옆으로 넓다 | 파니에(옆으로 퍼진 버팀대) |
| 1790년대–1820년 무렵 | 엠파이어(리젠시) 라인 | 가슴 바로 아래에 허리선이 있고, 가는 치마가 곧게 떨어진다 | 거의 없음. 얇은 속치마 |
| 1820년대–1830년대 | 낭만주의 시대 | 허리선이 제자리로 내려오고, 소매가 크게 부푼다 | 여러 겹의 속치마 |
| 1840년대 | 초기 빅토리아 | 어깨가 처지고 몸판 끝이 뾰족하다. 치마는 둥근 종 모양 | 말총 섞은 천과 겹겹의 속치마 |
| 1850년대 후반–1860년대 | 크리놀린 시대 | 치마가 가장 크게 부푼 시기. 둥근 돔 모양 | 강철 테를 엮은 케이지 크리놀린 |
| 1870년대–1880년대 | 버슬 시대 | 앞은 납작하고 부피가 엉덩이 뒤로 몰린다 | 버슬(엉덩이 뒤 받침) |
| 1890년대–1900년대 | 세기말·에드워드 시대 | 모래시계 몸매, 커다란 소매에 이어 S자 곡선 실루엣 | 코르셋과 나팔꽃처럼 퍼지는 치마 |
로판의 드레스는 실제 유럽의 한 시대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위 표의 백오십 년 남짓한 여성복을 골라 섞은 모습이다. 허리를 조인 몸판, 어깨를 드러낸 목선, 바닥까지 부푼 치마가 가장 흔한데, 실제 역사에서 이 실루엣들은 수십 년씩 차이를 두고 유행했다. 같은 "부푼 치마"라도 옆으로 퍼졌는지, 둥글게 퍼졌는지, 뒤로 솟았는지에 따라 백 년 가까운 차이가 난다. 표의 연도는 대략적인 흐름이다. 유행은 도시와 계층에 따라 몇 해씩 늦거나 빨랐고, 한 시대 안에서도 낮옷과 밤옷의 모양이 달랐다.
파니에: 옆으로 퍼진 궁정의 치마
18세기 프랑스 궁정의 정장은 치마가 옆으로 아주 넓었다. 허리 양옆에 파니에라는 버팀대를 달아 치마를 좌우로 벌렸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면 넓고 옆에서 보면 납작한 모양이라, 문을 지날 때 몸을 옆으로 돌려야 할 정도였다. 몸판 앞에는 스토마커라는 장식 판을 대고 리본과 레이스로 꾸몄다. 로판에서 황후나 노귀부인이 입는 장엄한 궁정 예복, 혹은 오래된 초상화 속 선대 공작부인의 옷차림이 이 시대에 가깝다.
엠파이어 라인: 가슴 아래의 허리선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는 정반대의 옷이 유행했다.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을 본뜬 신고전주의 취향을 따라, 허리선이 가슴 바로 아래로 올라가고 얇은 흰 모슬린 치마가 몸을 따라 곧게 떨어졌다.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와 같은 시기 영국 섭정 시대에 크게 유행해서 엠파이어 라인, 혹은 리젠시 스타일이라 부른다. 버팀대가 거의 없어 움직이기 편했지만, 얇은 천 때문에 겨울에는 숄과 짧은 재킷, 긴 외투가 꼭 필요했다. 이 무렵 캐시미어 숄이 큰 인기를 끌었다.
로판에서는 이 실루엣이 생각보다 드물게 나온다. 대신 여름 정원 파티, 시골 영지의 산책, 혹은 일부러 유행을 거스르는 인물의 옷차림으로 쓰이면 눈에 띄는 개성이 된다.
크리놀린: 가장 크게 부푼 치마
19세기 중반 치마는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속치마를 여러 겹 겹쳐 부피를 냈지만, 너무 무겁고 더웠다. 1850년대 후반 강철 테를 엮어 만든 케이지 크리놀린이 나오자 여러 겹의 속치마 없이도 치마를 크게 부풀릴 수 있게 되었다. 가벼워진 만큼 치마는 더 커졌고, 1860년 전후에 크기가 정점에 이르렀다. 넓은 치마는 의자에 앉거나 마차에 타는 일도 까다롭게 만들었고, 촛불이나 벽난로 불이 옮겨붙는 사고도 있었다.
로판 삽화 속 무도회 드레스, 곧 어깨를 드러낸 목선과 꼭 맞는 몸판, 바닥까지 둥글게 퍼진 치마는 이 무렵의 이브닝드레스와 가장 닮았다. 로판 드레스의 '기본형'이 이 시대에서 왔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다만 황후의 궁정 예복은 18세기풍으로, 영애의 일상복은 세기말풍으로 그리는 식으로 장면마다 시대가 섞인다. 웹툰 표지에서 흔히 보는 장미 장식과 겹겹의 프릴도 이 무렵 무도회복의 장식과 통한다.
버슬: 뒤로 몰린 부피
1860년대 후반이 되자 치마의 부피는 앞과 옆에서 빠져 뒤로 옮겨 갔다. 엉덩이 뒤에 버슬이라는 받침을 달아 뒷자락을 높이 부풀리고, 그 위로 천을 겹겹이 드리웠다. 1870년대 초와 1880년대 중반에 버슬이 특히 컸고, 그 사이 몇 해 동안은 몸에 붙는 가는 실루엣이 유행했다. 옆에서 보면 뒤가 크게 튀어나온 모양이라, 앞에서만 보는 그림과 옆모습이 전혀 다르다.
로판에서 버슬 드레스는 수도의 최신 유행을 보여 주는 장치로 쓰기 좋다. 북부에서 온 주인공이 수도 귀부인들의 뒤로 솟은 치마를 처음 보고 놀라는 장면처럼, 장소와 시간의 차이를 옷으로 보여 줄 수 있다. 유행이 지난 옷을 입은 인물은 그것만으로 수도 사교계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드러난다.
낮옷과 밤옷
19세기 상류층 여성은 하루에도 여러 번 옷을 갈아입었다. 시간과 자리에 따라 입는 옷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 구분 | 목선과 소매 | 입는 자리 |
|---|---|---|
| 아침옷·낮옷 | 목까지 올라오는 깃, 손목까지 오는 긴 소매 | 집 안 일과, 방문, 산책 |
| 승마복 | 몸에 맞는 재킷과 긴 치마, 모자 | 공원이나 영지에서의 말타기 |
| 만찬복 | 목선이 조금 파이고 소매가 짧아진다 | 저녁 식사 |
| 무도회복 | 어깨를 드러낸 깊은 목선, 아주 짧은 소매나 소매 없음 | 무도회, 오페라 |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는 밤에만 입는 옷이었다. 낮에 그런 옷을 입는 것은 큰 실례였다. 무도회복에는 팔꿈치 위까지 오는 긴 장갑을 함께 꼈다. 로판에서 낮 다과회 장면에 무도회 드레스가 나온다면 실제 관습과는 다른 셈이다. 반대로 이 구분을 살린 작품에서는 옷만 보고도 지금이 몇 시쯤인지, 어떤 자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옷감과 장신구
| 재료 | 실제로 쓰인 곳 | 로판에서의 느낌 |
|---|---|---|
| 모슬린 | 얇고 가벼운 면직물. 엠파이어 시대의 흰 드레스 | 소박함, 여름, 시골 영지 |
| 실크·새틴 | 윤기 나는 비단. 무도회복과 궁정 예복 | 부와 격식 |
| 벨벳 | 두껍고 부드러운 천. 겨울 외투와 짙은 색 드레스 | 위엄, 북부의 겨울, 나이 든 귀부인 |
| 레이스 | 손으로 뜬 레이스는 매우 비쌌다. 깃, 소매 끝, 베일 | 섬세함,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혼수 |
| 튈 | 망사처럼 얇은 천. 19세기 무도회 치마에 겹겹이 | 꿈결 같은 데뷔탕트 |
장신구도 신분과 나이를 드러냈다. 결혼한 부인은 큰 보석과 티아라를 할 수 있었지만, 미혼 아가씨는 진주 목걸이나 작은 꽃 장식 정도가 무난했다. 부채는 더위를 식히는 도구이면서 얼굴을 가리고 표정을 숨기는 소품이었다. 로판에서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웃는 귀부인,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사파이어 목걸이를 팔아 빚을 갚는 영애 같은 장면은 장신구가 곧 재산이자 신분의 표시였던 시대를 반영한다.
색과 의미
- 흰색: 젊은 미혼 여성, 데뷔탕트의 색.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이 흰 드레스로 결혼식을 올린 뒤 흰 웨딩드레스가 널리 퍼졌다.
- 검은색: 상복. 빅토리아 시대에는 가족을 잃은 여성이 정해진 기간 동안 검은 옷을 입었고, 기간이 지나면 회색이나 연보라 같은 차분한 색으로 옮겨 갔다.
- 짙은 색과 화려한 보석: 결혼한 부인의 몫. 미혼 아가씨는 옅은 색과 소박한 장신구를 하는 것이 예의였다.
로판은 이 색의 규칙을 자주 빌려 쓴다. 데뷔탕트 무도회에 홀로 붉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악녀, 상복을 벗지 않는 젊은 미망인, 황실만 입을 수 있는 색을 몰래 입은 영애 같은 장면이 모두 옷의 색이 곧 메시지가 되는 세계를 보여 준다. 드레스가 더럽혀지는 장면도 같은 문법이다. 로판에서 환생하기의 황실 연회장에서는 악녀로 소문난 영애가 지나가다 당신의 드레스에 와인을 쏟기도 하는데, 젖은 치맛자락을 쥐고 맞받아칠지 웃으며 넘길지에 따라 그날 밤의 소문이 달라진다.
드레스를 입는 일
이런 옷은 혼자 입기 어려웠다. 슈미즈 같은 속옷 위에 코르셋을 입고, 크리놀린이나 버슬을 달고, 속치마를 겹친 뒤에야 드레스를 입었다. 코르셋 끈은 등 뒤에서 조였고, 몸판의 단추나 고리도 대개 뒤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상류층 여성에게는 옷 입는 일을 돕는 하녀가 꼭 필요했다. 머리 손질까지 더하면 무도회 준비에는 몇 시간이 걸렸다.
코르셋이 숨도 못 쉴 만큼 조이는 옷이었다는 이미지는 과장된 면이 있다. 18세기의 스테이스부터 19세기 말의 코르셋까지, 이 속옷의 기본 역할은 몸을 받치고 겉옷의 선을 잡는 것이었다. 허리를 극단적으로 조이는 유행은 당시에도 건강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았다. 드레스 자체도 기성품이 아니었다. 재봉사가 손님의 몸에 맞춰 손바느질로 지었고, 큰 시즌을 앞두면 이름난 의상실에 주문이 몰렸다. 로판에서 의상실 예약을 잡지 못해 쩔쩔매는 장면은 꽤 현실적인 고민인 셈이다.
로판에서 시녀가 아침마다 주인공의 코르셋 끈을 조이는 장면, 빙의한 주인공이 이 과정을 처음 겪으며 기겁하는 장면, 반대로 도망치는 주인공이 혼자서는 드레스를 벗지도 못해 곤란해지는 장면은 모두 이 현실에서 나온다. 거꾸로 말하면, 하녀 없이 혼자 옷을 입을 수 있는지가 곧 신분의 차이였다.
곁에 선 남자의 옷
19세기 상류층 남성의 밤 정장은 앞이 짧고 뒤가 긴 연미복에 흰 조끼, 흰 나비넥타이였다. 색이 거의 검정과 흰색뿐이라 무도회장의 색은 대부분 여성의 드레스에서 나왔다. 로판의 기사단장이나 황태자는 여기에 군복 예장을 섞어 견장과 훈장을 단 모습으로 자주 그려진다. 실제로도 장교는 무도회에 정복을 입고 나오는 일이 많았다.
참고 자료
- Pannier (clothing) (영어 위키백과)
- Empire silhouette (영어 위키백과)
- Crinoline (영어 위키백과): 케이지 크리놀린의 등장과 유행
- Bustle (영어 위키백과)